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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추미애 노조법' 시행 이후 노사관계는?

[창비주간논평] 단체교섭의 제약과 전임자 축소는 활동 기반 악화 부를 것

새해 꼭두새벽에 이른바 '추미애 노조법안'이 국회의장의 직권으로 상정되어 야당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통과·처리되었다. 이로써 지난 13년 동안 묵혀두었던 사업장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의 법조항이 올 1월 1일자로 발효되었다.

이번 개정된 노조법에 의해 사업장 수준에서 하나 이상의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설립될 수 있으며,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은 금지되는 대신 노조활동의 근로시간 면제 또는 타임오프(time-off) 조항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사업장 수준의 복수노조 허용은 1년 반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1년 7월부터 시행되며, 노조활동의 근로시간 면제는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올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13년의 우여곡절과 막판 소동

개정노조법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복수노조 관련 조항에서는 하나의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존재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의무가 부과되어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단을 꾸리지 못한다면 조합원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동조합이 여러 노조를 대표하여 교섭권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노조활동의 타임오프제는 노사협의·단체교섭·고충처리·산업안전 활동 등과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조의 유지 및 관리업무 유지에 대해 유급으로 해당 노조간부의 근로시간을 면제하도록 하되, 그 면제 한도에 대해서는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의결토록 하고 있다.

이번 노조법의 개정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1997년 3월에 입법된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금지 조항들은 한국노총과 경총의 '맞교환 담합'에 의해 세차례나 유예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지난해 말까지 그 시행이 미루어져왔다. 지난 연말 시한에 몰려 '현행법 시행'이라는 정부의 정공법 입장이 천명되면서 10월 말에 민주노총까지 포함하는 노사정 대표 6자회의가 소집되어 개정 협상을 진행했으나 예상대로 시간만 끌다가 아무 성과 없이 마치게 되었다.

한국노총의 돌변, 추미애의 반전

지난 2006년말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을 둘러싼 입장 대립으로 냉랭한 갈등관계를 보여온 양대 노총이 정부 여당의 노조법 개정 추진에 반발하여 모처럼 연대파업 등의 공동대응을 보인다고 요란스러웠다. 하지만 한나라당사를 기습점거하여 반대농성을 벌이던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이 돌변하여 정부·경총과의 12·4 노사정합의(복수노조 2년반 유예와 노조활동 타임오프제 도입)를 받아들이면서 민주노총을 배제한 노사정 담합거래가 성사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한 정부 여당의 개정 추진을 뚝심으로 막아냈던 추미애 환경노동위 위원장이 버티고 있어 국회에서의 입법절차가 그리 간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추미애 위원장의 뚝심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금지의 보완 없는 시행이 노사관계에 막대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독자 판단에 입각하여 한나라당의 법안을 일부 손질하는 수준에서 법안 처리를 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추미애 노조법'은 올바른 선택이었나

그러다보니 야당 소속의 환노위 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는 진통 끝에 여당 의원들과 공조하에 본인의 이름이 붙여진 '추미애 노조법 개정안'이 상임위에서 처리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으며, 그후 국회의장의 직권처리를 가능케 해주었다. 물론 예산안 처리와 뒤엉키면서 노조법 개정이 무산될 수도 있었으나, MB의 독려 전화와 모 재벌의 막후로비가 막판에 작용하여 일방 강행처리로 마무리되었다는 뒷얘기들이 무성하기도 했다.

그러면 '추미애 노조법'은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야당이나 민주노총이 요구하듯이 현행법의 시행을 내버려두는 것이 적절했을까?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서는 워낙 노사단체들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다보니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얘기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추미애 노조법'이 한나라당 법안에 비해 일정하게 개선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12·4 노사정합의나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의 법리(法理)적 프레임에 갇혀 헌법에서 보장하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합법적으로 제약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떠안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
▲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에서 추미애 위원장이 전체회의를 진행하려하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뉴시스

복수노조 허용됐지만 단결권은 되레 위축

복수노조 금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강제된 것으로 진작 폐기되어야 했을 법조항이다. 이를 풀어준다고 복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다시 제약하는 창구단일화를 강요하는 것은 노동권 제한에 아랑곳없이 교섭비용의 증가 등을 내세우며 엄살떠는 기업의 주장에 편들어준 셈이다. 그동안 적잖은 사업장에서 기업합병과 조직통합으로 복수노조가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율교섭으로도 큰탈 없이 노사관계를 유지해왔다. 또한 해외 선진국들에서도 복수노조의 허용은 물론이고 그 노조들의 교섭방식이 노사자율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상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추미애 노조법'에서는 복수노조의 허용으로 새롭게 보장되는 단결권이 단체협상 창구단일화의 교섭권 제약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제한받는 상황(이를테면 소수노조의 교섭 배제와 무력화)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의 법조항 역시 일부 대기업노조의 과다한 전임자 문제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업장 노조의 전임자를 강제적으로 불허함으로써(물론 타임오프의 적용한도가 어찌 결정될지를 두고봐야 하겠지만) 노동조합의 활동기반이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단체교섭의 제약과 노조 전임자 축소는 그렇지 않아도 낮은 10%대의 노조조직률을 더욱 추락시키고 노조의 근로자 대변기능을 크게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노사관계의 제도적 안정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사관계 선진화인가 노사갈등 확대인가

이제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와 노조 전임자 임금금지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제도현실이 되어 노사관계와 노동조합운동에 적잖은 변화를 낳을 듯하다. 사업장 수준의 노조 경쟁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며, 무노조 또는 유령노조의 기업들에서도 다양한 목소리의 노조들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노동조합들은 전임자 임금 금지와 타임오프제 도입에 따라 회사지원에 의존하던 방만한 전임인력 활용이나 조합비 운용 같은 기존의 노조 활동방식을 재점검하여 노조운영의 효율성을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새로운 제도지형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 노조법 개정이 우리 노사관계를 선진화하는 계기로 기여할지, 아니면 또다른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빌미로 작용할지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친기업의 MB정부가 사용자의 입장만을 두둔하여 노동자의 단체교섭-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노조 전임자의 활동 여건을 크게 축소시키려 할 경우 노조운동의 약화와 더불어 조직노동자의 규모가 상당히 위축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울러 기존 노조들이 개정노조법의 시행조건을 둘러싼 노사간의 새로운 각축에 매몰될 경우 비정규직이나 중소사업장의 미조직노동자를 배제하는 노사관계의 양극화구조가 더욱 고착화되지 않을까 걱정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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