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S-oil)의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 의혹이 증시를 강타하고 있다.
에쓰오일 주가는 주가조작 혐의가 알려진 18일 폭락한 데 이어 19일에도 하한가를 기록중이다. 문제는 다른 주식들도 함께 맥을 못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증권거래소, 언론,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모범기업' '투자유망기업'이라 칭송해온 에쓰오일에서 주가조작 및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된 까닭이다. 한마디로 시장 분위기는 "믿을 놈 없다"는 것이다.
에쓰오일은 경찰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19일 조간신문들에 5단통 해명광고까지 내면서 혐의 사실을 극구부인하고 있다. 과연 어느쪽 주장이 진실인지 여부는 앞으로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알 일이다.
회계사나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가지 문제점만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2000년 3월 사우디 아람코가 최대주주가 되면서부터 지난 2년여간 행해진 '상식밖 고배당'이 그것이다. 요컨대 에쓰오일 경영진 및 대주주들의 '고배당 트릭(속임수)'에 놀아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에쓰오일의 '고배당 트릭' 의혹**
18일 에쓰오일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외국계 UBS 워버그 증권은 즉각 에쓰오일에 대한 투자 의견을 '보유'에서 '매도'로 낮췄다. 목표주가 역시 종전의 2만1천원에서 1만2천2백50원으로 거의 절반이나 깎았다. 앞으로 주가가 더 폭락할 테니 즉각 팔아치우라는 것이었다.
UBS 워버그가 이처럼 강력한 매도 의견을 낸 이유가 주목할 만하다.
"에쓰오일 주가가 펀더멘털 측면에서 고평가돼 있는데, 이는 '관대한 배당정책'에서 기인한다."
말이 좋아서 '관대한 배당정책'이지, 보다 직설적 표현을 빌면 그동안 자신들도 에쓰오일의 '고배당 속임수'에 놀아났었다는 자성을 겸한 매도 의견이었다.
UBS 워버그가 뒤늦게나마 자인했듯, 그동안 대다수 국내외 애널리스트와 언론, 투자가들은 에쓰오일의 고배당 트릭에 현혹됐었다.
2000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인 아람코는 5천6백억원을 주고 쌍용정유 주식 35%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이때 경영진은 기존의 김선동 대표이사가 승계했다. 김 대표는 회사이름을 에쓰오일로 바꾸고 이때부터 이른바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을 시작했다.
***아람코의 배만 불린 '고배당 전략'**
주주가치 극대화 경영이란 국내에서 김정태 당시 주택은행장이 가장 먼저 도입해 빅히트한 선진경영기법이었다. 정부, 정치권 등의 외압에서 벗어나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경영을 가리킨다. 이를 위해선 이사회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사외이사 숫자를 늘리며 기업경영 내용을 투자가들에게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김선동 대표도 외형상 이같은 방식에 충실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보다 주목한 부분은 '고배당 전략'이었다.
외국계로 최대주주가 바뀐 첫해인 2000년 결산때 에쓰오일은 액면가 대비 50%의 현금 배당을 했다. 그해 에쓰오일은 영업실적은 매출 8조여원에 당기순이익은 53억원대. 그러나 배당금 총액은 순이익보다 무려 13배나 높은 6백96억원이나 됐다.
2001년에는 배당율을 75%로 더욱 높이고, 게다가 중간배당까지 했다. 20001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줄어든 7조6천여억원, 당기순이익은 1백91억원. 그러나 배당금 총액은 당기순이익보다 6배 가까이 높은 1천18억원이나 됐다.
에쓰오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2년에는 배당율을 전년도 똑같은 75%, 그리고 2003년에는 10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대주주인 아람코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기가 막힌 '주주가치 최우선 경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쓰오일의 전체주식중 39%는 배당대상이 아닌 자사주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아람코에게 돌아가는 실제 배당금은 아람코의 보유주식 35%의 배에 가까운 액수로, 연간 배당금의 절반 이상이 고스란히 아람코 수중으로 건네졌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아람코는 투자 2년만에 1천억원대의 돈을 배당금으로 챙길 수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람코 입장에서 보면 에쓰오일을 통해 기름을 팔아 좋고, 고배당까지 받으니 말 그대로 짭짤한 이중혜택을 보는 셈이었다.
더욱이 올해는 예기치 못한 달러화 폭락에 따른 환차익으로 에쓰오일은 사상최대의 수익을 예상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2천5백억원대 영업이익을 거뒀을 정도다. 올해 벌어들인 돈을 예년과 같이 배당할 경우 아람코는 앉아서 천여억원의 배당금을 챙길 수 있을 전망이다.
***"꽂감 빼먹듯 회사 종자돈 빼먹은 셈"**
S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에쓰오일의 고배당 전략과 관련, "당기순이익의 최저 6배에서 최고 13배의 배당금을 현금으로 배당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말해 아람코가 투자액을 단기간에 회수하려는 '투자펀드' 목적으로 에쓰오일을 인수했음을 의미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당기순이익보다 몇배 많은 배당금을 가져간다는 것은 회사 발전을 위해 비축해둔 이익잉여금을 곶감 빼먹듯 빼먹는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며 "이런 수법을 사용하면 단기적으로는 기업 주가가 오르고 마치 주주가치 경영을 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회사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진정한 주주가치 경영이란 그해 벌은 돈의 일부만 주주들이 배당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회사에 남겨둬 재투자에 사용토록 함으로써 기업가치를 살찌우는 것"이라며 "에쓰오일의 경우 외국계가 된 후 거의 투자를 하지 않은 데에서도 알 수 있듯 대표적인 국부유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문제의 본질도 파악 못하고 있는 증권거래소와 애널리스트**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국내의 증권거래소와 애널리스트, 언론 등은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돼온 이같은 비판을 도외시하고 에쓰오일 예찬으로 일관했다.
증권거래소의 경우 주가조작 의혹이 터지기 며칠전인 지난 8일 에쓰오일을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선정, 상을 주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해 7월 에쓰오일을 주주중시경영 우수기관으로 선정, 포상했다. 다른 다수 언론기관들도 에쓰오일을 모범기업으로 선정해왔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국내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이다. 주가조작 혐의가 밝혀진 다음날인 19일 G증권의 이모 애널리스트는 "에쓰오일은 그동안 당기순이익 규모보다 더 많은 배당을 실시할 정도로 투자가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아온 기업"이라며 도저히 주가조작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도 무엇이 문제인지, 본질조차 파악못하고 있는 셈이다.
IMF사태후 한국을 지배한 착각중 하나가 이른바 '외국계 프리미엄'이다. 국내기업은 믿을 수 없다는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반대어로, 외국계라면 뭐든 좋다는 식의 노예적 사대주의에 다름아니다.
이번 에쓰오일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더이상 사대주의에 함몰되지 말라는 값진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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