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가 추진해온 당내 인적 쇄신 작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 친박계, 잔류파의 지원을 받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데 따라 비대위 지도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데 이어,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이 '조강특위 안(案)보다 쇄신 범위를 축소 조정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다.
김병준 위원장은 13일 오후 '평화 이니셔티브' 구상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인적 쇄신과 관련해 "2차, 3차, 4차 나눠서 쇄신을 한다는 입장에 전혀 변함이 없다. 비대위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의지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다만 조강특위 외부 위원들 주장이 강하지 않느냐. 좀 폭넓은 작업을 할 수 있다"며 "당 입장은 정무적인 것 등 여러 고려할 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당 입장과 조강특위 입장이 어긋날 수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그런 점은 제가 협의를 하겠다"며 "조강특위 안이 오면, 그것이 부족하다 싶으면 보태고, 과하다 싶으면 조강특위 위원들과 얘기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적 쇄신의 양(量), 즉 쇄신 대상자들의 숫자가 10명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양은 나도 아직 모른다. (10여 명이라는) 그것은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이라며 "양은 (조강특위 안을) 받아봐야 하는데, 아마 양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인적쇄신을 일임한 조강특위에서 쇄신 대상 리스트를 폭넓게 올리더라도 정무적 고려를 거쳐 대상을 줄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발언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22일 비대위 회의석상에서는 "조강특위가 쳐놓은 그물망을 빠져나왔지만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며 "제한적이겠지만 비대위원장 권한을 행사해 별도의 판단을 내리겠다"고 말했었다. "다음 지도부가 복귀를 시키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돌아오든 신경쓰지 않겠다"고도 했었다. 이는 조강특위가 마련한 인적 쇄신안보다 쇄신 규모를 더 늘릴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에 '기존에는 조강특위 안보다 최종 단계에서 더 늘어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김 위원장은 "조강특위가 얼마만큼 일하는지를 내가 봐야 한다. 만약 조강특위에서, 내가 (쇄신 대상으로) 생각했는데 빠져나갔다, 이런 경우에는 보탤 수 있다"며 기존 입장과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이번 당협위원장 교체는 1차(쇄신)이고, 2차는 전당대회 때의 리더십 교체, 3차는 2020년 총선 공천, 그 다음에 국민이 선택해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4차"라며 "이후로도 계속 혁신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설명한 계획대로라고 해도, 현 비대위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이 인적 쇄신 후퇴로 해석되는 이유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전당대회 전까지 사실상 '선출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구심이라는 점과 맞물려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당선 다음날인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112명의 의석도 많지 않은 의석"이라며 "우리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크게 해하는 쪽의 쇄신에 대해서는 좀 우려한다는 입장"이라고 인적 쇄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첫 비대위 회의 참석 후에도 기자들과 만나 "쇄신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 시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의원 임기가 남아 있는데 인적 쇄신이 지나치면 대여 투쟁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하기도 했다. "군사 한 명 한 명이 중요하다"거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이라고도 했다.
이날 오전 비대위 회의 공개 발언에서도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원내대표 선출 과정은 탈(脫)계파주의의 승리"라며 "최근 일부 언론에 마치 선거가 계파주의에 의해 치러진 것처럼 보도가 되고 있는데 사실도 아니고 옳지 않은 시각이다. 일부에서는 원내대표나 정책위의장에게 '친박'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도 있는데, 당으로서도 국민들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제가 비대위원장 취임할 때 '계파주의와 싸우다 죽겠다'고 얘기했고 (이에) 조금의 변화도 없다"며 "제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는 한 계파주의와 끝없이 싸우겠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 당선 후 잔류파 일각에서 "복당파들이 비대위원장도 모셔오고 그 분들과 교감을 통해 당협위원장 교체를 추진해 왔다"거나 "비대위 체제는 동력을 잃었다. 빨리 짐 싸고 집에 갈 생각해야 한다"는 공격이 나오는 와중이라 주목을 끌었다. (☞관련 기사 : 나경원 승리에 친박 '기세등등'…"김병준, 집에 가라")
반면 나 원내대표는 첫 비대위 공개발언에서 "비대위원장이 당에 오면서 계파 깨뜨리기가 시작됐다면 계파 종식의 완성이 이번 선거가 아닌가 한다"며 "제가 얻은 표는 68표다. 당 내에 친박 출신이 68명이나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나 나 원내대표나 발언의 취지는 '계파주의 종식'으로 같았으나, 김 위원장의 말에서는 '원내대표를 등에 업고 친박 등 특정 계파 세력이 발호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성이 묻어난 반면 나 원내대표의 발언에서는 자신이 당내 주류·다수파 위치를 점했다는 자신감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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