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생활인인 조교들은 고용 불안에 휩싸여 살수밖에 없다. 그들은 비정규직법, 파견법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다. 정규직 전환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대학 측은 각종 편법을 쓴다. 대학 구성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또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김선수 변호사는 경기대학교 기간제-파견근로 해고 사건을 맡았다. 이 사건을 통해 입은 있지만 말은 못하는 '조교'와 대학 비정규직의 실태를 살펴본다.(편집자)
의뢰인의 근무 내역 및 담당업무
의뢰인(소송상 지위는 피고보조참가인, 이하 '참가인')은 학교법인(소송상 지위는 원고, 이하 '원고 법인')이 운영하는 경기대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 3월 모교에서 조교로 임용된 이래 2010년 8월 31일까지 3번의 파견근로(2004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1년,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를 포함하여 모두 9회에 걸쳐 근로계약을 갱신하여 계속 근무하였다.
▲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의 비정규직, 파견직 실태는 사실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대학의 청소노동자, 시간강사 등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대학교 조교들의 경우도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침묵을 해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사진은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
참가인은 2002년 3월부터 행정대학원에서 고위정책과정 담당으로 원생 모집, 자금수지 계획 및 운영(수입지출 관리 및 자금 집행), 등록금 관련 업무, 총동문회 및 원우회 지원과 협조 업무 등을 담당했다. 원고 법인은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한 자 중에서 임시직 또는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이들 중에서 특별히 근무태도가 불량한 자를 제외하고 특별채용 형식으로 정규직을 채용해왔다. 이런 특별채용 관행은 2006년까지 꾸준하게 시행되었다.
대학교 규정상 조교 신분으로 4년 이상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참가인이 2004년 3월 이후 계속 근무할 수 없게 되자 상급자들은 참가인의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참가인을 계속 고용하기 위한 방편을 모색한 결과 6개월 정도만 파견업체 소속으로 옮기면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참가인은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사례를 보아왔기 때문에 상급자들의 약속을 믿고 6개월간 소속을 A파견회사(에스엠텍 주식회사)로 옮겨 근무했다. 그런데 원고 법인은 노동조합의 눈치를 보면서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계약직으로 다시 근무하도록 했다. 참가인은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2004년 9월부터 3년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다.
원고 법인은 2007년 7월 1일자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기간제법')이 시행되자 2007년 9월에 참가인에게 A파견회사로 적을 옮기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8년 9월에는 B파견회사(주식회사 유니에스)로 그 소속을 바꾸도록 했다. 참가인의 입장에서는 정규직 전환의 날을 기다리며 원고 법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파견회사의 선정이나 그 회사가 참가인에게 지급할 급여액 등은 모두 원고 법인이 결정했다. 원고 법인이 급여액에 수수료 등을 더한 금액을 파견회사에 지급하고 파견회사는 그 중 급여 상당액을 참가인에게 지급했다.
특히 B파견회사와의 근로계약서 작성은 계약조건에 관하여 참가인과 B파견회사 사이에 구체적인 협의절차 없이 종전 계약기간이 종료되고 새로운 계약기간이 시작된 2008년 9월 초순경 대학교 구내로 B파견회사 직원이 찾아와 이루어졌다. A파견회사와의 근로계약서는 아예 작성되지 않아서 원고 법인도 이를 증거로 제출하지 못했다. 파견근로계약 기간 중에도 참가인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행정대학원 원장 및 교학팀장의 지휘명령을 받았고, 파견회사로부터 교육훈련이나 지휘·감독을 받은 바는 없었다.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B파견회사와의 근로계약상 참가인의 근무 장소는 대학교 우체국이었으나, 그와 관계없이 참가인은 행정대학원에서 고위정책과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원고 법인은 파견기간이 2년이 초과하는 경우 직접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파견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2009년 9월에는 직접 1년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참가인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10년 장기근속에도 신입 9급 정규직 급여(연봉 4,300만원)의 5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인 월 2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원고 법인은 행정대학원 특별과정 1,400여 동문의 활성화 및 유지를 위해 매년 직원임용 대상자로 참가인을 추천하여 고용해왔다. 참가인이 10년간 원생들과 진솔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한 것이 행정대학원 특별과정의 괄목할 만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참가인의 상급자들은 물론이고 특별과정 동문들도 인정했다. 참가인은 매년 근무평정 시 모든 항목에서 만점을 받는 등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2005년 12월, 2007년 12월에 고위정책과정 총동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사직서 제출 및 해고 경위
원고 법인은 2010년 7월 30일 참가인에게 계약기간 만료 예고를 통보하고는 2010년 8월 20일 개최된 인사위원회에서 업무연속성을 고려하여 참가인을 1년간 재고용하기로 의결했다. 총무팀장은 2010년 8월 26일 참가인을 찾아와 급여의 25% 정도 인상은 가능하다면서 1년간 계약직으로 다시 근무할 것을 제안했다. 참가인은 총무팀장에게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며 장기간 계약직 또는 파견직으로 근무해왔는데,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계약직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점에 크게 실망했다는 점과 급여수준도 정규직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심각한 차별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복잡한 학교사정으로 인해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면 최소한 급여만이라도 현실화시켜 20대 초반 신규 9급 사원들 연봉 4,300만원의 2/3 정도로 조정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원고 법인은 참가인의 제안에 대해 아무런 후속절차도 진행시키지 않다가 2010년 8월 30일 참가인의 상급자인 교학팀장을 통하여 사직서 제출을 강요했다. 참가인은 처음에는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였으나, 그 동안 인간적으로 대해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교학팀장이 화를 내면서 학교규정상 후임자 발령을 위해 전임자의 사직서가 징구되어야 하며, 어차피 참가인의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되었으므로 참가인이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근로계약기간 만료에 하등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참가인은 8월 31일자로 작성된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원고 법인은 이를 빌미로 2010년 8월 31일자로 참가인을 퇴직처리 했다.
참가인은 사직서 제출 다음날인 8월 31일 저녁에 노무사와 상담한 결과 사직서 제출이 자의에 의한 퇴사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참가인은 2010년 9월 1일 아침 일찍 부서책임자인 행정대학원장과 교학팀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요구한 경위와 의도에 대해 항의했다. 원장과 팀장은 사직서가 법적 소송을 하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몰랐다면서 소송을 제기하면 계약기간 만료가 쟁점으로 될 것이고 사직서 자체는 문제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인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해왔던 총동문회는 참가인에 대한 일방적인 해고에 항의하는 표시로 2010년 9월 1일 진행된 신입생 입학식에 총동문회장이 불참했다.
부당해고 구제 절차
참가인이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해 준 후에도 상급자들은 참가인에게 법적 구제절차를 밟아 복직하라면서 후임자의 업무를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가 해고된 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서 구제명령을 받고 복직한 선례가 있어, 참가인은 그와 같이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상급자들의 요청에 따라 업무를 도와주었다. 참가인은 원고 법인이 정규직 전환 등의 조치를 취해줄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아 2010년 10월 1일자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 심리과정에서 참가인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한 교학팀장 등 소속 상급자들이 자신들의 종용에 의해 원고가 사직의 의사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서 내지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다. 고위정책과정 동문 400여 명은 참가인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며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주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의 성과로 지노위는 2010년 11월 25일 구제명령을 하였다.
참가인의 소속이 파견업체로 변경되었으나 참가인과 파견사업주 사이에 맺은 근로계약은 실질적인 내용이 전혀 없고 형식에 불과하며, 참가인과 원고 법인과의 근로계약관계가 일시적으로 파견업체와 맺은 근로계약으로 인해 근로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직서의 효력에 대해서는 원고 법인이 참가인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즉, 비진의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그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참가인과 원고 법인의 근로관계는 계속 이어져 기간제법이 시행된 이후 근로계약이 체결된 2007년 9월 1일 이후 2년을 초과하는 시점인 2009년 9월 1일부터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되고, 원고 법인이 2010년 8월 31일자로 참가인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지노위는 원고 법인이 참가인을 파견근로자로 사용하면서 파견법 시행령에 따른 파견대상 업무 중의 하나인 사무지원 종사자 자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나, 참가인은 일반 사무직원을 보조하여 문서정리 및 수발, 워드프로세싱, 자료 집계, 자료 복사 등을 행하는 파견대상 업무 수준 이상인 특별교육과정의 운영자금 관리 등의 고유 업무를 수행했다고 인정했다.
원고 법인은 지노위의 구제명령에 불복하여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하면서도 일단 참가인에게 해고기간 중의 임금을 지급하고 참가인을 복직시켰다. 소속부서에서 참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011년 3월 2일 원고 법인의 재심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했다. 참가인은 부당해고구제신청 절차를 밟고 있던 중인 2011년 5월 및 2011년 12월에 고위정책과정 총동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행정소송 패소와 수임
원고 법인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소송에서 원고 법인은 참가인과 임금 협상을 했던 총무팀장과 참가인으로부터 사직서를 직접 제출받은 교학팀 대리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하였고, 참가인은 사직서 제출을 강요했던 교학팀장을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10월 20일 판결을 선고했는데, 중노위 재심판정을 취소함으로써 참가인이 패소하였다(2011구합12030 판결: 재판장 판사 진창수, 판사 곽형섭, 판사 홍석현).
서울행정법원은 참가인이 제출한 사직서를 트집 잡았다. 원고 법인이 사직의 의사 없는 참가인으로 하여금 강요 등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고 볼 수 없고, 참가인의 사직 의사표시가 내심의 효과의사가 결여된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거나 또는 원고 법인이 그 의사표시가 진의에 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참가인의 사직서 제출에 따른 사직의 의사표시는 유효하고 원고 법인과 참가인의 근로계약관계는 합의해지에 의하여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참가인의 상급자가 참가인에게 사직서 제출을 강요했다고 증언했음에도 법원은 이를 배척하고 참가인이 진의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참가인은 행정법원에서 의외의 결과를 받고 나를 찾아왔다. 일단 제출된 사직서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 만만치 않아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히 다투어 볼 여지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렇게 해서 항소심에서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참가인은 우리 사무실에 오기 전에 대형 로펌을 비롯해서 20여 명의 변호사를 만나보고 최종적으로 나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무슨 운명의 힘이 작용했는가?
항소심 진행
참가인이 항소를 제기하자 원고 법인은 서울고등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과 지노위 구제명령에 대해 효력정지 신청을 하였다. 지노위 구제명령에 따라 복직시켰던 것을 취소하기 위함이다. 서울고등법원은 2011년 12월 1일 원고 법인의 중노위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은 인용하고 지노위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은 기각했다(2011아490 결정: 재판장 판사 임종헌, 판사 노경필, 판사 정재오). 원고 법인은 위 결정에 따라 2011년 12월 17일자로 참가인에 대한 복직을 철회했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사직서의 효력은 심각하게 문제되지 않았다. 파견회사에 소속된 기간 동안 원고 법인과의 근로관계가 계속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 핵심쟁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정법원에서 사직서의 효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는 이 쟁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1심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가인이 얼마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권을 갖고 있었는지 하는 점을 중점적으로 주장하였다. 사직서 제출 경위, 참가인의 성실한 근무태도와 업무능력, 복직에 대한 염원 등에 대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로부터 진술서 또는 확인서를 추가로 취합해서 제출했다. 행정대학원에서 보직을 가졌던 교수들은 물론이고 사무직원들 그리고 고위정책과정 동문 등 많은 사람들이 협조해 주었다. 우리는 행정부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해서 사직서 제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직접 목격하고 또한 참가인의 정규직 전환 노력에 대해 신문했다. 원고 법인도 참가인의 후임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참가인이 자의에 의해 사직한 것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증인신문까지 두 번의 기일을 진행한 후에 결심을 하고 2012년 7월 18일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결심하는 단계에서 노동조합 활동과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해고된 한 근로자의 사건에서 사직서를 제출받은 상급자가 자기의 강요 또는 종용으로 진정한 사직의 의사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증언 및 진술서를 통해 인정하고, 또한 많은 상급자와 동문들이 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복직을 바라는 뜻을 재판부에 전달한 사례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재판부는 8월 22일로 선고기일을 연기하더니 재개하고 석명준비명령을 보내왔다. 재판부가 요구한 석명준비사항은 참가인이 파견회사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원고 법인에 파견근무하게 된 경위, 파견회사로부터 교육훈련(소집교육)이나 지휘감독 등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및 급여는 어떻게 결정되었으며 실제 어떤 방식으로 누가 지급하였는지, 원고 법인의 파견 계약직 근로자들은 참가인처럼 원고 법인의 계약직 근로자이었다가 파견 계약직 근로자로 된 것인지 등이다. 참가인 측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내용이어서 사실대로 정리해서 서면을 제출했다. 원고 법인도 각 항목에 대해 답변을 했는데, 사실 자체에 대해 크게 다툼의 여지는 없었다.
재판부는 9월 26일 기일을 한 번 진행한 후 11월 14일에 판결을 선고했다. 조마조마했지만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참가인이 승소했다(서울고등법원 2012. 11. 14. 선고 2011누39419 판결: 재판장 판사 안영진, 판사 노경필, 판사 정재오). 항소심 판결은 참가인이 외관상 2007년 9월과 2008년 9월에 파견회사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대학교에서 파견근로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그 기간에도 참가인은 그 이전이나 이후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원고 법인의 지휘·감독을 받는 등 원고 법인과 종속적인 관계에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임금액을 결정, 지급하는 자도 원고 법인이었고, 근로제공의 상대방도 원고 법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 파견회사들과의 근로계약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아니하고 모두 참가인과 원고 법인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면서, 원고 법인은 기간제법 시행 이후 체결된 2007년 9월 1일부터 2년을 초과한 기간 참가인을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한 것에 해당하므로 참가인은 2년이 경과한 2009년 9월 1일경부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직서의 효력에 대해서는 참가인은 자신이 2009년 9월 1일경 이미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되었음을 알지 못한 채 직속상관의 종용에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므로 참가인의 사직서 제출은 사직하고자 하는 내심의 의사로 한 것이라 할 수 없으며 원고 법인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며, 원고 법인이 참가인의 사직서를 수리하는 방식으로 퇴직처리 한 것은 실질적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킨 것으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원고 법인의 상고와 확정
원고 법인은 바로 상고를 제기했다. 이번에는 참가인을 복직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고 법인은 상고이유에서 고등법원 판결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원심판결은 선입견에 따라 이미 결론을 정하여 놓고 그 결론에 맞추어 사실인정 및 법리에 관한 판단을 한 결과로 보이는바, 원심판결이 위와 같은 판단을 한 것은 대학교의 일부 직원 또는 행정대학원의 일부 동문들이 참가인의 복직을 희망하는 탄원서 등을 제출하고 있는 것에 경주(傾注)되어 마치 원고 내지 대학교의 다른 구성원들도 그러한 복직을 희망하거나 또는 적어도 참가인의 복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아니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참가인 측의 주장이 사실인 것으로 오해한 때문으로 보이며' '원심은 사실인정이나 법리 전개 등에 있어서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그것과 상반되는 판결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먼저 내리고 나서 그에 맞추어 판결이유를 전개한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판결을 내놓더라도 원고가 그에 대해 상고까지 하지는 아니할 것으로 짐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원고 법인의 상고이유를 읽으면서 상고이유를 법리적으로 건조하게 전개하지 않고 원색적으로 원심판결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간단히 원고 측 상고이유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아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판결을 선고해야 할 사안임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3년 3월 14일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2두27732 판결: 재판장 대법관 신영철, 대법관 이상훈, 주심 대법관 김용덕, 대법관 김소영).
정성이 판사를 감복시킨 사건
이 사건은 당사자의 정성이 판사를 감복시켰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법인 직원들 일부와 대학 총무과 직원 일부 그리고 소속부서 몇몇 관련 직원을 제외하고는 참가인의 모든 상급자들과 동문들이 참가인의 입장을 지지해 주었다. 참가인이 그만큼 성실하게 근무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해고된 근로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경우 상급자나 동료근로자들로부터 이와 같이 전폭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행정법원은 사직서라는 형식에 얽매인 판단을 하였다. 이로 인해 사직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하고 법정투쟁에서 넘기 힘든 장벽인지 새삼 절감하기도 했다.
파견근무 종료를 이유로 해고된 사건
의뢰인(원고)은 2002년 3월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학생으로서 행정조교로 학교법인(피고) 산하 모교에 입사하여 2003년 4월까지 교학2처에서 행정보조 업무를 담당했다. 2004년 3월부터 2007년 2월까지 교무처에서 행정보조 업무를 담당했으며, 대학원 졸업 후 2007년 3월부터 피고 법인 후생복지센터 사무원으로 근무했다. 원고는 22개 복지관 매장 임대차계약 및 학생통학버스 관리운영계약 체결, 통학버스 리스료 지급 결제, 수련원과 콘도 등 복지시설 예약 및 이용현황 관리, 각종 학생복지와 관련된 민원 접수 및 해결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2010년 9월부터는 추가로 학생지원처 업무인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사업 팀원으로 배치되어 그 업무도 담당했다.
원고는 피고 법인의 요청에 따라 2007년 3월부터 2007년 8월까지 6개월,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피고 법인과 각 1년 단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였고,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및 2010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는 B파견회사와 사이에 1년 단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원고가 2009년 9월 파견회사와 1년 단위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된 것은 원고 상급자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는 학내 위원회의 결의에 기초하여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원고는 소속이 파견회사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근무 장소나 담당업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업무수행과정에서 피고 법인의 지위감독을 받았으며 동일한 조건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피고 법인은 2011년 8월 31일자로 파견회사로부터 계약기간 만료로 근로관계가 종료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음을 이유로 원고를 해고했다.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원고는 해고 다음날인 2011년 9월 1일자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했다. 당시 피고 법인에서 해고되었던 기간제 근로자 2명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서 구제명령을 받아 복직했기 때문에 같은 결론을 기대하고 구제신청을 했던 것이다. 원고보다 1년 빠른 2010년 8월 31일자로 해고된 직원이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구제명령을 받고 복직한 상태에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 직원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그 바람에 지노위는 2011년 10월 26일자로 원고의 구제신청을 각하하는 판정을 했다. 원고와 피고의 근로관계는 원고가 퇴직금을 수령하고 관련 기관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였던 2009년 8월 31일 종료되었고, 그 이후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파견된 것으로 피고와의 사이에 근로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어 당사자 적격이 없기 때문에 각하사유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사건의 수임과 민사소송의 제기
원고보다 1년 먼저 해고되어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사건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해서 원고도 지노위의 각하결정을 받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지노위 결정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하고 행정소송의 방법으로 다투지 않고 바로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청구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2011년 12월 9일자로 수원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1심 소송과정에서 원고의 상급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했다. 상급자들은 원고의 근무태도와 업무능력에 대해 좋게 평가했고, 여건이 되는대로 소송에서 원고를 도와주었다. 2012년 6월 15일에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2011가합24923 판결: 재판장 판사 함종식, 판사 위지현, 판사 조현욱). 이유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근로관계는 그 근로계약 기간이 만료된 2009년 8월 31일 종료되었고, 원고는 그 이후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파견된 것일 뿐 피고와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와 항소심 판결 및 확정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다. 그런데 원고보다 1년 전에 해고되었던 직원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이 2012년 11월 14일자로 행정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해고자 승소판결을 선고했다. 원고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논리로 승소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항소심에서 위 판결을 원용하여 서면을 다시 정리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위 판결 취지에 맞게 관련자들로부터 진술서 또는 확인서를 더 받아 증거로 제출했다.
그 사이에 법원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2013년 2월 27일에 변론기일을 진행한 후 바로 결심을 한 후 2013년 3월 13일 판결을 선고했다. 기대했던 대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13. 3. 13. 선고 2012나59376 판결: 재판장 판사 조해현, 판사 마은혁, 판사 김호춘).
그 사이에 피고 측은 법인 이사장과 대학교 총장이 바뀌었다. 비교적 합리적인 인사들로 교체되어 이 사건에 대해 상고제기 기간(항소심 판결을 수령하고 14일, 2013년 4월 1일) 내에 상고를 하지 않아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무조건 상소하면 약자인 근로자로서는 장기간 고생을 더 할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판결의 의의
위 사건 판결의 핵심은 원고가 파견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파견근로의 형식을 취하였지만 원고와 파견회사 사이의 근로계약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피고와 원고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파견기간에도 원고와 피고 사이의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유지되었고, 2009년 9월 1일부터는 기간제법 규정에 따라 원고와 피고 사이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원고용주에게 고용되어 제3자의 사업장에서 제3자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제3자의 근로자라고 할 수 있으려면 원고용주가 독자성과 독립성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제3자와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평가한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5다7508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파견회사는 근로자를 6,000여 명이나 고용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파견업체 중 하나이어서 독자성 내지 독립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외형적, 형식적으로는 근로자가 원고용주인 파견사업주에 고용되어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제3자인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에 따라 업무에 종사하더라도, 실제로는 파견사업주에게 노동법상 파견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부담할만한 독자적인 능력이 없거나 파견사업주가 고용관계의 기본적 사항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아 파견사업주로서의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근로자가 사용사업주와 종속적인 관계에 있고 사용사업주가 근로자에 대하여 지휘명령을 할뿐 아니라 근로자의 채용, 징계, 해고 등 인사에 관한 사항, 임금에 관한 사항 및 고용관계의 유지에 필요한 노무관리에 관한 사항 등 고용관계에 관한 기본적 사항에서도 주도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사용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파견업체 자체는 사업주로서의 독자성이 없거나 독립성을 결하였다고 볼 수 없지만, 원고와 파견업체 사이의 근로계약의 체결과 관련하여서는 파견업체가 고용관계에 관한 기본적 사항에 관하여 파견사업주로서의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않아 파견사업주로서의 존재가 형식적,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사용자가 비정규직법의 정규직 전환 규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기간제근로와 파견근로를 왔다갔다 이용하는 경우에도 그 실질에 비추어 사용사업주와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한다고 인정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이러한 편법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간접고용에서 사용사업주와 근로자 사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을 인정함에 있어 중간매개자의 실체가 없는 경우로 한정하는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던 기존 판결례와는 달리 실질적인 관점에서 평가함으로써 권리구제의 길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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