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그 타당성과 가능성을 두고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이런 논쟁에서 화석연료를 태워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 보이지만, 왜 '전기차'가 아니라 '수소차'인가를 두고는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한 쪽에서는 수소충전소 설치의 어려움을 들어서 수소차의 확대 가능성에 회의론을 펼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전기차 밧데리의 과중한 무게로 인한 트럭 등 상용차로의 이용 부적합성을 들어 수소차 시장의 가능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나씩 따지다 보면 두 자동차가 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어서 상호보완할 수 있다는 논자도 나온다.
하지만 '전기차' 대 '수소차'라는 구도가 타당한 것인지 혹은 이런 구도로 놓치는 것은 없는지 자문해볼 필요도 있다. 이미 몇몇 논자들이 지적하였듯이, 대체 그 전기와 수소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해서 따져 묻는 질문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현재 전기차를 충전하는 전력이 50%쯤은 석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전기차가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타당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수소차에 공급되는 수소는 어떨까? 현재 수소의 대부분은 석유나 천연가스를 열분해해서 얻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같은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전기차나 수소차나 자동차 차원에서는 모두 온실가스 배출이 없겠지만, 현재 수준에서 전력과 수소를 생산하는 차원에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정도 차이를 중요시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주장하려는 바는 전기(차)나 수소(차)나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전기(차) 혹은 수소(차)라는 단위 기술만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봐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기와 수소가 어떻게 생산, 공급, 충전이 이루어지는 지를 포함하여 자동차를 구동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 및 사회적 요소들과 그들의 관계 전체, 즉 사회-기술 시스템을 시야 속에 넣고 논의해야 한다. 의외로 이 문제를 빼놓고, 자동차 산업 그리고 고용의 관점에서만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수소차 혹은 전기차에 대해서 논쟁하는 맥락이 무엇인지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이 논쟁은 기후변화 위기에 맞서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0)로 만들려는 에너지전환의 시대적 요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수준에서 전기차와 수소차 중 어느 것이 더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지, 즉 정도의 차이에만 집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에너지전환의 전망과 경로와 어떻게 연계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이 논쟁을 자동차 엔진만이 아니라 유정까지 뻗어나가 연장된 시스템의 변화에 관한 것으로 바라본다면,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거대 기술 시스템의 형성에 관해서 연구한 토마스 휴즈와 같은 기술사학자가 제시한 '역돌출부'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생각해보자. 역돌출부는 전선(戰線)의 한 지점이 뒤처지면서 적선 전체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군사학적 개념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휴즈는 (심지어 사소해 보이는) 한 요소가 충분히 발전되어 다른 요소들과 연계되지 못하여 전체 시스템의 형성과 작동에 어려움을 겪거나 실패하게 되는 현상을 묘사하고자 했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구상은 몇 가지 역돌출부가 예상된다. 우선 수소 충전(수소차의 충전 탱크나 충전소 등)과 관련된 위험성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기업은 안전에 관한 연구개발의 강화, 정부는 한편에서는 안전 규정 강화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샌드박스'라는 일시적 규제 완화로 대응하고 있다. 사실 이런 접근은 꽤나 익숙한 것으로서 신기술 혹은 신산업의 초기에 기업이나 정부가 활용하는 전략이지만,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종종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당장 인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료전지 발전소를 둘러싼 주민갈등을 보더라도 결코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기술 개발의 약속과 기대의 충족, 그리고 규제완화라는 사회적 논쟁을 경유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역돌출부로 예상되는 것은 '그린 수소' 생산의 전망이다. 정부는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부생수소'나 '추출수소'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에 지나면서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 수소'를 확보해나가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2040년의 연간 수소 생산량이 526만톤으로 전망하면서, 그 중 30%는 여전히 추출수소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반면 석유화학산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부생수소와 함께,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생산하는 '수전해 수소' 및 해외에서 수입하는 수소를 총합한 비중이 나머지 70%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그린 수소'가 얼마나 될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 권고안에서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5~40%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있다. 정부가 수소경제 로드맵과 3차 에기본 사이에 정합성을 얼마나 검토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린 수소 생산량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여기서 '고착(lock-in)'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바라보자. 하나의 기술 시스템이 들어서면, 그에 대한 투자, 인력, 경험, 제도 등으로 인해서 변화의 필요성이 나타나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로의존성이라고 이야기하는 현상이다. 현재의 수소경제의 구상은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있기보다는, 그 출발점이 기존의 화석연료(특히, 천연가스)에 기반을 두고 시작하고 있다. 향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넘어가겠다고 하지만, 그 전에 투자된 천연가스 기반의 수소 생산시설, 천연가스 수입을 위한 장기계약, 그와 관련하여 고용된 인력과 기술 및 경험 등을 두고 쉽게 전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연초 산업부 장관과 고위공무원들이 석유화학 그리고 천연가스 산업계 인사를 만나 수소경제를 언급하면서 투자를 독려한 일이 상징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이미 연료전지용 천연가스 요금 제도가 새로 마련되어 5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이런 분석과 동향을 고려해보면, 현행 수소경제 구상은 천연가스에 기반을 둔 수소 생산 시스템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논쟁 중인 수소차의 친환경성은 제고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수소경제 로드맵은 에너지전환의 전망과 부합하기 어려운 구상이다. 수소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주는 에너지저장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인정되지만, 적어도 지금 구상 내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에너지전환의 비전이 명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져 과잉 생산된 전력의 활용 방안으로 수소 생산과 저장이 구체적으로 검토가 되지 않는 한,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 된다.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보자면, 재생에너지가 제대로 확대된다는 조건 하에 수소 생산 및 연료전지 활용에 대해서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상은 그에 부합하지 않는다. 에너지전환과 부합할 수 있도록 수소경제 로드맵을 재구성하는게 필요한데, 천연가스로부터의 '추출수소'라는 경로를 경유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전해 '그린 수소' 경로로 곧장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수소경제 로드맵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확대과 그에 따른 간헐성 문제 해결을 포함하기 위한 프레임(3차 에기본에 일부 제시되어 있다)과 연결에 대해서 좀더 확실히 검토해야 한다. 그 중에서는 수소 연료전지의 전력 이용뿐만 아니라, 열의 이용에 대한 구상도 명확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수소 연료전지의 효율성이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 지금 로드맵에는 빠져 있는 부분이다.
글을 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부의 로드맵에서 당황스러운 장면을 지적하고자 한다. 수소경제 로드맵은 에너지안보가 제고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해외에서 생산된 수소를 수입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에너지안보에 취약한 것은 사용하는 거의 대분의 에너지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석유에서 천연가스로, 나아가 수소로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입하는 에너지원의 종류와 수입 지역을 다변화하는 것으로, 그리고 심지어 중동에서 벌어진 명분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것으로 에너지안보를 지키려고 했지만, 에너지전환 시대는 국내의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 에너지안보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정부의 수소경제 로드맵은 수입되는 에너지 종류는 다르겠지만 전통적인 '석유/천연가스의 지리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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