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보지 않은 민족도 있단 말인가? 내가 다시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그 조선이라는 나라를 찾아가보리라."
1818년 한반도와 일본 류우뀨우 열도의 해상탐험을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영국 선장 바실 홀은 남대서양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 중이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방문했다. 홀의 아버지는 나폴레옹과 파리 군사학교 동창. 홀은 그가 본 조선에 대해 "역사는 유구한 나라인데 한 번도 남을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한 나폴레옹의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자그마치 2,736km나 떨어져 있어 가볼 수 없는 아쉬움만 남겼다.
세계 문명 교류학의 대가인 정수일 선생이 이번엔 아프리카로 갔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거쳐 마침내 인류 문명의 고향 아프리카에 다다른 것이다. 선생의 세계일주는 실크로드가 유라시아 구대륙만을 포괄한다는 진부한 통론을 깨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 선생이 세계문명기행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문명은 흐르기 마련"이라는 것. 그리하여 '사해시일(四海是一),' 즉 '세계는 하나'라는 것이다.
선생이 확인한 것은 첫째, 인류가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는 혈통적 동조. 둘째, 세계 역사가 공통적 발전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역사의 통칙. 셋째, 문명 간에 부단한 소통과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는 문명의 통섭. 넷째, 숭고한 보편가치를 다 같이 누리려 하고 있다는 보편가치의 공유다.
선생이 중국인으로 살던 시절인 1955년 12월, 저우언라이 총리는 선생을 포함한 유학생 7인, 교수 1인 등을 불러 2시간여의 환담과 따뜻한 격려와 함께 이들을 이집트 카이로로 떠나보냈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선생의 삶에서 세계를 향해 눈을 뜨게 한 개안지(開眼地)가 됐다. 착지는 유학의 첫발을 들여놓은 이집트 카이로의 대학. 책은 바로 그곳, 오래전 청운의 뜻을 품고 찾은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튀니지 바르도 박물관에서는 몇 점의 돌멘(지석묘)을 발견하고 우리나라 고인돌 문화와 연결 짓는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재래시장의 쌀가게를 찾아 '아바칼리키'라는 단립형 재래쌀을 구입하기도 한다. 다녀와서는 2014년 카리브해 답사 때 자메이카에서 구한 '삼보쌀'과 함께 농업사 연구에 일조가 될까 하여 우리나라 볍씨박물관에 기증했다. 세계 벼 문화대의 형성에 관한 연구는 농경문화교류사 연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학자적 소신의 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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