국내상장기업 중 기업지배구조와 주주우선경영의 모범으로 평가받아왔던 기업 대표들에게 마침내 검찰의 사전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박영관)는 30일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로 국내 정유업계 3위업체 에쓰오일(S-Oil) 김선동(60)회장과 유호기(56)사장 등 2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한국경제 투명성 높이기 위한 결단**
지난 19일 경찰이 김회장 등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보강수사를 지시했던 검찰이 열흘이 넘은 재수사 결과를 보고 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분식회계 사태가 국내로도 번질 경우 허약한 증시에 큰 파장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S-오일 사건이 터진 후 전윤철 경제부총리도 국내기업들의 분식회계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혔고, 29일 금융감독위원회에서 회계분식을 방지할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구체적인 의지를 내비쳤다.
***"상 주고 뺨 맞은 꼴" 된 증권거래소**
S-오일의 부정행위는 그동안 이 회사가 아시아머니 선정 소액주주 관리부문 최우수기업(국내경영 우수기업 3위),한국경제신문 선정 2001년 주주중시경영 우수기업, 연간 기업설명회 81회, 국내 최고수준의 고배당정책, 이사회 평균참석율 96% 등 화려한 실적을 바탕으로 사건이 터지기 보름 전인 7월초 증권거래소로부터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상까지 수상했었기에 시장의 충격이 더했다.
당시 증권거래소가 발표한 공적서에는 "회사 임원의 내부거래 및 자기거래는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해 부당한 내부거래를 방지하고 있으며, 최대 주주와의 내부거래가 극히 적음" 등 주주들의 신뢰를 받을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사정은 다르다.
김선동 회장은 2000년 임직원 명의로 3천3백90억원을 대출받아 6개 증권사에 2천3백여개의 증권계좌를 만들어 자사주식 1천20만주를 매입했고 회사 내에서 사이버거래를 통해 2만3천5백71회에 달하는 가장매매, 고가 허수 주문 등으로 주가를 조작해 8백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또 올 3월에는 지난해 자산재고 평가기준이 되는 11·12월분 휘발유 등의 판매단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같은 위법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사외이사는 4명의 국내 사외이사중 3명이 쌍용화재,쌍용정유,쌍용건설 등 쌍용그룹의 전직임원들 출신이어서, 이들이 쌍용정유 출신인 김선동 회장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에쓰오일, "남들이 믿기는 어려울 것"**
이에 대해 S-Oil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회사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표적으로 떠오르자 경영권 보호를 위해 임직원과 거래처 등이 자발적으로 회사주식을 취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관계자조차 "이같은 해명을 남들이 믿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시인했다. 회사의 공식적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회사 관계자들조차 '문제가 있기는 있다'고 인정하는 대목은 고배당정책이다. S-Oil은 2000년 사우디 아람코로 주인이 바뀐 이래 액면가(2500원)의 50~75%를 주주에게 배당하는 고배당정책을 써왔다. 지난해의 경우는 75% 배당을 실시, 실적이 악화됐음에도 당기순익(1백91억원)의 8배에 이르는 1천5백28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기업은 한탕 벌어 나눠갖는 보따리장수가 아니라, 이윤을 재투자하며 영속적 경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같은 고배당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내재가치를 갉아먹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업계에서는 김선동 회장이 최대주주인 아람코에 많은 배당금을 보장해 주며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정책을 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증권거래소, "교묘해 발견할 수 없었다"**
S-Oil의 주가조작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 역시 사전에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모범기업으로 표창까지 줬다는 대목에서 비난을 면키 힘들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주가조작 사건은 증권거래소. 코스닥위원회의 1차적 포착을 거쳐 금융감독원 조사, 검찰수사의 경로를 밟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거래소. 코스닥위로부터 넘겨받은 사안 외의 주가조작에 대해서도 별도의 인지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감시의무 소홀의 비난을 받고 있는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특정 계좌나 지점 등의 시세관여율이 높아야 컴퓨터 시스템이 이상매매로 인지하게 되는데, S-Oil은 많은 계좌를 통해 주가를 서서히 끌어올려 발견하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회사측은 차익실현이 없었기에 시세조정 혐의는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S-Oil의 주가는 2000년 3월에 8천∼1만원에 불과했으나 같은해말에는 1만3천750원, 작년 4월20일 1만5천500원, 9월3일 2만2천원, 작년 11월26일 액면가 5천원짜리가 2천5백원으로 액면분할된 이후 12월21일 2만2천원은 사실상 4만4천원에 해당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차익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부당하게 주가를 끌어올리면 시세조종에 해당된다. 떨어지는 주가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주가조작의 범주에 들어간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찰이 발표한 사실은 전형적인 시세조종 수법중의 하나"라면서 "회사가 통정매매나 고가주문, 허수주문 등을 통해 시세안정을 취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에쓰오일, 때아닌 내부숙청작업 진행**
S-Oil은 이번 사건이 김선동 회장의 독선적 경영에 대한 내부 불만세력의 '투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주목, 관련자 색출작업과 함께 일부 혐의자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S-Oil은 30일 최근 윤활유사업담당 상무 1명을 해임했고 총무담당 상무1명을 포함해 임직원 4명을 보직해임하는 등 5명을 인사조치했다고 밝혔다. S-Oil 발표에 따르면 해임된 상무는 투서사건에 직접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고, 나머지 보직해임자들은 현재 당사자들의 해명을 듣고 상담을 벌이고 있으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복귀조치시킬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후 문제가 된 쌍용그룹 출신 사외이사들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조처가 없다.
S-Oil이 아직 이번 사태의 중차대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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