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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가 조정래의 '김근태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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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가 조정래의 '김근태 지키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던 두달 전 약속 지켜

지난 3월24일 오후의 일이다.
여의도 국회내 의원동산에 김근태 의원의 친우 및 지지자들 4백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치자금 양심고백을 한 뒤 역풍을 맞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중도사퇴한 그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중에는 <태백산맥> <한강>으로 1천만부의 기록적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의 대소설가 조정래 동국대 석좌교수도 끼어있었다.

조정래 교수는 이날 마이크를 잡고 "내 일이 바빠 김근태를 돕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가) 하면 양심도 도덕도 없는 형편없는 것이라는 혐오가 군사정권 이후 문민이나 국민의 정부에서도 계속 커왔으나 양심과 도덕을 지키다 산화하여 우리 정치에 희망과 자정능력을 보인 김 의원이야말로 희망의 시작"이라고 김 의원의 양심선언을 높게 평가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두달이 지난 뒤인 5월24일 조정래 교수는 "내 일이 바빠 김근태를 돕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던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에 쓴 '김근태 양심선언 헛되게 말라'는 제목의 시론에서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검찰소환을 앞두고 있는 김근태 의원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김 의원의 행위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선진국의 '내부고발자 보호법' 정신에 근거해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조 교수는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 문명국들은 시민의 양심선언도 보호하는 법을 갖고 있다.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그것이다. 고발자 한 사람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불법행위를 예방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유익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며 "일반시민의 양심선언이 그러할 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양심선언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김 의원을 단순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그것은 불법을 침묵 속에 은폐하고 있는 비겁한 정치인들을 더욱 육성하는 것이며, 이 나라의 뿌리깊은 정치부패를 더욱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글을 "지금 국민은 모든 정치인이 김 의원을 따라 고백성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며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을 계속 보아야 하는 우리의 슬픔은 크고 크다"고 끝맺었다.

3홍 비리, 타이거풀스 비리 등에 연루돼 연일 치부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식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현 정치판에 대한 절망과 질타였다.

조정래 교수의 '김근태 지키기'가 단순히 김근태라는 한 개인에 대한 약속지키기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정치판 전체의 자정(自淨)을 바라는 시대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한 노력의 하나임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조정래 시론 "김근태 양심선언 헛되게 말라" 전문**

인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인류의 삶을 발전시켜 왔다. 그 많은 발명품 중에서 가려뽑은 3대 발명품이 정치·종교·언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그 정치라는 발명품을 잘못 써서 소란스럽고 어지럽기 그지없다. 부질없는 망상인 줄 알면서도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너무 깊어져 정치 없는 세상에 살기를 바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탁류 속에서도 맑은 물줄기를 향해 외롭게 몸부림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깨끗한 정치'를 위해 양심선언을 한 김근태 의원이다. 그가 당내 최고위원 선거에서 자신이 쓴 불법자금을 고백했을 때 세상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그 놀라움은 '저런 정치인도 다 있나!' 하는 것이었고, 그 사람이 김근태인 것을 확인하고는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박수는 자신의 과오를 국민 앞에 고백한 양심과 용기에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김 의원 한 사람을 넘어서서 모든 정치인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 앞에 그렇게 고백성사를 하고 거듭 태어나라는 요구이고 바람이었다.

그러나 그 순박하고 절실한 박수는 무참하게 묵살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혼자 깨끗한 척 한다"며 비아냥대거나 "득표를 위한 극약처방"이라고 정치인들은 김 의원의 진실을 폄하하기에 바빴다. 자기들 잘못을 비추는 거울을 보며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 거울에 먹칠을 해대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국민을 또 한번 절망에 빠뜨렸다.

정치권의 철통같은 침묵 속에서 김 의원이 따돌림당하는 것으로 일은 끝나지 않았다. 김 의원의 고백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해 김 의원은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의롭고자 한 고백은 의법조치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고 불의한 침묵은 법밖에 안주하는 모순을 우리는 목도하게 됐다. 이런 황당한 현상이야말로 이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김근태 의원이 어둠에 묻힌 오늘의 정치를 밝히려고 횃불을 들어올린 순수함과 진정성은 저 1980년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오늘의 정치인 중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80년대의 투쟁을 통해 김 의원이 당한 고초와 수난을 넘어설 사람이 그 누구인가. 김 의원은 그때의 항심으로 이 나라 정치의 내일을 열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그동안의 의원생활을 통해서도 검소한 사람, 겸손한 사람, 덜 때묻은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던 것도 80년대의 시대정신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는 그 어떤 내용의 고백성사도 신의 이름으로 감싸 용서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 문명국들은 시민의 양심선언도 보호하는 법을 갖고 있다. 내부고발자 보호법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고발자 한 사람의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불법행위를 예방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유익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일반시민의 양심선언이 그러할 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양심선언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그런 법이 없다. 그렇다고 하여 김 의원을 단순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불법을 침묵 속에 은폐하고 있는 비겁한 정치인들을 더욱 육성하는 것이며, 이 나라의 뿌리깊은 정치부패를 더욱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검찰은 이번 일을 불법 정치자금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이 나라의 정의로운 정치를 여는 바탕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모든 정치인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때가 늦지 않았으니 정치인들은 더 이상 귀를 막지 말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지금 국민은 모든 정치인이 김 의원을 따라 고백성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 용서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을 계속 보아야 하는 우리의 슬픔은 크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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