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당권주자 '빅3'중 한 명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경쟁자인 다른 주자들보다 1주일 이상 늦은 출사표였지만, '탄핵 수용', '박근혜 극복' 등 메시지 면에서 명확한 차별화를 꾀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당 당사에서 한 출마선언에서 "용기를 내어 솔직히 말씀드린다"며 "국민적 심판이었던 '탄핵', 더는 부정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오 전 시장은 "지난 2006년 커터칼 테러를 당하면서도 저를 지원유세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안타까움이야 저인들 그 어떤 분들보다 덜 하겠느냐"며 "그러나 의리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국민이다. 불행히도 대통령으로서 박근혜는 국민들과 당원들의 바람에 큰 실망을 안겨드린 게 사실"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헌법적 가치에 부응하게 사용하지 못했다"고 박 전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면서 "이제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른바 '빅3'중 황교안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여론을 강조한 데 이어 오는 8~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문 등 대구·경북 방문 일정을 계획하고 있고, 홍준표 전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석방론을 펴고 있다. 이들과 명백한 차별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질의응답에서도 그는 "아직 확정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우리 당에서, 그것도 전당대회 국면에서 (사면론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으며 "사면 복권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을 때 가능한 화두다. 저 역시 전직 대통령을 2명이나 감옥에 가둬두는 상황이 결코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런 필요성은 국민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돼 나와야 우리 당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담아낼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박근혜냐, 아니냐' 논쟁으로 총선을 치르기를 민주당은 내심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런 프레임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총선은 참패"라고 경고했다. "이제 '박근혜' 이름 세 글자를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오 전 시장은 "무너져 내린 이 땅의 보수우파를 재건하는 첫걸음은 바로 이렇게 우리의 과거를 냉철히 반성하고, 횐골탈태해 가치와 비전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라며 "보수 우파만의 지지를 넘어 침묵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의 성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교안에 "정치 초년생, 불안"…홍준표에 "처참한 패배 자초"
다른 주자들에 대한 견제도 폈다. 그는 새 지도부의 비전으로 "당의 기초부터 다시 세우겠다. 당 조직 전체가 개혁보수의 가치를 공유하고, 국민들 앞에서 자신있고 당당하게 '보수'임을 말할 수 있도록 당 체질부터 강화하겠다"며 "이는 '정치 초년생'이 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라고 황 전 총리를 겨냥했다.
그는 이어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한 후보'에게 기회를 한번 줘볼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한가하지 않다"거나 "이미 기회를 잡았었지만 처참한 패배를 자초한 분에게 다시 맡길 수도 없다"고도 했다. 앞부분은 황 전 총리를, 뒷부분은 홍 전 대표를 꼬집는 말로 해석됐다.
그는 "다음 총선은 '문재인 심판'이 돼야 이긴다"며 "제1야당 대표의 흠결이, 불안한 과거나 그로 인해 연상되는 프레임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는 또 방어를 거듭하다 패배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이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분들이 총·대선에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가야 할 길'이란 곧 '개혁 보수'를, '현실과 타협하는 길'은 전직 대통령 사면론 등 우익 회귀 노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 당에 덧씌워진 '친박 정당'이라는 굴레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제가 '무상 포퓰리즘'에 맞서 모든 것을 다 걸고 싸울 때, 그 다음 해 치를 총선과 대선을 의식해 포퓰리즘 반대 운동에 나서지 않고 숨어버렸던 정치인들의 보신주의와 비겁함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질의응답에서 한 기자가 '황 전 총리가 대표가 되면 '도로 탄핵당' 프레임에 갇힌다는 지적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물론"이라며 "원하든 원치 않든, 박 전 대통령이 그 분을 탐탁해 하든 안 하든 그분 가슴팍에는 박근혜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법무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본인이 어떻게 말해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더구나 대통령께서 유죄 판결을 받고, 탄핵 심판을 받고 수감된 상황에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이 상식적인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는 황 전 총리에 대해 "한 번도 검증된 적 없는 분"이라며 "전당대회 직전 당으로 들어왔다. 뭔가 불안한 요소가 본인에게 있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 분의 병역 문제나 월 1억 원 소득에 대한 얘기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물어보시니 답변드린다"며 "저같은 경우 똑같이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초임 변호사와 같이 월 500만 원만 받고 있다. 제가 경력이 황 전 총리만 못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홍 전 대표에 대해서도 "본인이 당 대표(를 지낸) 이후 비대위가 탄생한 전 대표"라며 "똑같은 현상이 내년 총선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 분의 행태가 바뀐 것도 없다. 그 점을 당원들이 주시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홍준표 전 대표가 조간신문 인터뷰에서 '비(非)황교안 단일화'론을 주장한 데 대해 "양 측 출판기념회에 참모들이 축하하러 축하 사절로 간 일만 있다"며 "그것을 침소봉대해서 출마선언 당일에 그런 보도가 나오도록 한 홍 전 대표의 정치감각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했다. 그는 "출마선언 단계"라며 "단일화는 전혀 생각한 바 없다"고 했다.
그는 회견 마지막 정리 발언에서도 두 경쟁자를 싸잡아 "우리 당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년 총선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며 치르는게 아니라, 기업으로 치면 'CEO 리스크' 때문에 방향을 잃고 혼돈 속에서 치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문재인 때리기'는 대동소이
다만 오 전 시장 역시 현 정세에 대해서는 다른 주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진단을 내놨다. 그는 "1년 9개월 만에 문재인 정권은 우리 대한민국을 중환자로 만들어놓았다"며 "김정은의 대변인 같은 대통령의 처신에 국가 안보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탈원전 정책 등 아마추어 경제실험으로 빈곤층은 몰락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김태우·신재민 (등) 양심적 내부고발자에 의해 정권 부패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 딸 가족은 해외로 이주하고, '영부인 절친'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에 최측근 김경수 지사 실형까지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 2년 동안 문재인 정권은 우리를 영원히 침몰시키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왔다. 공적 영역은 물론, 언론·사법·교육·노동을 막론하고 국가 전 분야에 자기들과 '코드'를 맞춘 세력들을 광범위하게 포진시켰다"고 보수층의 위기감을 겨냥했다.
"심지어 김경수 지사가 구속되자, '양승태 대법원장 협조자'라며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 100명을 교체하겠다는 망언이 민주당 대변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가히 한국판 문화혁명"이라고도 했다. "김경수 법정구속 법원 판결에서 보듯, 부정 선거로 탄생해 정통성마저 의심받는 정권"이라는 주장도 폈다.
오 전 시장의 출마의 변은 "무능한 과속·불통·부패정권을 심판하고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일대오의 보수 대통합과 혁신을 이뤄내 내년 총선에서 저들을 응징하고, 그 힘으로 정권을 탈환하려 한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국적인' 국민 지지다. 설령 영남의 65석을 석권한다 하더라도, 수도권의 122석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의 희망인 정권 탈환은 한낱 꿈에 머물 것"이라고 "보수 통합", "수도권 압승"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과거 서울시장 시절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그 결과 시장직을 내려놓았던 일에 대해 그는 "저부터 반성하겠다"며 "서울시장 시절, 망국병인 '무상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더 치열하게 싸워 이겼어야 했다. 그래야 지금 저들이 무차별 살포하고 있는 '세금 포퓰리즘'을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인데 제가 너무 성급했다. 한꺼번에 시장직까지 걸었던 점,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공평이란 이유로 무조건 똑같이 나누는 사회는 지금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 시절 한국당이 아동수당 100% 지급에 동의한 데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저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당대회 일정에 대해서는 "연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재강조하며 "당에 확인할 결과, 장소 사정 때문에 곤란한 상황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러나 길바닥에서 행사를 치르더라도, 천막당사 정신으로 돌아가 풍찬노숙한다는 마음으로 야외에서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장소 때문이라는 이유로 강행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당내 일각의 '당·대권 분리' 주장에 대해서는 "물론 나올 수 있는 주장"이라면서도 "지금 우리가 선후를 가릴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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