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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역', '기적의 곡선', 철도가 황당하게 깔리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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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역', '기적의 곡선', 철도가 황당하게 깔리는 진짜 이유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③

현직 기관사이자 철도 정책 전문가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이 직접 취재한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르포를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름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글은 그 마지막 꼭지입니다. 편집자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① KTX강릉선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공개합니다

[강릉선 KTX 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② 200명 '패닉' 속 안전요원 단 1명...누구 탓일까?

이제 본격적인 문제로 들어가 보자. 개그 프로그램과 한국 철도 현실 중 어느 것이 웃긴지 대결해 볼 차례다. 지난 2013년 8월 21일 자 <연합뉴스>를 보면, 새로 도입하는 고속열차 산천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다.

"KTX 산천의 많은 문제점을 일일이 분석해 개선했습니다. 전체적인 좌석 수는 47석을 늘리게 돼 개인별 공간은 57㎜까지 늘였습니다. 여행객들이 훨씬 더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라고 소개했던 사람은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었다.

시설공단은 철도 시설을 책임지는 곳인데 운영사가 책임져야 할 열차를 소개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본은 다종다양한 철도 차량이 운행되고 있다. 최대 철도 기업 JR동일본은 자체 차량제작소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코레일은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거나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차량을 구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철도 시장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국토부의 허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공기업 경영 자율성은 구호로만 남은 현실에서 경영 효율성은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박은 손발을 묶어 놓고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지난해 12월 강릉선KTX 이탈 사고 현장에서 밤샘 복구 중인 노동자들 ⓒ박흥수

조금 더 나가보자. 한국 철도 노선은 누가 설계하고 시공하는가? 최근 시공되는 노선과 역을 살펴보면 과연 철도에 대한 철학이 있는 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철도 이용자가 늘고 수송분담률이 높아질수록, 환경에 도움이 되고 에너지 효율성도 높아지면서 국토 파괴나 교통혼잡비, 사고처리비용도 낮아지는 등 큰 도움이 된다. 철도 수익도 늘어 적자를 줄이게 되면, 철도 공사의 경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철도 노선과 역이 만들어지는 현실을 보면, '국가의 100년 대개'는커녕 '떴다방'식 한탕주의가 횡행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창업을 하려고 해도 창업스쿨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입지 조사를 하고 영업을 잘 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자영업자도 하는 초기 시장조사조차 할 수 없다. 국토부가 주도하고 시설공단이 건설한 노선과 역에서 운영을 맡아야 한다. 도심에서 한참을 벗어나야 이용할 수 있는 곳에 역을 만들고 경영 효율화를 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철도의 장점은 도심을 이어주는 것인데 역을 공항처럼 만들어 접근성을 떨어뜨리면서 하는 구조개혁이란 무엇일까?

수송분담률이 지속적해서 하락하면서 철도 적자의 원흉으로 간주되는 물류 분야도 만만치 않다. 2014년 철도기술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철도노선 개량과정에서 연 172만 톤의 기존 물류 시설이 폐쇄됐고, 이후에도 연 323만 톤이 철도에서 이탈할 예정임을 밝히고 있다. 철도 노선이 개량되는데, 물류 환경은 더 열악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역을 짓는 과정에서도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 만들어진 전철 역사들을 봐도 이용객의 편의를 도모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산품으로 찍어 낸 듯 천편일률적인 설계로 이용객들은 무조건 역의 상층부로 올라가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구조다. 고가교(구름다리) 형태의 역도 아닌데,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경의선의 적지 않은 역들은 역 광장에서 승강장으로 수평 이동할 수 있는 설계를 적용할 수 있다.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서면, 바로 승강장인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주변 환경과 어울리거나 특별한 의미를 갖지도 않고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적지 않은 신축 역사들은 일반 아파트의 4층 높이 보다 높은 곳에 개찰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역을 크게 지을 때 좋은 것은 건설사들이다. 그러나 이 부담이 전가되는 철도공사에게는 좋을 게 없다. 그 부담은 세금, 즉 시민들의 돈이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을 마음대로 구매하지도 못하고 허허벌판에 역이 세워지는 것도, 또 그런 역이 사용자보다는 건설사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도 시설과 운영의 분리체계라는 문제에 다가가 있다.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부터 시작해 수많은 철도 전문가들이 포착한 철도의 특성은 시설과 운영이 한 몸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철도의 특성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시장 논리가 공공성을 몰아내고 철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1998년 한국에 몰아친 IMF 파도는 철도라고 그냥 놔두지 않았다. 국가기간산업과 공기업의 민영화는 IMF가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또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세례를 듬뿍 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정책을 다뤘다. 철도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도구조개혁은 썩어빠진 한국 철도를 개혁하는 것이고 궁극적 종착역은 민영화였다. 이 민영화를 수행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 바로 철도 통합구조를 해체하는 상하분리였다. 2000년, IMF 이후 구조개혁이란 이름 아래 철도 민영화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렸을 때 국토교통부(당시 건교부)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대놓고 민영화를 칭송하고 이 민영체제를 유지하는 방편이 상하분리임을 밝히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이 같은 철도 정책이 보수 정권이 아니라 진보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루어진 것이라며 철도 정책에 대한 궤도 수정을 철도청 시대로의 후퇴로 규정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은 알다시피, IMF의 터널을 돌파해야 했다. IMF와 약속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를 대놓고 막을 수 없었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시도된 철도 민영화는 결국 유보됐고, 바통은 노무현 정권으로 넘겨졌다. 노무현 정권의 기본 입장은 철도 개혁은 하되, 민영화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민영화 없는 철도 구조 개편에 나서야 했다. 문제는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관료는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철도 민영화를 설계했던 관료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구조 개편을 맡았다.


▲ 2000년 정부가 발간한 철도민영화 안내책자표지

이들에게 철도는 비효율의 암 덩어리였다. 구조조정과 경쟁을 통한 효율화는 지상명령이었다. 대대적인 인력 감축이 강요됐고 민영화를 전제로 설계됐던 구조를 깊이 뿌리박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철도의 사회적 역할이나 공공성은 노조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삼는 명분으로 간주했다. 관료에 장악된 철도 정책은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동안 진행된 철도 정책은 진보정권에서는 숨을 고르며 틀을 유지하다가 보수 정권에서는 관료들의 구상을 진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영화 불가(不可)'가 천명됐던 노무현 정권 때는 구조개혁이란 명분 아래 상하분리 정책을 관철했다. 이명박 정권 때는 수서 고속철도 민영화를 추진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숙원사업이던 SR(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를 출범시켰다. 문재인 정권 아래 관료들의 목표는 대통령이 약속했던 철도 통합 정책을 흐지부지되게 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보면 국토부 관료들의 목표는 어느 정도 관철되는 듯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바뀌지 않는다'는 자신감마저 보인다.

최근 화제의 인물인 청와대 특감반 수사관 김태우 씨가 과기정통부 5급 사무관에 지원했다는 언론 보도가 논란이 됐다. 고참 검찰 수사관이 꿈꾸는 5급 공무원. 일반직 공무원 직급 체계는 9급부터 1급까지 있지만, 6급과 5급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임용 후 6급을 정년으로 퇴직한다. 그런데 20대 젊은 나이에 5급으로 시작하는 공무원이 있다. 바로 고시 출신들이다. '과거 급제'로까지 표현되는 이들 젊은 엘리트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한민국 행정 권력의 중추가 된다. 이렇게 일찍 공직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갖춰야 하는 가장 큰 덕목은 '공화국 정신'일 것이다. 하지만 공적 사명 의식이 자리 잡기 전에 명석하다고 간주되는 두뇌와 권력이 결합하면, 견고한 아성(牙城)이 생긴다. 또 이 고위직들의 노후는 예우를 받는 그들의 선배들이 보여준다. 일찍부터 받는 극진한 대우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롤 모델 선배들의 발자취가 합쳐진 빛나는 관료의 길이 열린다.

의심 없는 확신을 가진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은 힘들다. 게다가 누구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철도 정책을 구현하고자 하는데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자다. 워낙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기에 몇 달 철도 정책을 다루다 보면 20~30년 철도 현장을 경험했던 사람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고시 출신 국토부 엘리트가 차근차근 승진해서 국장승진 대상자가 된다. 이때 하필 철도 국장 자리가 빈다. 처음 철도 정책을 다루는데 사실상 최고 책임자 자리이다. 또 자리를 옮겨 다른 부서로 발령 나면 이 사람의 이력에는 철도국장이 추가된다. 시간이 오래 흘러 퇴직을 한 뒤 철도 관련 산하 기관의 사장 자리에 응모라도 하게 되면, 언론에는 철도국장을 지낸 전문가로 소개된다. 국장까지 갈 필요도 없이 과장으로 1~2년 정도 철도 분야를 맡게 되면, 철도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전문가로 거듭난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한국에서 제대로 철도를 이해하고 정책을 실현한 적이 없으며, 그럴 수 있는 토양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려 했기 때문이다. 철도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관리체계 부재 속에 철도공사 역시 정책과 기획 능력을 제거당했다.

국토부와 철도공사의 관계는 수직적 상명하복 관계이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철도공사는 적자를 양산하는 비효율적 집단이라고 간주 되었는데, 바로 국토부에 의해서였다. 이 같은 산하 기관에 대한 불신과 조직적 위계에 따른 군림의 역사는 철도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거시적 철도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나라의 백년 앞을 바라보는 것인지, 당장의 편의성이나 업계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지 의문이 든다. 미시적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과연 얼마나 책상에서 내려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는지도 궁금하다. 공무원이란, 말 그대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민의 공복이라는 의식을 기본소양으로 갖추기 전에 청년 급제 후 영감이 된 엘리트들. 이들의 공고한 아성이 '관료는 영원하다'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강릉선 탈선사고 전에 오송역에서 전차선이 절단되어 KTX 운행이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연이은 사고에 제일 먼저 터져 나온 말이 "기강해이", "안전불감증"이었다. 이른바 군기가 빠졌기 때문에 사고가 난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이 같은 군사문화식 접근을 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철도 안전이 군기를 바짝 세워 24시간 눈 부릅뜨고 정신 차려야 지켜지는 것이라면 그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설사 인간이 실수하더라도 안전시스템이 방어해줘야 하는 게 철도 안전이다. 일련의 사고들은 한국 사회에 제대로 된 안전 보호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다면 '기강해이' 된 누군가를 찾거나 만들어내 징계하는 일만 반복될 것이다.

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책임의 일원화와 위험의 분산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거꾸로다. 강릉선 사고에서도, 청년 김용균의 죽음에서도 관련자들은 서로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철도공사와 시설공단의 책임공방이 그렇고, 원청이 하청에게, 하청은 현장의 비정규직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도 그렇다. 책임이 분산되고, 그 틈 사이에서 삐져나오는 위험은 막을 길이 없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임명되자, 철도 정책의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 과정은, 곧 남북철도 연결과 대륙철도로 이어지는 새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철도를 내실화하는 철도 정책이 꼭 필요했다. '신자유주의 키드'들이 설계한 낡은 틀을 깨는 새 철도 정책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허상의 경쟁 논리 속에 진행된 SR(수서고속철도)를 통합하고, 더 나아가 시설과 운영의 통합까지도 과제로 올리는 대장정이 시작되길 기대했다.

이런 기대 속에서 가장 큰 우려는 관료들이었다. 철도 개혁의 열쇠는 결국 관료들 손에 있기 때문이다.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SR통합추진사업은 관료들의 은근한 사보타주(태업)로 지연되었고, 통합 관련 용역조차도 김 빼기 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국토부 관료들의 생각과 장관의 뜻이 같다'는 말도 들린다. 관료들은 또 승리하고 있다. 이번에도 시민들은 패배하는 것 같다. 국토부 고위직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 2000년, 정부가 발간한 '철도 상하 분리' 홍보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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