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무직 노동자도 엄연히 노동자다. 지금은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조법이 시행돼 '사무노조'가 따로 생키고 회사가 이들을 탄압할 명분은 없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무직 노조는 과거 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고,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들도 많았었다.
김선수 변호사가 소개하는 다음 이야기는 한 '자동차회사' 대기업에서 사무직 노조를 만든 노동자들의 싸움이다. 대기업을 상대하는 싸움, 간단치 않다. 그들은 조직이 있고, 사람이 있고, 무엇보다 돈이 있다. (편집자)
얄팍한 판결문 두 통
2011년 7월 20일 대법원으로부터 얄팍한 판결문을 두 통 받았다. 모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패소하여 상고한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승소하여 상대방이 상고한 것이다.
우리의 승소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판결의 의뢰인(원고)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지루한 소송 끝에 승소한 것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심리불속행 제도의 덕을 보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패소 확정된 사건은 심리불속행 제도의 해를 본 것인가? 심리불속행 제도는 양날의 칼이다.
험난한 사무직노조 설립 과정
원고는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거쳐 2002년 10월에 자동차회사(피고 회사)에 재입사하여 사무직원으로 근무했다. 피고 회사 직원들은 사무직과 생산직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노동조합을 구성하여 활동해왔으나, 사무직 노동자들은 입장을 대변할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다가 1999년 9월에 사무노동직장발전위원회(약칭 '사무노위')를 구성하여 활동했다.
원고는 2003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제3대 위원장, 2005년 9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제4대 위원장으로서 사무노위와 피고 회사와의 합의에 따라 사무노위 전임자로 활동했다. 원고는 사무노위 위원장에 입후보해서 사무노위를 노동조합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했고, 그 약속에 따라 사무노위를 사무노조로 전환하고자 노력했으나 피고 회사에 의한 방해공작이 심했다.
원고를 비롯한 사무노위 간부들은 2005년 7월 사무노조를 별도로 설립하고 간부 직책을 겸직했다. 사무노위와 사무노조가 2원적으로 존재하는 형태를 취하다가 사무노위가 2007년 8월 해산하고 노동조합인 사무노조만이 남게 되었고, 그 이후인 2007년 9월 원고는 사무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었다. 그 다음 선거에서도 역시 사무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계속 위원장 지위를 유지했다.
▲ 금속노조 사무직지회 관련 카페 화면 캡쳐 ⓒ금속노조 |
회사의 사무노조 탄압
피고 회사는 사무노조가 설립된 후 본격적으로 사무노조의 활동을 탄압했다.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법상 금지되는 복수노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불응했다. 사무노위에 제공하던 사무실 제공 등 각종 편의제공을 중단했다. 사내통신망의 게시판을 폐쇄하고, 사무노조 웹사이트와 블로그 및 카페에 대한 직원들의 접속을 차단했다. 사무노위 집행간부용 차량의 사내 출입도 금지했다. 외부 용역경비원들을 고용하여 사무노위 사무실 근처에 배치하고, 사측 성향의 사무노위 대의원 등을 통해 분란을 일으켰다.
원고를 포함한 사무노조 간부들은 사무노조 인정과 단체교섭 촉구 및 부당한 탄압에 항의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홍보활동의 일환으로 유인물 배포 및 휴게시간 중의 피케팅 등을 실시했고, 피고 회사의 부당한 인사관리를 바로잡고자 사무직원들의 의사를 모아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 회사는 2007년 5월 사무노위의 사무노조로의 전환을 저지하기 위하여 사무노조 간부 6명에 대해 정직의 징계를 하였다. 징계사유는 ① 피켓선전과 유인물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와 회사 명예훼손, ② 회사 행사 방해, ③ 사내통신망 무단 사용, ④ 사무노조 홈페이지에 직장상사 모욕 글 게재 방치 등이었다. 원고에 대해서도 징계의결 요구를 했지만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원고의 회사 출입을 통제했다.
정직자의 소송과 결과
정직의 징계를 받은 6명이 2명과 4명으로 나누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징계사유는 거의 동일했는데,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결론이 다르게 나와 한 4명 사건에서는 근로자들이 이기고, 2명 사건에서는 근로자들이 졌다. 그런데 행정소송에서는 두 사건 모두 중앙노동위원회의 결론이 뒤집어져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이긴 근로자들이 졌고(서울행정법원 2008. 10. 7. 선고 2008구합11891 판결 : 재판장 판사 정형식, 판사 장찬, 판사 허이훈),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진 근로자들이 이겼다(서울행정법원 2008. 12. 11. 선고 2008구합23979 판결 : 재판장 판사 정종관, 판사 권창영, 판사 정혜은).
행정법원에서는 피고 회사가 내세운 징계사유 중 ①과 ③은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없고, ②와 ④는 정당한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한 재판부에서는 징계양정이 적정하다고 본 반면, 다른 재판부는 네 개의 사유 중 두 개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징계양정이 과도하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고등법원에 가서 근로자들이 모두 지는 것으로 되었고(서울고등법원 2009. 6. 2. 선고 2008누32203 판결: 재판장 판사 안영률, 판사 신헌석, 판사 조정현/서울고등법원 2009. 9. 4. 선고 2009누2414 판결: 재판장 판사 심상철, 판사 황병헌, 판사 김인택),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어 그대로 확정되었다{대법원 2009. 10. 15. 선고 2009두10239 판결: 대법관 양창수(재판장) 양승태 김지형(주심) 전수안/ 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두17131 판결: 대법관 전수안(재판장) 양승태(주심) 김지형 양창수}.
원고에 대한 해고 사유 만들기와 해고
피고 회사가 원고에 대한 징계를 진행하지 않고 있던 중에 사무노조 간부로서 전임자로 활동했던 직원이 현장에 복귀한 후 회사 인터넷 알림판에 원고의 비위를 폭로한다면서 글을 올렸다. 내용인즉, 원고가 2006년 6월부터 8월까지 두 달간 교통사고로 입원치료를 받으면서 피고 회사에 결근처리를 하지 않고 출근한 것으로 하여 월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원고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자동차보험회사와 상의하여 회사 근처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것으로 처리했으나, 매일 회사에 출근하여 사무노위 위원장의 업무를 처리했다. 일반직원과 같이 출퇴근시간을 엄격하게 지킨 것은 아니지만, 사무노위 전임자로서 근로제공의무가 면제되어 있었고 사무노위 위원장의 업무가 사무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원고는 자동차보험회사에 피고 회사에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동차보험회사로부터는 입원기간 중의 근무손실에 대한 배상을 받지 않았다. 원고는 실제로 피고 회사에 출근하여 근무했기 때문에 피고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대신 자동차보험회사로부터 이중의 배상을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피고 회사는 이를 빌미로 원고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피고 회사를 속여 두 달 월급 팔백 몇 십만 원을 편취했다는 것이다. 고소하는 문제에 대해 관리자 내부에서도 입장 차가 있었으나 강경파의 입장이 관철되었다는 후문이었다. 검찰 선에서 무혐의 처리될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구약식 기소되었다.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관리자 측 진술인들이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했고, 사무노위 간부들이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했다. 검찰 측 증인 중에 고등학교 동창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때 피고인과 변호인 그리고 증인 등 세 명의 고등학교 동창이 한 자리에 다른 위치에서 상봉했다. 젊은 여검사가 이런 사정을 파악하고 법정에서 증인에게 위 사실에 대해 물어 환기시키기도 했다. 피고인 측 증인으로 나온 사무노위 간부 두 명은 원고가 입원기간 중에도 매일 출근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기소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변호사가 변론을 맡아 결국 1심(인천지방법원 2009. 6. 3. 선고 2009고단337 판결)과 2심(인천지방법원 9. 17. 선고 2009노2051 판결 : 재판장 판사 서경환, 판사 정성균, 판사 오승이)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원고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워낙 말도 안 되는 기소였기 때문에 당연히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 기대가 깨지고 1심(인천지방법원 2009. 1. 15. 선고 2008고정318 판결 : 판사 권성수)과 2심(인천지방법원 2009. 5. 20. 선고 2009노176 판결: 재판장 판사 장성욱, 판사 김용희, 판사 이준민)에서 유죄로 인정되고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대법원에서 바로 잡히길 기대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이 선고되어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판결문을 받아보니 사기 혐의는 인정하고 다만 피해 액수에 대해 일부 제외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9도5093 판결: 대법관 김영란(재판장) 이홍훈 김능환(주심) 민일영}. 대법원 판결에 절망해서 파기환송심에서는 직접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같은 사무실 강 변호사에게 부탁했다. 결국 피해 액수가 조금 축소되고 벌금 액수도 약간 감액되었다(인천지방법원 2010. 10. 22. 선고 2010노2215 판결: 재판장 판사 윤종수, 판사 김현곤, 판사 박혜림).
피고 회사는 원고에 대한 사기 혐의가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자 사무노위 다른 간부들에 대한 징계사유로 삼은 네 가지 사유 외에 ⑤ 사기로 인한 무단결근 및 근무태만 행위를 추가하여 2009년 6월에 원고를 해고했다.
해고소송의 진행과 결과
원고는 피고 회사의 관련 규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으나, 피고 회사는 2009년 7월에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방법과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으나, 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동자가 대기업을 상대로 해서 노동위원회에서 이기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담당 공익위원이 누가 걸리는가에 따라 결론이 예상되고, 공익위원 서핑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아 보여 법리 외에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절차를 이용하는 것을 피했다.
피고 회사는 원고가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다면 수월했을 것이나, 해고 자체가 사무노조에 대한 탄압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점을 강조하고 원고가 이중의 경제적 이득을 취득한 바 없으며 형사사건에서도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이 선고되었으며, 다른 비리나 반사무노조 직원들에 대한 징계와의 형평성 등을 강조하며 해고까지 한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피고 회사가 인사담당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우리도 사무노조 간부 한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증인신문까지 했다.
피고 회사는 그 와중에 원고에 대해 입원기간 중에 지급한 두 달분 임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별도로 청구했다. 소액사건이지만 해고 사건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아 대응했으나, 결국 형사사건의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해고사건 1심 판결(인천지방법원 2010. 4. 15. 선고 2009가합15219 판결: 재판장 판사 송경근, 판사 김태환, 판사 이소민)이 선고될 때는 형사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는데, 사기 혐의가 인정된 마당이기 때문에 해고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재판부가 재량권 남용 주장을 받아주어 승소판결이 선고되었다. 당연히 피고 회사는 항소를 했고, 항소심에서는 대리인을 잘 나가는 로펌으로 교체했다.
피고 회사는 적극적인 공세를 폈고, 우리는 상대방의 적극적 공세에 맞대응하기보다는 1심 판결이 타당하고 이를 트집 잡는 피고 회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랬더니 서면 분량도 상대방의 절반 수준 정도에 머물렀다. 다만 급여 청구에서 좀 빠진 부분과 인상분이 있어 이를 추가하여 청구취지를 변경했다. 그 결과 피고 회사의 항소가 기각되고 급여 청구는 우리가 청구한 대로 인용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11. 2. 18. 선고 2010나48334 판결: 재판장 판사 황병하, 판사 이종림, 판사 장경식).
피고 회사는 당연히 상고를 했고 장문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했다. 우리는 항소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상고이유 하나하나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원심 판결이 이미 잘 판단하였으며 상고이유 자체가 재량권 남용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다는 것에 불과하여 심리불속행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 회사가 상고이유 보충서를 추가로 냈으나, 이에 대해서도 반절 정도 분량으로 공연한 트집이란 취지로 보충답변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2011년 7월 14일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1. 7. 14. 선고 2011다28359 판결: 대법관 박병대(재판장) 박시환 차한성(주심) 신영철}.
어려운 대기업과의 소송
해고사유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는 5년 내지 4년이 지났고, 해고된 시점으로부터는 2년이 갓 지났다. 그 동안에 많은 소송이 진행되었다. 사기죄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되고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기도 했다. 사무노조 간부들의 정직 징계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와 법원에서 승패가 나뉘고 뒤바뀌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패소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위원장의 해고소송이 승소로 마무리되었다. 의뢰인이 고등학교 동창이어서 더욱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는데, 그 짐을 덜었다고나 할까.
그 사이에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노조법이 시행되었으니, 사무노조를 이유로 탄압할 명분도 없어졌다. 한참 지난 후에 사무직노조와 생산직노조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지부로 통합되었고, 사무직노조는 분회를 편제되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지루한 소송의 길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나, 어디에도 희망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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