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밀가루로 만든 짜장면 면발의 색깔은 왜 노란색일까.
한국전쟁 직후 부산에서 음식점을 하던 차지평(車志平)이란 화교가 있었다. 부산시 중화요리협회 지부장까지 지냈다. 우동에 양잿물을 넣는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우동 밀가루에 양잿물을 섞었지요?" "양잿물이 아니라 식소다입니다." 궁지에 몰린 그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식소다 덩어리였다. 큼직한 덩어리를 절반이나 먹어버렸다. "이게 식용 소다지 무슨 양잿물입니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화교들은 아직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쓴웃음을 짓곤 한다. '잿물'이 소다다. 짜장면이나 라면이나 호떡이나 면발의 색깔이 노란 게 다 이 '잿물' 덕분이란다. 한국에 사는 화교들의 애환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양잿물 사건도 그런 애사 가운데 하나다.
짜장면은 라면이란다. 이건 또 왜 그럴까. 짜장면은 본디 중국 베이징과 산둥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한자로는 짜장미엔(炸醬麵)이라 표기한다. 여기서 작(炸)은 센 불에 폭약이 터지듯 볶아내는 중화요리의 화후 기법 중 하나다. 장(醬)은 달큰한 첨장(甛醬)을 말한다. 그러니 면(국수) 위에 ‘볶은 장’을 얹고 제철 채소와 함께 비벼 먹는 음식이 곧 짜장미엔이다.
이때 장에 비벼 먹는 국수는 칼로 썰어서 만드는 절면이 아니라 손으로 반죽을 쳐서 길게 잡아 늘여 만드는 면이라고 해서 신면(抻麵) 또는 랍면(拉麵)이라고 한다. 랍면의 중국어 발음이 라미엔(lāmiàn)이고 이를 외래어로 그대로 차용한 것이 일본어로 라멘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의 면도 정체가 실은 라미엔이되, 종래의 우리식 한자 발음대로 읽는다면, 랍면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한국의 라면은 발음과 표기상 일종의 하이브리드, 다시 말해 중국어와 일본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짬뽕'이란 것"이다. 그리고 면 분류의 기준상 짜장면은 라면에 해당할 수밖에 없는 것.
마지막으로 짜장면에 따라오는 춘장은 총장(蔥醬)의 와전된 이름이다. 여기서 총은 파다. 우리는 양파를 '춘장'에 찍어 먹지만, 산둥 사람들은 2m가 넘는 대파를 '총장'에 찍어 먹었다. '총장'이 '춘장'이 됐다.
짜장면의 하루 소비량은 700만 그릇.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전후해 한반도에 전래해 온 짜장면이야말로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다리가 됐다. 국수 가락처럼 이어지는 일상 속의 동아시아 문화사 여행이 즐겁다. 저자는 연세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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