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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신년사 제대로 읽기

[정욱식 칼럼] 북한, '새로운 길'을 원하지 않는 점 강조한 것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하루 만에 트위터를 통해 "나도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고대한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두 정상의 공개적인 발언 속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신경전도 담겨 있다. 김정은은 미국이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부득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본인도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성의를 촉구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가리켜 "북한이 위대한 경제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다고 표현했다. 경제적 잠재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가 필수적이다. 바로 여기에 북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트럼프는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김정은의 약점으로 간주해왔다.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김정은을 향해 '제재 해제를 원한다면 비핵화부터 하라'는 접근법을 취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를 "구태"로 일축해왔다. 그리고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미국이 계속 "구태"에 집착하면 북한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노동신문

원하지 않는 "새로운 길"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은 이걸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을 가기에는 다른 길로 너무 멀리 갔고, 그 "새로운 길"이 미국의 적대 정책에 맞선 핵무력 강화를 의미한다면 북한의 미래는 '가난한 핵보유국'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2015년 선포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및 작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새로운 전략 노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김정은은 어느 때보다 비핵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및 평화체제 구축과 더불어 "완전한 비핵화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특히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는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서 트럼프의 기대치를 반영한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추측건대, 미국의 상응조치가 보장된다면 영변 핵시설의 폐기뿐만 아니라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이고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김정은이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내외에 선포하고 여러 가지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밝힌 부분이다. 북한이 핵무기 불사용과 비확산을 약속한 것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새로운 내용이다. 오히려 김정은은 지난해 신년사에선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한미 당국도 작년에 북한의 핵물질 생산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올해에는 최소한 핵 동결을 제시하면서 미국에 상응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 예고편은 이미 나온 바 있다.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 정도의 제안을 내놓는 것은 트럼프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도 부족하고 김정은이 말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와도 거리가 멀다. 핵심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및 핵물질의 처리 방안이고, 영변 이외의 의심 시설에 대한 검증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및 그 성패는 비핵화의 핵심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어떤 제안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2차 북미 정상회담 목표는?

한편 김정은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면서 크게 세 가지 요구도 내놓았다. 첫째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의 유지 및 미국의 전략자산을 전개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비핵화 추진을 위한 환경 조성에 해당한다.

둘째는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이다. 김정은이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 없이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언급했다는 점과 남북미중 4자간 협상을 의미하는 "다자 협상"을 공식화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셋째는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가 밝혔는데, 이는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최소한 이들 사업의 재개를 가능케 하는 수준으로 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남북한 정상은 9월 평양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한 만큼, 이들 사업 재개의 열쇠는 사실상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에 관한 진전된 제안을 내놓으면서, 비핵화에는 한미군사훈련 중단 및 전략자산 미전개도 포함되어야 하고, 남북미중 평화협정 협상도 조속히 개시되어야 하며,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가능케 하는 제재 완화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필자의 신간 <비핵화의 최후>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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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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