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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열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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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열풍 <1>

유치원에서도 '니하우'

최근 만난 외국계 대형펀드의 국내 책임자 오모 대표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해에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어디서 배웠니?’ 하고 물으니까 딸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가르쳐줬다 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바뀌고 있구나.’ 매달 유치원에 내는 적잖은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 대표는 미국에서 MBA(경영자과정)를 마치고 지금은 수천억대 자금을 국내기업의 인수합병 등에 쓰고 있는 업계의 실력자중 한명이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교육 1번지’라 불리는 강남 대치동. 이미 강남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유치원에서는 '중국어 조기교육’ 붐이 일기 시작했으며, 과거의 추세로 볼 때 금명간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목격될 것이라는 게 그의 전언이다.

<사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던진 21세기 화두**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졸업할 때쯤 중국어를 모른다면 아마도 취업하기 힘들 것이다.”
“중국진출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중국진출 드라이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회장은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 “마누라를 빼고는 다 바꿔라”는 유명한 화두를 몇 년에 한번씩 던져왔다. 지난 몇 년간 침묵하던 이회장이 던진 또하나의 화두가 바로 ‘중국어’인 것이다.

이회장의 이번 화두가 국내에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제재계에서는 이미 상식화된 상황인식이다.

홍콩의 유력 경제전문지 파이낸스 아시아는 지난 9월말 창간 5주년을 기념해 전세계 유력 금융기관의 투자책임자 3백69명을 대상으로 ‘아시아 2010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24개의 질문 항목중 하나가 “앞으로 20년후 아시아 기업을 지배하는 언어가 무엇일 될 것인가”라는 것이다. 답은 79.4%가 영어, 나머지 20.57%가 중국어였다. 이미 세계공용어가 된 영어 외에 앞으로 ‘아시아 비즈니스의 기축언어’가 종전의 일본어에서 중국어로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 언론계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온 한 국내언론인도 “방일 기간중 만나본 일본지식인들이 한결같이 ‘아시아에서 일본어 시대는 갔다. 이제는 중국어를 배워야 할 때’라고 말하더라”며 “지금 일본의 부모들 사이에서도 중국어 조기교육 붐이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고 일본 분위기를 전했다. ‘중국어 신드롬’은 그동안 중국어를 소홀히 해온 한국, 일본 등 동북아를 강타하기 시작한 셈이다.

***목동에 울려퍼지는 "니하우""라우스 하우"**

지난 3일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니하우(안녕하세요).” “라우스 하우(선생님 안녕하세요).”
현관문을 들어선 선생님과 나누는 첫인사부터가 심상치 않다. 중국어 홈스쿨을 두달째 하고 있는 류동혁(초2년, 9세)군은 선생님과의 1대1 회화를 통해 중국어를 익혀가고 있다. 동혁군은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했고 주변에 중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공부가 재밌다”며 열심히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했다.

아직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중국어 전문학원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홈스쿨’ 형식의 1대1 중국어 교육은 입소문을 타고 학부모들 사이에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동혁군의 어머니 김경아(주부, 35세)씨는 “영어는 다들 하는 것이고, 그 외에 제2외국어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최근 중국시장이 커진다는 신문 보도가 많았고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나라인 만큼 ‘다음은 중국이다’는 판단으로 아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변에서 중국어 교육을 시켜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실제로 아이가 장차 중국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될지는 당장 판단하기 힘들지만 최소한 중국 문화권의 배경이라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우리 아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성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주 앞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발은 앞선 선택”이라고 말했다.

동혁군을 지도하는 유성애(중국어강사, 28세)씨는 중국현지에서 대학을 나온, 국내에는 아직 많지 않은 중국어 전문 강사중 한명이다. 유씨는 “작년부터 강사일을 시작했는데 지난해에 비해 수강생이 2배가량 늘어났다”며 “목동,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고 중국어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의 경우 중국어를 시작하기 전에 한자학습을 했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중국어에 대한 거부반응이 상대적으로 적다”며 “한자검정시험 3, 4급 자격을 가진 학생들도 많고 잘하는 학생은 2급 자격도 있다”고 밝혔다.

***한자학습지, CD, 비디오테이프 등 중국교육 관련상품 불티**

그의 지적대로 중국어 교육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한자실력이다. '한글세대'인 지금의 청소년층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선뜻 중국어에 손대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는 한자 학습지 수요는 중국어 교육의 전단계라는 의미를 갖는다.

한자 학습지를 대표적 브랜드 사업으로 하고 있는 (주)장원교육문화의 차영진 기획팀장은 “한자 학습지 시장은 월 4%씩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전체 회원의 60%를 차지하는 한자 학습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자 학습지 시장을 토대로 중국어 학습지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라며 “중국어 교재 개발은 이미 완료된 상태”라고 밝혔다.

멀티미디어 교재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개인 학습으로 중국어를 학습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CD와 비디오테이프 등 어린이 중국어 교재를 보급하는 비전정보기술의 마재영 대표는 “종래 한자 학습지를 언어화시킨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7천~8천여명이 프로그램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업체의 경우, 멀티미디어 프로그램과 자체 개발 교육시스템을 통해 사설학원과의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마 대표는 “온라인 프로그램 외에 자체 학습 시스템을 개발, 사설 학원에 지원을 하고 있으며 서울 4개, 지방 7개 학원에서 이 학습 시스템을 활용 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며 “중국어의 필요성을 간파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제2외국어 교육으로 중국어를 선택하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초등학생 조기유학까지 추진, 부작용도 우려돼**

보다 조직적으로 중국어 조기교육을 시키는 학원 및 과외그룹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는 1시간씩 주 2회 강의에 30만∼40만원 하는 4∼5명 단위의 초등학생 중국어 그룹과외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단지 주변 보습학원과 서울 M백화점 상계점, S백화점 강남점, L백화점 안산점백화점 등의 문화센터에도 초등학생 중국어반이 개설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S어학원, B어학원 등도 초등학생 중국어반을 개설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중국으로 조기교육을 보내려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발해유학원의 김훈희 원장은 "하루에 1~2건씩 초등학생 유학을 상담하는 문의가 들어온다”며 “종래에 중국에 친지가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기유학을 선택했으나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그러나 조기유학의 부작용도 우려했다. 초등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중국학교가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원장은 “중국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한데, 아직 초등학생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학교의 폭이 넓지 않다”며 초등학생 조기유학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 추세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을 계기로 앞으로 호환 인구가 많은 중국어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할 것”이라면서도 “단순한 언어 학습이 아니라 중국 현지의 실정과 문화를 이해하는 학습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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