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은 한 정치인이 거듭 태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며, 정치개혁에 대한 새로운 다짐입니다. 깨끗한 정치문화 실현과 국민이 신뢰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한 고뇌의 충정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하는 바입니다."
당시 기자회견문에 들어있는 말이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진심임을 먼저 밝혀둔다.
나는 무엇보다 두려운 것에 대해 굴욕하는 것을 최대의 모욕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문제에 이르면 다르다. 스스로에 대해 나는 엄정하고 단호한 잣대를 두려고 노력해 왔다.
전날 잠을 설치면서 나는 내 영혼에 물었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오래도록 생각해 왔다. 내 안의 나는 거듭 나에게 질책했다. '김근태, 너는 무엇인가.' 결심은 섰다. 사심 없이 기자회견장에 설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월3일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최고위원 경선 당시 회계담당자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누구 말대로 순진한 마음 뿐이었을까. 근래에 내가 여러 번 약속한 것이니,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내가 먼저 얘기해야겠다는 생각.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초유의 정치실험인 국민경선제가 국민동원경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엄숙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투명한 정치야말로 모든 정치개혁의 근본이 아니던가. 정치개혁, 정치문화의 탈바꿈 없이는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은 덜 부끄러운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음을 밝히고 싶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변했다. 경제의 속도, 시간의 속도는 걷잡을 수 없다. 그러나 한 사회의 규칙과 제도를 정하는 정치는 그대로다. 한국정치는 너무 조금씩만 변하고 있다. 경제구조의 변화를 정치가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민주당 쇄신을 주장했고, 국민경선제를 관철시켰으며, 정치자금 투명화가 정치개혁의 근본임을 강조했다. 당내 경선을 투명하고 바르게 하기 위해 국가 중앙선관위가 감시ㆍ감독해야 한다고 호소했고, 내가 먼저 지구당 순회 비용 혹은 밥값을 내지 않겠다고 했고, 실천했다.
나의 행동은 그러한 일관된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그렇다면 나는 그 자리에 서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안의 부족한 것을 두고 타인을 욕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프레시안의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5일 '한국의 은행, 민영화로 탈국영'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성공적 금융개혁을 격찬했다고 한다. 또한 붕괴위기에 직면한 일본금융이 살아나기 위해서 한국의 뒤를 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도 한다.
관치금융, 부패금융을 극복하고 독립되고 능력있는 금융, 투명한 금융산업에 대한 칭찬이라고 보고 싶다. 일본이 하지 못한 이유는 위기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역설일까? 절망의 IMF 관리체제를 통해 우리는 희망의 빛을 발견했고, 이제 조금씩 긍정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진척시켜 나가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이것이 왜 지금 발표해야 했는가에 대한 나의 답이다. 모든 부문은 개혁을 수용하고, 투명화로 가고 있는데 유독 정치만 멈추어 있다. 너무 조금씩만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은 비판의 화살을 정치권에 돌리고, 정치자금의 투명성 나아가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전경련은 정치자금에 대해 투명하겠다는 약속을 발표했다.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언제 누가 할 것인가?
한나라당이 나의 행동을 두고 정치적으로 악용을 하고 있다. 옳지 않다. 나는 내부에 터부가 있는 이들의 이전투구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그러한 선언을 한 것이 아니다. 정치투명성 나아가 정치개혁의 돌파구를 만들고자 했던 것일 뿐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자격이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세청을 동원해 엄청난 정치자금을 동원하고도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한나라당은 내가 그들이 한 번도 극복해 본 적이 없는 부패ㆍ특권세력과 싸우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했던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 그것은 무한한 책임과 헌신성을 기초로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길에 나서면서 자신의 부족함과 터부를 남김없이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여전히 믿는다. 정치자금 문제를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습관ㆍ관행이 지속되면 품성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국회는 투명하지 않은 정치자금에 대한 관행을 극복하기 위한 절실한 법 개정 대신 비현실적이고 투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법 조항에 타협했다. 비현실적인 정치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구속력 있는 중앙선관위의 공적인 감독을 촉구하기보다 그저 관행에 승복하고 말았다. 결국 현행 법은 탈법을 조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성이 없는 정치자금이지만,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문제가 있다면 나는 국민과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에 대해 책임질 자세가 언제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의 비판과 정쟁화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경선 전략이 아니냐고 묻는다. 한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지나온 날을 보라고 했다. 허튼 경선전략에다가 갖다 붙일 것이라면, 아무리 김근태가 정치권 안에 들어왔다고 해도 아예 나서지를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타락할 만한 용기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부정부패ㆍ지역주의ㆍ특권을 극복하고 개혁과 평화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중심국가를 만들기 위해 나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다.
부정하고 낡은 것들은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더 퇴행적 노력을 경주한다. 국민의 여론은 충분히 무르익었고, 그 때 앞선 실천이 필요하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나는 부정부패와 싸워서 이길 것이다. 그것이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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