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경우 방위비 분담금은 문재인 정부가 말해왔던 "국민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조 원이 무너지는 셈이 된다. 또한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함으로써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앞서 한국의 분담금을 최대한 끌어올려 '내가 해냈다'는 식의 자화자찬의 소재로 삼을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분담금을 한국의 국방비 인상율과 연동한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이전까지는 대개 물가상승률과 연동했던 반면에 이번엔 국방비 증액률과 연동시킨 것이다. 그 결과 올해 분담금 인상율은 예전의 2~3배에 달하고, 내년도에는 10억 달러(1조 1305억 원) 규모에 달할 공산도 커졌다.
이와 관련해 국내 언론의 오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최근 연두교서를 통해 "미국은 우리의 우방, 특히 나토 회원국들에게 불공정하게 대우 받았다"며,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나토 동맹국들로부터 1000억 달러 이상의 방위비(defense spending) 인상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국내 대다수 언론은 나토 회원국들이 마치 방위비 분담금을 1000억 달러 이상 인상한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말한 "방위비(defense spending)"는 미군 주둔에 따른 분담금이 아니라 나토 회원국들의 국방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보를 지적한 이유는 국민들로 하여금 오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이 무려 1000억 달러를 올려줬다면 우리도 1억 달러 정도는 올려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방비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은 GDP 대비 2.6% 수준으로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의 GDP 대비 1.8% 수준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남아도는 분담금, 어디에 쓸까?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한미동맹과 이를 둘러싼 국내 정치의 불편한 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래 한미동맹에는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것이 없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는 주한미군 유지에 따른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고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제공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부터 미국은 예외적인 특별 조치로 한국에도 주한미군 주둔 경비 분담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1년 1073억 원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9602억 원, 그리고 올해에는 최초 분담금의 10배에 해당하는 1조 500억 원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한의 체제 경쟁이 사실상 끝난 시점부터 오히려 방위비 분담금이 신설되고 매년 대폭적으로 늘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황당한 점도 있다. 미국은 한국이 주는 방위비 분담금도 다 쓰지 못해왔다. 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용처에 비해 과도하게 책정돼 생긴 '미집행액'이고, 또 하나는 쓴다고 해서 줬는데 쓰지 못하고 남은 '불용액'이다. 이렇게 생긴 돈만도 5000억 원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남은 돈을 국고에 반환하고 방위비 분담금은 늘릴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 상식에 맞다. 하지만 미국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갑질을 주저하지 않았고, 국내 보수 진영에선 '돈 몇천억 원에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느냐'며 정부를 압박했다. 야당 때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더불어민주당도 거의 침묵을 지켰다. 이에 더해 문재인 정부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주는 돈이 다 쓰지 못해온 미국이 앞으로 받게 될 더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타결된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 사업비는 한국과 미국이 반반씩 부담키로 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부담을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 충당했다. 그 결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비용 부담률은 한국이 93%, 미국이 7%였다.
이러한 사례는 앞으로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일례로 2017년 주한미군 사령관은 미 의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성주에 배치된 사드 기지를 성능 향상시키는 데에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이 사드 부지를 제공하고 전개비용과 운영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한다는 합의와 배치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분담금을 올릴 근거가 마땅치 않자, '작전 지원비'를 신설해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번 합의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었는지의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전략 자산 전개비용을 우리가 부담키로 한다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질 수밖에 없다. 4.27 판문점 선언을 비롯한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에는 미국이 부담했던 비용을 정상회담 이후에 한국이 부담키로 한다면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국회, 비준 동의 과정에서 제대로 따져야
이에 따라 정부는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점을 확고한 마지노선으로 삼아야 한다. 오히려 미국이 더 이상 전략 자산 자체를 전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대신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인건비를 현재 75%에서 100% 부담하면서 직접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도 일부 충족시킬 수 있고 우리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아울러 국회는 비준 동의 과정에서 철저히 검증해서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미국에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민주당은 이러한 태도가 정부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협상력을 제고해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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