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1박 2일간의 정상회담 논의 결과를 A4 용지로 3장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이는 합의문에 모두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논의는 충분히 하되 합의되지 않은 것은 추후 협상 과제로 넘기는 작업도 병행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후 정상회담을 예고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노이 선언에는 어떤 합의가 담길까?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월 초순 평양에서 가진 실무접촉에서 "12개 이상의 의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들 의제에 대한 합의가 목적이 아니었고 서로의 관심사와 요구 사항을 폭넓게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비건의 방북팀이 모두 16명으로 구성되었고 이들 가운데에는 "국제법 전문가들과 여러 명의 국무부 협상팀 소속 멤버들뿐 아니라 미사일 전문가, 핵 전문가들도 포함됐다"고 밝힌 부분이 주목을 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평화협정을, 국무부 협상팀은 북미관계 개선을, 핵과 미사일 전문가들은 비핵화 문제를 밀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건 방북 때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관심의 초점은 하노이 선언에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실질적인 이행을 알리는 '입구'와 그 대미를 장식하는 '출구'가 명시될 것인가에 모아진다. 입구에서는 핵 동결의 범위가 관건이다. 일단 이미 폐기했거나 그 절차에 돌입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 대한 현장 방문 및 영변 핵시설 폐기 합의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폐기에 합의하더라도 미신고 의혹 시설 및 핵탄두 제조 시설 문제는 담는다. 이들 문제에 대한 합의가 누락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에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 대북 강경파들은 북한이 영변 이외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도 핵물질을 비밀리에 생산할 수 있고, 이미 보유한 핵물질로 핵무기도 추가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 초기 이행조치에 '영변+알파'에 동의할 것인가의 여부는 결국 미국의 상응 조치 수준에 달려 있다. 미국이 통 크게 상응 조치에 취한다면, 북한은 미국이 지목한 의혹 시설에 대한 현장 방문과 핵탄두 제조 시설 가동 중단과 같은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로 화답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완전한 비핵화"의 정의가 보다 구체화될 것인지도 관심사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미국의 대북 핵위협 해소 방안이 포함될지,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범주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는 어떻게 처리될지가 관심사이다.
'출구'에 대해서는 비건이 이미 그 윤곽을 밝힌 바 있다. 그는 1월 31일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서 "나에게는 같은 시간에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 땅을 떠나고 제재가 해제되며 대사관 국기가 내걸리고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완벽한 결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지막 북핵이 반출되는 시점에 제재 해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협정 체결 등 핵심적이고도 최종적인 상응 조치도 함께 하자는 취지이다.
이러한 비건의 발언이 북한과 얼마만큼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온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 앞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를 두루 만났다. 그 직후에는 중국 및 러시아의 대표단과도 회의를 가졌다. 이들 두 나라는 북핵 외부 반출시 유력한 접수국들로 간주된다.
만약 하노이에서 이러한 수준의 합의가 나온다면 이는 최고 수준의 '빅딜'이 될 것이다. 사상 최초로 공동의 목표를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명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래는 이러한 희망을 담아 써본 가상의 하노이 선언이다.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이하 미국) 대통령 사이의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공동성명 양 정상은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구축된 신뢰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 북한과 미국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공약한 북미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와 조치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미국은 30일 이내에 북한 여행 금지조치를 해제하고 북미 양국은 금년 상반기 개소를 목표로 연락사무소 설치를 위한 협의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되는 시점에 양국 관계를 대사급 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양국 간의 경제와 문화 등 다방면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발굴 확인된 미군 유해의 송환에 사의를 표했으며, 양국은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 발굴 및 송환을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여행 금지 조치가 해제되는 즉시, 미국 내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2.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고 정전상태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안전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하면서 어떠한 무력으로도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을 올해 상반기 내에 개시하기로 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2020년 이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3.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하면서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를 배치 또는 전개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공약하였다. -북한은 2020년까지 핵물질 생산 및 핵무기 제조 시설의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불능화 조치를 취하고 제3국으로의 반출을 비롯한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의 처리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폐기를 확인하기 위해 유관국의 전문가들을 초청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30일 내에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인 폐기에 착수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올해 상반기 내에 영변 이외의 우라늄 농축 의혹 시설에 대한 유관국 전문가들의 현장 방문을 수락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올해 상반기 내에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의 총량을 신고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강화에 기여하기 위해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및 유엔 안보리의 제재 해제 결의 채택과 동시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에 복귀하고, IAEA의 추가의정서에도 가입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고 미국은 이를 존중하기로 하였다. 4.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관계의 발전이 상기한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유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한의 군사 분야 합의와 이행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에 따른 남북한의 경제협력 재개와 증진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신속하고 철저하고 동시적으로 이행하기 위하여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북미간의 실무회담과 고위급 회담, 그리고 유관국들과 다자 회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 발전과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 안전을 추동하기 위하여 앞으로도 계속 협력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적절한 시점에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갖기로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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