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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정은이 협박? 되레 美에 간청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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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정은이 협박? 되레 美에 간청한 것"

[정세현의 정세토크] "文대통령, 김정은에게 美 설득 카드 얻어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언제든지 마주 앉을 수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내놨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미국이 제재와 압박만 가한다면 자신들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가시가 잔뜩 박힌 올리브 가지를 내밀었다고 해석했다. 미국을 향한 경고성 메시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단어 자체만 보지 말고 문맥을 살펴봐야 한다"며 "이건 엄포나 협박이 아니라 간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표현 자체도 상당히 완곡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담긴 북한의 속뜻은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어야 자신들도 비핵화로 더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즉 미국에 상응 조치를 해달라고 간청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이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회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서도 "'핵-경제 병진노선'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옛날 길"이라고 일갈했다.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은 외교적 차원에서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및 평화체제 협상을 미국과 1대1로 했는데, 자꾸 미국이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려고만 하니까, '계속 이렇게 나오면 제재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편이 돼줄 수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해 일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김 위원장과 만남을 기대한다며 긍정적 반응을 내놨다. 하지만 실제 북미 정상이 빠른 시일 안에 만나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정 전 장관은 "북미가 알아서 접점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만 가게 돼 있다"며 "지금 이 시점,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뛰어 들어야 한다. 지난해 5월 취소될 뻔했던 북미 정상회담을 살려냈듯이 문 대통령이 한 번 더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해서 북미 간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남북 간 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조치를 하나만 내놓아라, 그걸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나오게 하겠다면서 움직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코치를 받고 문 대통령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를 줘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언제든 또 다시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미국이 계속 제재와 압박만 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이걸 두고 김 위원장이 미국에 엄포를 놓았다, 협박을 했다 등의 평가도 나오고 있는데요.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문맥상으로 접근해서 검토하면 엄포나 협박이 아니라 오히려 간청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표현 자체도 상당히 완곡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담긴 북한의 속뜻은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대해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어야 자신들도 비핵화로 더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미국에 상응 조치를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죠.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더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스스로 천명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습니다.

정세현 :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신년사에서 언급했기 때문에 그 대목은 북미 관계 개선이나 평화체제 또는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카드로 쓰려고 가지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핵 동결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거죠.

북한은 "미국이 생각하기에 우리가 핵확산의 위험성이나 사용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우리가 주장하는 수교나 평화협정을 확실하게 보장하라"라는 뜻을 내보인 겁니다.

물론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입장에서 보면 김 위원장이 언급한 '새로운 길'도 '핵-경제 병진노선'으로 돌아가겠다는 해석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핵-경제 병진노선'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옛날 길입니다. 김 위원장이 정말 병진노선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다면 '새로운 길'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은 외교적 차원의 접근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에 북한이 비핵화 및 평화체제 협상을 미국과 1대1로 했는데, 자꾸 미국이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려고만 하니까, '계속 이렇게 나오면 제재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편이 돼줄 수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관측됩니다.

다자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읽힙니다. 지난 6.12 북미 공동성명에서 북미 양측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합의했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북미 간에 어떻게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인가와 관련해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어떻게' 라는 부분에서의 답을 내놓은 겁니다.

사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어차피 남북미중 4자 협상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국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건데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3번 있었고 미국과 정상회담도 했다고 하면서 중국과도 3번이나 만났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중국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유력한 파트너로 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북한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그나마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곳은 중국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 : 평화체제와 관련해서는 다자협상이 가능하지만 비핵화 문제까지 다자협상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도 비핵화는 미국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북미 협상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미국이 압박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걸로 보입니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6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필요성을 담은 안보리 언론성명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북한을 쪼아대기만 하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또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의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계속 제재와 압박만 하면 핵 문제 역시 다자로 가져가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길은 6자회담으로의 완전 복귀는 아닐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 일본이 들어오는 건 반갑지 않거든요. 물론 러시아를 끌어들이면 좋은데 그러려면 일본도 협상 테이블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남북미중 4자의 협상 테이블을 만들고 싶을 겁니다. 핵 문제 해결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도 4자로 가자는 것이죠.

프레시안 : 일단 신년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남 기대한다고 했는데 미국 국무부는 논평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정세현 : 국무부 실무 관료들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앞서가는데 실무자들이 뒤집기 어렵기도 하고요. 또 김 위원장이 이야기한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연구‧분석도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최근 미국의 행동을 보면 다소 긍정적으로 읽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말에 방한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그런데 이를 두고 미국이 북한에 배려 또는 양보를 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더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미국이 연말에 보여준 이른바 '양보 제스처'가 북미 정상회담이나 비핵화 문제를 푸는 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미국의 그러한 제스처가 나쁘지는 않은데 그런 제스처 때문에 북한이 핵과 관련한 추가적인 선(先)행동을 하는 것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이러한 입장 표명이 실질적인 양보는 아니고, 현재 조성돼있는 협상 판을 깨지 않으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의 경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2월에 미국을 방문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을 때 이야기를 잘했기 때문에 그러한 방침이 내려온 측면도 있지만, 착공식이나 인도적 지원 모두 실무선에서 결정한 일은 아닐 겁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노동신문

한편으로는 그동안 했었어야 하지만 하지 않았던 인도적 지원을 이제 와서 조금씩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이같은 제스처를 대단한 상응 조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및 국제 사찰단의 검증 등을 약속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미국은 이미 쓰지 못하게 된 것 가지고 그게 무슨 선행동이냐 라고 반발했고 북한은 그럼 들어와서 검증해봐라 라고 하는 상황인데요.

북한 입장에서는 제재 완화라는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합니다. 지난 2016년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했는데요. 올해가 벌써 이 전략을 발표한 지 4년째 되는 해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올해 안으로 제재가 해제되지 않으면 5개년 전략을 마무리하기 어렵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에서 '자력 갱생'을 상당히 강조했습니다. 심지어 군수 공업 부문 이야기를 할 때도 농기계를 언급할 정도로 자력 갱생에 힘을 줬는데요. 하지만 외국 투자가 없으면 자력 갱생만으로 5개년 전략을 달성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제재 완화가 시급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 연락사무소 정도는 교환하고 싶은 겁니다. 서로 연락사무소를 교환하면 더 이상 경제 제재를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하면 중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도 가능합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쪽의 투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해 5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단둥에서 서울 구간에 고속철도를 놓자고 했을 정도로 중국은 준비가 돼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식민 통치와 관련한 배상금도 받으려고 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정은, 개성공단‧금강산 꺼낸 이유는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했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을까요?

정세현 : 유엔의 대북 제재를 뚫고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친서부터 이번 신년사까지가 연결되는 차원에서 보자면 결국 남북관계 잘해보자는 의지는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북한이 저렇게 나오면 남한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습니다.

이 두 사안은 지난해 12월 26일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동안 남한은 대북 사업을 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미국에 사안 별로 협의 형식의 허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개성과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당장 쉬운 문제는 아니긴 합니다.

프레시안 : 김 위원장이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는데요. 북한이 구체적으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정세현 : 금강산관광을 했을 때 북한은 1인당 입산료를 부과했습니다. 이걸 면제해주려는 의도일 수 있고요. 또 관광 중단 이후 금강산에 있던 시설을 대가 없이 다시 남한에 돌려주겠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폐쇄 이후에 개성 경제가 어려워졌습니다. 공단 노동자뿐만 아니라 연관된 사람들의 생계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게 어쨌든 남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피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사안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려면 일단 조명균 장관과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장관급 회담을 개최해서 논의해 봐야 할 사안입니다.

프레시안 : 김 위원장의 제의를 그냥 뭉갤 것이 아니라 일단 받아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까요?

정세현 : 일단 논의를 통해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을 정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재개하면 좋고요. 그래야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 끈이 있어야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역할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미국에도, 북한에도 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겁니다.

▲ 지난 2016년 2월 11일 개성공단 폐쐐 조치로 인해 공단 내 남한 기업들이 공단에서 물품을 싣고 남한으로 내려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번 신년사에서 "전민족적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하자고 밝힌 대목을 두고 민간차원의 대남 평화공세를 의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정세현 : 일단 지금 북한이 민간차원의 평화 공세를 한다고 해서 이게 먹혀들어갈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북한이 통일 방안을 이야기하면서 전민족 대회니 범민족 회의니 이런 용어를 쓸 때 예전에는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위장 평화공세의 연장선에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1980~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의 연방제는 1960년 김일성이 8.15 경축사 때 제시한 연방제에서 벗어났습니다. 다만 김일성이 이야기했기 때문에 '연방제'라는 단어는 그대로 쓰고 있죠.

또 1991년 김일성은 '이제 연방제도 느슨한 형태로 가야 한다'며 스스로 말을 바꿉니다. 지난 1960년대에 북한이 언급했던 연방제는 느슨한 형태가 아니라 남북을 묶어두는 긴밀한 연방제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 때 이야기고요.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일하는 것을 지켜본 김일성 입장에서는 더 이상 긴밀한 연방제를 주장할 수가 없던 겁니다.

이 느슨한 연방제는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 발표하고 국회의 승인을 언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유사합니다. 국가 대 국가의 협력 체제죠.

그리고 2000년 6.15 정상회담 때 남북은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이러한 것들을 모두 깔아 뭉개고 1960년 김일성이 이야기했던 통일방안인 '긴밀한 연방제'를 밀어붙일 수 있을까요? 지금 이걸 추진하면 경제적으로 약세에 있는 북한이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금 중재자로 나서야

프레시안 : 결국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야 북미 관계나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요. 북미 관계가 진전될 수 있는 시금석은 무엇일까요?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 다시 방문한다든가 하는 구체적 행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북미가 알아서 접점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면 시간만 가게 돼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 이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뛰어 들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이야기했고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을 기대한다고 했기 때문에 취소될 뻔했던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살려냈듯이 문 대통령이 한 번 더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에 문 대통령에게 보내온 친서를 보면 북미 정상회담 뒤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결정했을 때 생각했던 '선 북미 정상회담, 후 남북 정상회담' 인식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거론됐던 지난해 9월 19일 평양 정상회담 때만 해도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전에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행시킬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이 만들어지면 그 범위 안에서 남북관계를 활성화하고 남쪽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충분히 보장받겠다는 계산을 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10월 하순쯤에는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해를 넘기기 전에 로드맵이 완성되면 그 틀 내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의 범위나 깊이를 정하려고 했을 텐데 이게 틀어진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해서 북미 간 접점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북미 간 접점을 찾는 내용만을 의제로 한 원포인트, 당일 치기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합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조치를 하나만 내놓아라, 그걸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나오게 하겠다"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도록 하려면 북한이 풍계리 폐기나 동창리 폐기 약속만 가지고 마치 '할 일 다했다'는 식으로 버티면 안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려면 미국 정부의 실무자들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들에게도 입장을 바꿔서 한 발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합니다.

김 위원장의 '선 북미, 후 남북' 프레임은 사실 남한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미국이 반대하면 남북 간 협력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김 위원장도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코치를 받고 문 대통령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카드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이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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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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