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등의 분식회계 연루 의혹을 사고 있는 시티그룹 등 미국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집단소송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분식회계 공모 혐의가 짙은 시티그룹의 경우 이미 시티그룹 주주와 엔론 주주 양쪽 모두로부터 수십조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당한 상태여서, 분식회계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월가 일각에서는 이처럼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분식회계 공모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 금융주와 에너지기업주가 폭등한 것은 '인위적 시장개입'의 결과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시티그룹 주주 집단소송 제기**
뉴욕의 법률회사 로블 앤드 스튜어트는 24일(현지시간) "시티그룹이 파산한 엔론과 거래한 내용에 대해 투자가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시티그룹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집단소송은 1999년 7월24일부터 2002년 7월23일까지 3년간 시티그룹의 일반주식을 보유했던 모든 투자자들을 대신해 제기된 것이다.
미국은 상장기업들의 경우 집단소송이 의무화돼 있어 경영진의 불법·부실경영으로 주주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되면 법률회사들이 집단소송을 대행할 수 있다. 기업이 이같은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해당기업은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며, 최악의 경우 파산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금융감독 당국도 분식회계 가담 혐의를 받고 있는 월가의 투자은행들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 착수해 월가를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24일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월가의 12개 대형은행들이 증권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SEC의 스티븐 커틀러 감리국장은 "이미 12개 대형투자은행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SEC의 감리국과 규정준수국에서 상당한 인력이 투입돼 증권법 위반 여부를 확실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이와 관련,"현재 시티그룹, J.P.모건, 모건 스탠리, 골드만 삭스 등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융전문가들은 "그동안 회계부정 스캔들의 초점이 주로 해당 기업과 외부 회계감사법인들에 맞춰져 왔으나, 지금부터는 그동안 2선에 있던 투자은행쪽으로 단속의 철퇴가 본격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엔론 주주들도 시티그룹등 9개 금융기관에 2백50억달러 소송제기**
시티그룹 등 금융기관에 대한 소송은 해당회사 주주들로부터만 제기되고 있는 게 아니다. 이들 금융기관들이 분식회계에 공모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엔론 등의 주주들로부터도 이들 금융기관에 대한 소송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그런 대표적 예가 지난해말 파산한 엔론의 주주들이 시티그룹등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이다.
지난 4월8일 엔론주주들은 "12개에 달하는 월가의 투자은행과 법률회사들이 엔론과 결탁해 투자자를 기만했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엔론 본사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 지방법원에 제기한 이 소송에는 엔론에 투자해 최소한 2백50억달러의 손실을 본 캘리포니아 대학등 수천명의 투자자가 참여했다. 캘리포니아대의 경우 엔론에 투자해 1억4천5백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소송대리인 대표 윌리엄 르래치는 5백쪽에 달하는 방대한 고소장에서 "투자은행과 회계법인 등이 단순히 분식회계에 적극가담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이익까지 챙겼다"며 "이번 사기극은 범위에 있어 전세계적이고, 몇 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규모도 전대미문"이라고 주장했다.
르래치는 "이 사기극의 규모만 보더라도 엔론의 경영진들이 아무리 부정직하고 탐욕에 불타 있었더라도 그들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주장했다.
당초 이들은 엔론 파산 직후인 지난해말 29명의 엔론 경영진과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을 피고로 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나, 회사 파산으로 연금을 날리게 된 엔론의 직원들이 소송에 가담하면서 투자은행들에 대한 혐의가 추가됐다.
엔론 비리구조를 알고 있는 엔론 직원들은 당시"엔론의 분식회계는 휴스턴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월가 전체가 연루된 것이었다"며 "엔론의 투자은행과 법률가들이 엔론 피라미드형 사기극을 위해 창출하고 조직한 사건"이라고 주장했었다.
이 소장에서는 월가의 9개 대형투자은행들이 피고로 선정되었다. 그 명단은 23일 미국상원에 의해 엔론의 분식회계에 적극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시티그룹과 J.P. 모건을 비롯해 바클레이, 도이체 방크, 메릴린치, 크레딧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리먼 브라더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캐나다임페리얼뱅크 등이 망라돼 있다.
***엔론 외 다른 기업 주주들의 집단소송도 잇따를 전망**
법률전문가들은 미국 상원과 SEC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착수되면서, 앞서 이들 투자은행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던 엔론의 원고들도 승소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당시 "우리가 집단소송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부인했던 이들 투자은행들은 공포에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 큰 우려는 이같은 집단소송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23일 미 상원 조사위에 따르면, 시티그룹은 엔론 외에 7개 에너지기업, J.P.모건은 6개 에너지기업에 대해 분식회계 공모를 제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티그룹의 경우 엔론 외 3개 에너지기업과 실제로 분식회계 공모를 한 혐의가 짙은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천문학적 규모의 추가 집단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일 뉴욕에서는 분식회계 공모혐의를 받으면서 주가가 대폭락했던 시티그룹과 J.P.모건 및 에너지기업들 주가가 큰 폭으로 올라 의혹을 사고 있다.
한 국제금융전문가는 "J.P.모건이 분식회계 혐의를 강력부인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기도 하나 금융시장 붕괴를 우려한 월가의 인위적 개입 냄새가 나기도 한다"며 "며칠간 더 지켜봐야 확실한 추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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