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좀처럼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야수들조차 생존을 위한 최소의 살육을 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배가 불러도 곳간을 더 채우려 싸움을 벌인다. 호전적인 침략전쟁을 벌이기 일쑤다. 21세기의 호전국은 미국이다. 21세기 들어서만도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했고, 시리아 이란 북한을 으름장 놓는 중이다.
군사력 측면에서 미국은 21세기의 최강국이다. 국제정치학의 기본용어 가운데 하나인 힘(power)을 지닌 유일 패권국가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패권국가를 연구한 정치학자 조지 모델스키는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장주기(long cycle)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강대국의 필수요건으로 '해군력'을 꼽았다. 근대사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모두 해군력으로 식민지를 넓혀나갔다.
21세기 세계적 강대국을 재는 잣대는 바다보다는 하늘을 제압하는 힘(제공권)이라 여겨진다. 제공권에 관한 한 미국은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도 맞설 수 없는 초강대국이다. 미국은 공습으로 전쟁의 승패를 갈라왔다. 흔히 우리가 공습이라 부르는 것은 미 군부의 용어로는 '전략폭격'(strategic bombing)이다. 미 공군의 고급 지휘관들은 전략폭격이 2차대전 이래로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라 여겨왔다. 미 공군이 한국전쟁을 겪은 뒤인 1954년에 만든 『공군 교범 1-8』은 "전략폭격은 적국의 저항의지와 능력을 분쇄하기 위한 것"이라 규정했다.
***공습 맹신주의에 날벼락 맞는 민간인들**
미군 지휘부는 위와 같은 공습의 정의에 바탕, 공습이 전쟁의 승패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신념처럼 여겨왔다. 21세기 들어 미군은 '스마트 폭탄'(smart munitions)이라는, 보다 명중률이 높은 폭탄을 쓰고 있기에 오폭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군사비평가들은 공습이 군사적 그리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고 오폭이란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베트남전쟁이 좋은 보기다. 제공권을 장악하고 융단폭격을 퍼부었어도 끝내 호치민을 따르는 무장세력의 공세를 물리치지 못했다. 초조해진 미군 지휘부는 갈수록 공습의 강도를 높여갔고, 그 과정에서 숱한 민간인 희생자를 낳았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의 공습 맹신주의가 새해 초부터 또 일을 냈다. 이번엔 파키스탄 북서부 아프간 접경 산악지역 다마돌라에서다. 미 중앙정보국(CIA) 현지 요원들은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이집트 의사 출신)가 한 민가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9.11 테러가 터진 지 4년반이 지나도록 오사마 빈 라덴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데 초조해질 대로 초조해진 CIA는 앞뒤 잴 것 없이 무인비행기(약칭 UAV) '프레데터'에 미사일을 실어 보냈다.
컴퓨터로 명령어를 입력시킨 기계가 인간을 죽이고, 가치판단이 배제된 현대전쟁의 몰인간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무인비행기다. 미군 장병들 사이에선 '수펄'(drone)이라 일컬어지는 무인비행기에 연결된 컴퓨터 장치를 작동하자, 여자 8명과 어린이 6명을 포함, 적어도 18명이 숨졌다. 그러나 정작 자와히리는 현장에 없었다. 잘못된 정보였다.
***'베트남 전쟁영웅'의 오폭 옹호론**
문제는 미국의 태도다. 미국 관리들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정당한 행위였다"며 공격행위를 옹호하고 나섰다. 베트남전쟁에 참전, 공습에 나섰다가 피격돼 하노이 부근 포로수용소에서 5년반을 보냈던 미국의 '전쟁영웅' 존 매케인(공화당 상원의원)도 거들었다. 그는 CBS TV에서 "우리는 알-카에다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지난 2002년 1월, 아프간 현지취재 때 카불 시내의 전쟁부상자 병원에 가본 적이 있다. 9.11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미군의 아프간 공습이 벌어진지 3개월 뒤의 일이다. 그곳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한 이탈리아 의사의 말로는 "미군 오폭으로 다쳐 입원한 민간인 입원환자들이 수십 명이지만, 여기까지 찾아올 차비가 없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못 온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 귀띔했다.
1990년대 이래 미국이 뛰어든 여러 전쟁에 비추어 볼 때 아프간과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피해규모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인권감시협회(Human Rights Watch)는 코소보전쟁에서 약 90건의 오폭사고가 있었다고 발표했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선 그보다 훨씬 많은 오폭과 더불어 숱한 민간인 사상자가 생겨났다.
미 뉴햄프셔 대학 교수인 마르크 헤롤드(경제학)는 2001년10월7일 미군의 아프간 공습이 벌어진 뒤부터 2개월 동안 약 3800명의 아프간 민간인 희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산했다. 그 뒤로도 미군 공습이 계속됐고, 오폭 시비가 끊임없었다. 이라크의 경우 공습 희생자 숫자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비정부기구 '이라크 보디 카운트(www.iraqbodycount.net)에 따르면, 2만8000명-3만1000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이 죽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믿어진다.
뉴욕의 인권감시협회(HRW)는 한 보고서에서 "미군은 이라크전쟁에서 인구 밀집지역에다 아프간 전쟁 때보다 더 많은 집속탄을 썼던 탓에 민간인 피해를 더했다"며 "전쟁에서 대량 살상용무기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전쟁의 일반적인 규범을 벗어나는 무차별 살상행위"라고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다.
***공습 뒤 태연히 햄버거 먹는 까닭**
공습은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는 전투행위다. 미군 특수부대에서 정신훈련 교관을 지냈던 리처드 헤클러는 그의 『전사(戰士) 정신을 찾아서』(2002년)에서 공격 거리가 멀수록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의식을 강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옛날의 전사들은 적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전쟁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칼에 맞아 두개골이 부서지면서 죽는 적의 처참한 눈길을 기억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전사들은 아침에 2만 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내리 퍼붓고는 수백 마일 떨어진 기지로 돌아와 태연히 햄버거를 먹는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MIT대학 교수)와 더불어 미국의 반전 이론가로 이름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조종사로서 폭격에 나섰던 전력을 지녔다. 그는 미 공영방송 PBS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이 공중폭격에 나선다면, 9000미터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당신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별다른 거리낌 없이 다음날 또 폭격에 나선다. 1945년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떨어뜨린 조종사도 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나는 독일 드레스덴에 대한 연합군의 무차별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약 13만 명)이 희생당한 데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
***무엇이 부수적인가**
오폭 사고가 날 때마다 미군은 "전쟁 중 뜻하지 않은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은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전쟁의 현실"이라 우겼다. 미군 지휘부의 시각에선 민간인 피해 사건은 전쟁범죄가 아니다. 오폭 피해는 전투행위에서 불가피하게 따르는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일 뿐이다. 1995년 오클라호마 미 연방청사 건물을 폭파한 티모시 멕베이가 청사 내 탁아소에 있던 20명쯤의 어린이들이 죽은 점을 검사가 질책하자, "그것은 부수적인 피해"라 주장한 것과 닮은 논리다.
'부수적 피해'란 용어는 참으로 묘하고도 고약하다. 미군의 시각에선,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는 사건은 적의 전투력을 살상하기 위한 본래의 전투과정에서 고의가 아니고 작전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나므로 말 그대로 '부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폭, 또는 오인사격으로 부모형제를 잃고,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로선 그 고통이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우리 인간존재의 기본 가닥을 밑동부터 잘라내는 '본질적'인 심각성을 띤 것이다.
*이 기사는 한겨레신문 1월20일자에 실린 글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사진설명) 2001년10월2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북동쪽 와지르 아바드 마을에서 미군 오폭으로 파괴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창고를 아프간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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