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에너지전환 지정학 국제위원회는 제9차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총회에서 '새로운 세계: 에너지전환의 지정학' 보고서를 발표했다. 재생에너지가 추동하는 새로운 에너지 시대는 국제적, 국가적, 지방적 차원을, 그리고 이들 서로 간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으로 국제관계, 권력지형과 사회·경제·환경적 불안정 등 지정학적 구도와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바뀐다. 과거 2세기 동안 펼쳐진 화석연료로의 전환이 전 세계에 미쳤던 영향만큼이나 국제정치경제가 전면 재편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전환 시대를 맞은 한국 역시 국제적 맥락에 깊숙이 박혀 있다. 지속가능발전을 뒷받침하는 에너지전환에 적극적인 국가와 지방은 더 큰 성과를 얻고 소극적인 곳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면, 에너지전환의 지정학은 아직 미결정된 상태라 하겠다.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신기후체제 1단계를 마감하는 2030년, 더 길게는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대응의 최종 성적표를 받게 되는 2050년, 이런 시간표에서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에너지전환 정책 3년차인 올해, 우리의 미래, 특히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김정환 시인은 "전망은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했지만, 미래 구상과 실천을 아직 출현하지 않은, 미지로 향하는 다양한 실험과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현재의 흐름 속에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핫이슈를 꼽자면 새만금이 아닐까 한다.
새만금 개발과 재생에너지 비전
2017년 12월에 선보인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재생에너지는 집중형 모델과 분산형 모델이 경합하거나 공존하게 된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계획은 이런 측면에서 복잡한 질문을 제기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 개발은 입지, 규모, 비용과 편익 측면에서 논쟁적인 사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새만금의 경우,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구분 짓기 힘든 사안이다. 에너지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도 원칙을 세우기 쉽지 않고 전략적 판단이 중요해지고 있어 에너지 정치(energy-politics 또는 energopolitics)에 주목해야 한다.
작년 10월 30일,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서 정부가 바라보는 새만금과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전북도민의 뜨거운 여망으로", "27년간 긴 어려움을 닫고", "새만금 갈등을 딛고 화해와 번영의 상징", "지역균형발전의 새로운 거점", "재생에너지 중심지", "지역상생의 모범" 등이 가리키는 건 새만금이 "에너지 전환정책을 가름하는 시금석"이라는 것이다. 전라북도와 새만금개발청의 기대치 역시 다르지 않다. 최근에는 새만금국제공항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결정과 합쳐지면서 지역개발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3020과 집중형 재생에너지 모델
총 4GW급 재생에너지단지(새만금 내측 3GW와 외측 1GW 규모)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의 신규(2018~2030년) 대규모 프로젝트 48.7GW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다. 태양광과 풍력 제조산업단지 조성 및 연구 인프라 구축은 제조업의 붕괴로 발생하고 있는 산업·고용위기 지역에 대한 위기관리와 지속가능한 산업전환 및 재생전략에 유력한 방식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집중집권적 에너지시스템과 그 정치경제권력으로 흡수될 우려가 있으며 실제 그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더 민주적인 에너지 미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가능성일 뿐 확실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역에너지는 기존 지역정치 동학을 강화하거나 사회적, 환경적 측면보다 단기적 경제이익을 우선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대규모 집중형 재생에너지 모델이 에너지전환의 양적 성장에는 긍정적일지라도 에너지민주화에는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새만금의 장소성과 재생에너지의 의미
1980년대 후반부터 농지조성 목적으로 개발되던 새만금 간척이 산업, 물류, 관광용지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와 시민사회에서 재생에너지 단지를 검토하고, 그 결과 기본 구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새만금 매립과 개발이 더딘 사이 수질 악화 등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져 해수 유통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해수유통과 개발계획(마스터플랜) 변경을 요구하는 새만금도민회의가 출범했다.
재생에너지 비전 발표 직후, 도민회의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의지는 환영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을 계속하는 방식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 1월, 도민회의는 "새만금사업을 볼 때 한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않으면 위험하다. 에너지계획이 수자원 복원, 수질 개선, 어업·관광업 활성화와 함께 기획되고, 이 과정에서 도민들이 실질적 혜택을 얻도록 정부의 에너지계획은 수정되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수상태양광이 어족자원 복원을 해치지 않을 것, 어업 및 관광업과 상충되는 부지를 변경하거나 후순위로 미룰 것, 매립을 위한 용지조성형 태양광 비중(1GW)을 줄이고 도민수익형(0.3GW)와 기업유치형(0.5GW) 비중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민관협의회의 역할과 과제
정부와 새만금개발청은 2022년까지 3GW 내측 개발을 완료할 생각이다. 여러 문제가 제기되자 새만금 재생에너지 민관협의회가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생태디자인센터 김재병 소장은 민관협의회가 진정한 거버넌스가 되기 위해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고 실질적인 결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앞으로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정책들이 마련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재생에너지 계획입지제도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주민수용성 프로그램(ESTEEM)과 같은 혁신적인 참여제도가 선도적으로 도입되길 기대해본다.
시인 김수영은 바다와 파도를 보고 "세찬 에네르기"를 떠올렸다. 새만금이 힘차게 에너지를 내뿜을지, 나아가 에너지전환의 시금석이 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와 민주주의 모두를 발전시킬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에너지전환 진영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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