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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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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국가 미국·1강-①]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아시아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2월 5일부터 오는 3월 13일까지 총 8회에 걸쳐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의 '전쟁국가 미국' 강연을 마련했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군사주의 노선이 현재 세계의 혼란과 부의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후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니다.

<프레시안>은 격주로 진행되는 강연을 정리해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아래는 지난 12월 5일 진행된 1회 강연을 보강한 내용입니다. 1회 강연은 아래 내용을 포함해 총 네 차례에 걸쳐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강연 소개 바로 가기)

세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물론 패권이 교체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이며 경제 대국이다.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 자국 주변에 대한 미국의 군사 패권을 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30분 내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경제 규모 역시 아직은 미국이 중국을 앞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쇠퇴는 분명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 군사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에너지 자원의 보고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통제권 아래 두겠다는 네오콘의 야망은 백일몽임이 판명됐다. 2001년 아프간 침공 이래 18년째 '긴 전쟁(Long War)'을 벌이면서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발생한 6천5백만 명의 전쟁 난민이(2차 대전 이후 최대) 유럽으로 몰려들면서 유럽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유럽 정치의 극우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오늘의 미국을 '혼돈의 제국'이라 부르는 이유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 경제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2016년 정치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2차 대전 후 미국 지배 엘리트가 추구해온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더 이상 미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음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식 체제와 가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1년 10월 25일 자 <뉴욕타임스>는 "미 국민의 89%는 정부가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믿지 않고, 74%는 미국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84%는 의회가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이 무렵 아랍의 민주화를 외치며 궐기했던(아랍의 봄) 중동지역의 청년들은 더 이상 미국식 체제를 자신들의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2차 대전 이후 경제, 군사, 정치에서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의 패권(Hegemony)은 몰락했다. 헤게모니란 피지배자들의 자발적 동의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2003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는 '동의 없는 지배' 즉 '일방적 강제'일 뿐이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 지배는 지속 가능성이 없거나 대단히 희박하다.

반면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나아가 구매력 기준 GDP로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차머스 존슨은 2000년 발간한 저서 <역풍(Blowback)>을 통해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이러한 변화의 거의 마지막 과정으로 향후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이제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2차 대전 후 일본에서 시작된 경제 기적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으로 확대됐다. 마지막 남은 곳이 북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체제가 완성된다면 북한도 그 기적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의 세계 경제는, 나아가 세계의 미래는 동아시아가 이끌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천하의 대세다.

문제는 동아시아가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인 반면 정치‧안보 측면에서는 가장 불안정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북핵 위협, 보다 근원적으로는 중국과 미국(그리고 일본)의 대립에 있다.

한편 16세기 이후 서구의 경제적 흥기가 군사력의 우위에 바탕을 둔 데 반해 동아시아의 경제적 부상은 군사력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다. 군사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전쟁 없는 세계의 공동 번영은 가능할 것인가? 향후 세계의 미래를 판가름할 중대한 문제이다. '전쟁국가 미국'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는 19세기 중반, 서구 세력이 동아시아를 침탈한 이래 세 번째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첫 번째 전환기는 1876년 개항, 두 번째 전환기는 1945년 해방이다. 첫 전환기는 일제 식민지로 귀결됐고, 두 번째 전환기는 분단과 전쟁을 초래했다. 국제 정세의 변화에 주체적 대응을 못한 탓이다. 정세 변화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세 변화에 무지했고 과거에 안주한 탓이다.

1989년 탈냉전 이후의 세 번째 전환기에도 주체적, 창조적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외세에 휘둘리며 집안싸움이나 벌이는 못난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전쟁국가 미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 한국전쟁 당시 38선 경계표시판 ⓒ프레시안 자료사진

서구의 세계 지배와 군사력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다.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그것이다.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다. 그야말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미군의 작전 구역이다.

미국의 군사비는 대략 한해 7000억 달러 정도다. 여기에 핵무기 통계는 잡히지 않는다. 핵무기는 국방부 관할이 아니라 에너지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미 군사비 전체 규모는 대략 1조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다른 모든 나라들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미국 국방비에 미치지 못한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나라는 없었다. 왜 그럴까? 미국의 보수파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다음 발언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서유럽이 세계를 장악한 것은 이념이나 가치관 또는 종교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무력을 조직적으로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비서구인들은 절대 잊지 않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간명하게 요약했다. 서구의 세계 지배는 군사력의 우위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군사력에 의한 세계 지배로 서구는 자유와 번영을 누렸고 비서구는 희생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우리는 흔히 서구를 자유, 민주, 인권 등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선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구가 번영한 바탕에는 비서구에 대한 잔혹한 지배와 통제가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를 차지했고, 영국은 인도와 말레이를,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집어삼켰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수 천 만 명의 원주민이 유럽인들에게 도살당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아프리카를 분할 지배했고, 중국을 반(半)식민지화 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과 대만, 만주를 먹었다.

16~19세기 동안 1500만~3000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 등의 담배, 설탕, 목화 농장에서 죽도록 일을 했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약 2000만 명의 중국인을 아편 중독자로 만들었다. 중국이 아편 판매를 금지하자 전쟁으로 응수했다. 벨기에가 지배한 콩고의 고무농장에서는 최대 100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죽어나갔다.

이른바 서구 선진국들이 말하는 자유, 민주, 인권, 자유무역 등은 그들 사회 내부, 또는 서구 국가들 간에만 통용되는 가치였다. 영국이 식민지 인도의 자유, 민주, 인권을 보장했을까?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무역 관계가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이었나? 전혀 아니다. 자본주의 선진국에게 식민지란 원자재의 공급처, 그리고 자국 생산품이 소비처였을 뿐이다. 식민지가 원자재를 공급하고 종주국의 생산품을 소비했던 것은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 무력에 의한 강제 때문이었다.

미국엔 2개의 국방부가 있다

'국방'이란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다. 즉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의 주권,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에는 국방부가 두 개 있다. 기존 국방부 외에 국토안보부가 있다. 국토안보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만들어졌다. 국토안보부야말로 '국방'이란 말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그러니까 미국은 2001년이 돼서야 자국 방어에 눈을 떴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는 뭘 하는 곳인가? 미국의 군사 역사학자 앤드류 바세비치는 기존 국방부는 '군사력투사부(Department of Military Projection)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즉 외국에 대해 미국의 군사력을 적용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서다. 즉 미국 국방부는 2001년까지는 자국 방어가 아니라 외국을 지배, 통제하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식민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제 질서를 추구한다고 천명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쟁 또는 비밀공작을 통해 미국에 저항하는 정권을 전복하고 미국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워 왔다. 이란, 과테말라, 칠레 등 50개국이 넘는다. 영토 정복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무력에 의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미국의 행태는 19세기 서구 식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미국의 행태를 신식민주의라고 부른다. 또는 제국주의적 반식민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군사력을 대폭 강화한 나름의 명분이 있기는 하다. 소련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실상은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복원을 위해서는 군사력 증강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핵위협, 재래식 전쟁, 그리고 비밀공작을 통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켜 왔다. 이를 군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최근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군사주의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전쟁, 또는 전쟁 준비가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그것이다. 냉전 이후 전쟁의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 무기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2013년 미국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CIA 직원이 아니었다. 부즈 알렌 해밀턴이라는 민간회사의 직원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업무 중 약 70%를 민간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2004년 이라크의 팔루자 전투에서 블랙워터라는 용병 기업이 악명을 떨친 적이 있다. 이라크 전투 요원의 3분의 2 가량이 이 같은 용병 기업의 민간요원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전쟁은 최고의 장사인 셈이다.

우리는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나

미국을 안다는 건 세계를 아는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미국이 세계를 움직여 왔기 때문이다. 세계를 알아야 한국을 알 수 있다.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알아야 세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20세기 초 한국이 식민지가 된 것도, 해방이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것도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의 좋은 면만 보려 한다. 어두운 면에는 눈을 감거나 아예 모른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미국은 천사, 북한은 악마다. 왜 유독 한국은 미국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는가?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한국은 미국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도, 북한의 침공으로부터 지켜준 나라도, 1950년대까지 먹여 살린 나라도 미국이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이 학문적, 사상적으로 미국에 예속됐다는 점이다. 사회학자 김종영(경희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 당 미국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2012-13년 미국의 해외 유학생은 중국이 23만 5597명으로 1위, 인도가 9만 6574명으로 2위, 한국이 7만 627명으로 3위다. 인구 대비 유학생 수는 한국이 중국의 7.8배, 인도의 17.5배에 이른다. (<지배 받는 지배자>, 돌베개, 2015년)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국 공무원 박사 학위자의 97%가 미국 학위자라는 통계도 있다. 같은 친미 국가인 일본만 해도 한국만큼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는다. 김종영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미국 유학생은 1만 9568명으로 7위다.

미국은 자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자처한다. 베트남과 전쟁을 벌일 때도,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도 '우리 의도는 좋았어(We meant well)'라고 말한다. 결과가 나빠서 그렇지, 원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수하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통해 이 같은 사상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에서 미국 비판은 거의 불가능하다. 비판을 해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남재희 전 장관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 한국은 '미국이라는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인 셈이다.

▲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훈련중인 미군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이 세계에서 대만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서구가 아닌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경험도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로막는다. 중남미는 물론이고 인도,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들은 모두 서구의 식민지 경험을 했다. 따라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대한 뼈아픈 경험을 온몸으로 느낀다. 반면 한국은 미국에 의해 일제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고마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론의 역할도 한몫했다. 제도 언론은 기본적으로 정치 권력, 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현상 유지에 봉사한다. 기득권에 포획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단위로 현실을 전하는 언론이, 몇 십 년만에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고, 주한미군 철수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만 줄곧 해댄다. 이러한 제도언론의 집중 포화가 국민으로 하여금 거대한 변화의 실상에 눈 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삼성의 결탁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 때, 한 언론사 간부가 삼성 미래전략실 부사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화제였다. '저희는 삼성의 눈으로 사회를 봅니다'라고 했다. 삼성 돈을 받다 보면 삼성의 눈으로 사회를 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은 아닐까?

미국과 함께 살아가려면

미국을 제대로 알자는 것은 미국을 무작정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을 타도하자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중국과 베트남이 미국을 타도하려 했던가. 아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에 참여해서 자신의 정당한 생존권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중국은 1972년, 베트남은 1995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고, 이후 미국이 만든 세계 질서 속에서 경제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북한이 미국과 벌이고 있는 비핵화 협상도 바로 중국, 베트남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함께 살아야 한다. 미국의 정당한 국익은 존중하되 부당한 요구는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사드 배치 등으로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역사의 긴 안목으로 보면 어떤 강대국도 영원할 수 없다. 19세기를 호령했던 대영제국도 100년 만에 쇠퇴했고 일본제국은 50년 만에 몰락했다. 미국도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막강한 군사력이 초래할 전쟁의 위협이 특히 우려스럽다. 미국의 군사주의가 초래할 혼란과 전쟁의 위협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전쟁국가 미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선도할 청사진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전쟁은 미국의 전쟁국가화, 그리고 동아시아 대립의 결정적 계기였다. 따라서 남북의 화해는 한반도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중대한 사업이다. 요컨대 세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반도가 관건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어진다. 첫 회는 미국 건국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은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했고, 멕시코전쟁으로 영토 확장을 마무리했으며, 스페인전쟁으로 아메리카를 넘어 세계로의 진출을 시작했다. 동아시아는 미국의 새로운 서부였다. 그리고 1차 대전을 통해 세계의 최대 채권국으로 등극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자신의 제국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먼로 독트린, 명백한 운명, 문호 개방, 민족 자결 등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2차 대전. 2차 대전으로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에 등극한다. 미국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을 두고 '좋은 전쟁', '굿 워(Good War)'라고 한다. 독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라는 완벽한 적을 무찔러 세계의 해방자가 되는 한편 전쟁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엔(UN)과 국제통화기금(IMF) 설립 등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구축한다.

세 번째는 한국전쟁.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영구 전쟁 국가'가 된다.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군사주의 프로젝트 NSC-68의 실행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우리 생각보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다. 베트남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보다 미국 역사에 더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한국전쟁이다.

네 번째는 1953년 이후 미국이 제3세계에 대해 벌인 반혁명 전쟁을 다룬다. 이란 비밀공작과 베트남전쟁, 쿠바 피그스만 침공이 그것이다. 1953~65년 미국의 군사력은 절대적 우위를 누린다. 군사력 2위인 소련에 비해 최대 40배에 달했다.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세계에 자국의 의지를 강요했다. 미국식 제도와 가치를 제3세계에 이식시키려 했다. 이게 군사주의다. 외교나 협상 대신 군사력을 앞세운다. 그러나 실패했다. 미국이 제대로 반성을 했더라면 군사주의를 포기할 소중한 기회였으나 미국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섯 번째, 1945~1975년 동아시아 30년 전쟁(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리고 미국의 주요 전장은 중동지역으로 옮겨간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과 소련의 아프간 침공이 계기였다. 아프가니스탄전쟁과 걸프전쟁이다. 특히 1979~1989년의 1차 아프간전쟁은 그 실상이 대중에게 가장 덜 알려진 전쟁이다. 미국의 전략이 미 지상군 병력을 동원한 재래식 전쟁에서 대리인을 앞세운 비밀전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프간전쟁은 겉으로는 소련의 침공에 대한 아프간의 저항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아랍의 무슬림 전사들을 동원해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이었다. 30억 달러의 자금이 투입된 미 중앙정보국(CIA) 역사상 최대의 비밀공작이었다. 미국과 사우디가 자금을, 미국이 무기를 공급하고 파키스탄 정보국(ISI)이 무슬림 전사의 훈련과 작전을 담당했다.

당시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유도한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각하, 드디어 소련에게 그들의 베트남을 선사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미국이 베트남의 수렁에서 고전한 것처럼 소련을 아프간이란 수렁에 빠뜨렸다는 얘기다.

아프간전쟁은 소련 멸망의 주요 원인이 된다. 당시 소련은 도대체 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 전쟁을 '유령의 전쟁(Ghost War)'라고 불렀다. 아프간전쟁은 오늘날 중동지역 혼란의 씨앗이 된다.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과격파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 전쟁을 통해 양성됐기 때문이다. 그 숫자는 대략 12만을 헤아린다.

이들은 냉전이 종식된 후 총부리를 미국으로 돌린다. 알 카에다, IS가 그들이다. 당시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는 미국의 아프간 공작에 대해 "당신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 있다"고 일갈했다.

1991년 걸프전쟁은 중동지역의 석유통제권을 위한 전쟁이었다. 또한 베트남전쟁 이후 지상군 동원을 꺼렸던 이른바 '베트남 증후군(Vietnam Syndrome)'을 극복한 전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지 못했던 네오콘은 이후 줄곧 이라크의 정권 교체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여섯 번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 대중동전쟁을 다룬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뿐만 아니라 이란 이슬람정권까지 전복시켜 북아프리카에서 아프간, 파키스탄에 이르는 대중동지역을 미국의 통제권 아래 두고자 했다. 세계 에너지 자원의 보고를 통제함으로써 서유럽,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도 지배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2006년 가을이 되면 실패임이 분명해지고 네오콘은 퇴장한다.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2차 대전에 뛰어들어 세계 패권을 장악했다. 반면 9.11테러를 빌미로 시작한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쇠퇴를 재촉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미국의 쇠퇴에 대해 미국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자신의 금을 탕진했고,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평가한다. 헤게모니를 잃어버린 것이다.

일곱 번째는 2차 대전 후 미국의 군사패권과 경제패권의 흐름 및 상관관계를 살펴보고 마지막에는 북핵과 한반도,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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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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