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베스트셀러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무단 번역해 출간한 혐의로 기소된 출판사 동서문화동판 대표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출판업계에서 국내 번역본을 둘러싸고 10여년 간 이어진 논란 끝에 법원이 동서문화동판의 위법 행위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박대산 판사는 23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동서문화동판의 대표 고모(79)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동서문화동판에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박 판사는 "서적 발행 기간이 길고 발행 부수도 많은 점에 비추면 저작권 계약을 정식으로 맺은 출판사가 입은 피해가 상당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다만 피고인이 저작권 문제가 안 됐을 때부터 해당 서적을 출판하고 있었고, 그런 사정 때문에 저작권을 이용할 권리가 있었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동서문화동판의 전신인 동서문화사는 일본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가 1950년부터 1967년까지 17년간 집필한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번역해 1975년 4월부터 '전역판(全譯版) 대망(大望)'을 판매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센고쿠 시대 무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하소설로 일본의 몇몇 신문에 동시 연재돼 큰 인기를 끌었다. 단행본 판매로 1억 부를 넘긴 일본 최대 베스트셀러로 통한다.
문제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 발효에 따라 국내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불거졌다.
개정된 법에 따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저작권이 소급되는 '회복저작물'로 보호를 받게 됐다. 즉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국내에서 출판하려면 원저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솔출판사는 법에 따라 1999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원출판사인 일본 '고단샤'와 정식 계약을 맺고 소설을 번역해 2000년 12월 '도쿠가와 이에야스' 1권을 펴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2005년 고씨는 '2차적 저작물'로 인정된 1975년 판 '대망'을 일부 수정해 다시 출간했다.
이에 솔출판사는 "동서문화사 측이 허락 없이 책을 출판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고씨 측은 "2005년 판 '대망'은 1975년 판의 단순 오역이나 표기법, 맞춤법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해 새로운 저작물이 아니다"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박 판사는 그러나 "1975년 판과 2005년 판의 수정 정도, 표현 방법의 차이 등을 보면 동일한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다"며 "75년 판을 수정·출간하게 허용한다면 사실상 저작권 없이 원저작물을 무제한 번역해 출간할 수 있는 결과에 다다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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