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기준 총장, 모호한 조기사퇴 의사 표명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기준 총장, 모호한 조기사퇴 의사 표명

<속보> 전임 선우 총장의 명쾌한 처신과 큰 대비

이기준 서울대총장이 26일 애매한 뉘앙스로 조기퇴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장은 26일 오후 발표한 사과성명에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후임 총장을 선출해 차질없이 업무를 인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만 본다면 명백한 조기퇴진 의사 표명이다. 그러나 이 대목 전후의 문장을 보면, 과연 조기퇴진 의사를 밝힌 것인지가 헛갈린다.

***조기퇴진하겠다는 건지, 않겠다는 건지?**

이 총장은 이 문장에 앞서 "소홀한 몸가짐으로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서울대의 명예에 누를 끼쳤다는 아픈 자책을 거듭하며 이 시점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두고 깊이 고뇌해 왔다"며 "어쨌든 이런 물의가 빚어졌으니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공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그러나 다음 문장에서 "그러나 나는 뼈를 깎는 자성을 바탕으로 심기일전하여 이 사태를 수습하고 총장으로서 해오던 일들을 잘 마무리지은 다음, 후임 총장에게 대학행정을 정돈된 상태로 넘기는 것이 또한 내게 맡겨진 엄중한 책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금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다음에 나온 문장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후임 총장을 선출해 차질없이 업무를 인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문제의 문장이다. 그런데 이 문장 다음에는 "이는 물론 나를 총장으로 선출해준 여러 교수의 동의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였다.

***이 총장, 시간벌기 아니냐?**

일부 언론은 이 성명을 놓고 이 총장이 조기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뒤 문장과 연계해 보면 다분히 무리가 따르는 해석이라는 게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한 학생은 "이 총장 성명을 조기사퇴 의사로 해석해 보도한 것은 좋게 보면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빨리 물러나라'는 언론의 압박으로 해석가능하며, 나쁘게 보면 이날 성명에 숨겨져 있는 이 총장의 시간끌기 전술을 못 읽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학생은 "이 총장의 임기는 오는 11월로 끝난다"며 "이 총장의 애매한 성명은 '반년만 시간을 더 끌면 임기를 채울 수 있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길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생은 이 총장의 이날 성명이 학생이 아닌 교수들만 상대로 한 성명 형식을 취한 대목에도 강한 반발과 의구심을 나타냈다.

실제로 이날 성명은 "존경하는 교수님께"로 출발하고 있다. 또한 성명 곳곳에서 학생들에 대한 적개심과 울분을 감지할 수 있다. 한 예로 이 총장은 이날 성명에서 "일부 학생들이 학사과의 컴퓨터를 강탈한 데 이어 총장실을 점거하고 공문서를 탈취, 유포한 행위는 매우 충격적이고 또 잘못된 일"이라며 "이번 사건의 잘못에 대하여는 학칙이 정한 바에 따라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학생총회에서 참석자의 90% 이상이 이 총장 사퇴을 요구한 학생들을 더이상 대화의 상대 또는 사과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학의 또다른 주체인 학생들이 이 총장의 조기사퇴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선우 총장과 대조적인 이 총장의 처신**

서울대에서는 이 총장의 미온적 처신과, 역시 스캔들로 중도사퇴한 선우중호 전 총장의 명쾌한 처신과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이 총장의 전임 총장이던 선우중호 총장은 98년 8월 부인이 강남의 H학원에 2천만원을 내고 한달반 동안 딸에게 고액과외를 시킨 사실이 경찰 조사결과 밝혀지자 8월29일 군말 없이 사과 성명과 함께 총장직 사표를 제출했다. 96년 2월 총장에 임명했으니 잔여임기가 1년반이나 남아있던 때였다.

당시 서울대가 취한 조치도 대단히 신속하며 엄중했다.

서울대는 사퇴제출 사흘 뒤인 9월1일 사표를 수리하는 동시에, 선우 총장의 교수직까지 박탈했다. 현행 공무원법에 국립대 총장 퇴임시 소속 단과대 교수로 돌아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우 전 총장은 그 다음해인 99년 2월에는 특별채용 절차를 거쳐 서울대에 복귀할 수 있었고, 2000년 12월에는 명지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이같은 선우 총장의 대응과 이기준 총장의 대응은 여러 모로 비교된다.

대학 규정을 어기고 대그룹 사외이사를 몇년씩 하면서 고액을 받은 사실이나, 해마다 4억5천만의 거액을 판공비로 사용한 사실, 의혹이 제기되면서 귀국해 병역을 마치기는 했으나 총장 취임당시 제기됐던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이 총장을 둘러싸고 지난 3년여간 제기된 물의는 결코 선우 총장의 그것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어쩌면 지금 조기퇴진시 현행 공무원법에 따라 소속 단과대 교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말못할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임 선우총장이 보여주었듯, 진퇴를 명쾌히 할 때에만 그 다음 길이 열린다는 사즉생(死卽生)의 교훈을 곱씹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