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의원은 11일 오후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투표 참여 의원 103 명 가운데 68 명의 지지를 받아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제로 치러지는 정책위원회 의장에는 정용기 의원(재선, 대전 대덕)이 당선됐다.
나 의원은 원래 2007년 이명박 대선 경선캠프 대변인을 지내는 등 '원조 비박'으로 꼽혔으나 2016년 탄핵 사태 당시 탈당하지 않고 구 새누리당에 잔류한 '잔류파'다. 현 한국당 지도부인 '김병준 비대위' 체제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김무성 전 대표 등 사실상 복당파가 뒷받침해 왔다.
당선 뒤 나 의원은 "중책을 맡겨주셔서 감사하지만 해야할 일이 막중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의원들께서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선택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지긋지긋한 계파 이야기는 없어져야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폭주가 무섭다. 대한민국의 헌법가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 할 일이 많다. 하나로 뭉치자"고 독려했다.
표심 분석 결과는?
사실상 1대1의 계파 구도로 치러진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친박의 복권(復權)'이다. 당초 한국당 현역의원 면면을 보면, 2016년 총선 당시 '옥새 파동'을 겪는 등 범(汎)친박계가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지만 탄핵 사태 이후에는 친박의 구심력은 사라진 반면 비박계·복당파가 더 강하게 결집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실제로 1년 전 치러진 직전 원내대표 선거 결과를 보면, 당시 복당파의 지지를 받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1차 투표에서 과반(55표) 득표한 반면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35표에 그쳤다. 1년여 동안 계속된 이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긴 것.
일각에서는 70여 명에 달하는 당내 초·재선 의원(초선 42명, 재선 32명)들의 표심이 승패를 가를 것으로 예상됐던 가운데, 초재선 의원 모임 '통합·전진'을 이끈 정용기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내세운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역별로 봐도 정 의원의 기여가 엿보인다. 나 의원과 김 의원(경기 안성) 모두 수도권이 지역구인 만큼 총 30명인 한국당 수도권 의원들의 표심은 갈린 것으로 보이고, 친박이 대부분인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20명)은 나 의원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가장 의원이 많은 지역(26명)은 부산·울산·경남(PK)인데, PK에는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이 있지만 친박 중진 유기준·김정훈·유재중 의원 등도 있어 역시 표심이 갈릴 것으로 예측됐다. 결국 12명에 달하는 충청권 의원들의 표심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정용기 의원의 지역구가 바로 충청(대전 대덕)이었다.
승패에 영향 미친 '이슈'는?
다만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통상의 계파별·지역별 친소관계 외에 이른바 '보수 통합론'이나 '친박 신당설' 등 정계개편 이슈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 많다.
두 후보 모두 '통합'을 강조했지만 방점은 달랐다. 나 의원은 "조원진부터 안철수까지"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이른바 '태극기 부대'까지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반면, 김 의원은 "우선은 바른미래당"이라는 입장이었다.
나 의원의 승리는 최근 당 내 상황과 맞물려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잔류파·친박계의 결집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먼저 현재의 '김병준 비대위'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신주류에 대한 당 내의 불만이나 견제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직전 원내대표인 김성태 의원도 김학용 후보와 마찬가지로 바른정당 복당파 출신이고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사이여서, 같은 계파에서 2번 연달아 원내대표를 배출하는 것에 대해 균형을 잡으려는 심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잔류파에서는 '복당파가 2회 연속 원내대표에 당선되면 안 된다'거나 '김 의원이 당선될 경우 친박 신당이 생겨 당이 쪼개질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당 조강특위가 10여 명의 현역의원을 당협위원장 선정에서 배제시킬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복당파의 당 장악과 친박 인적 청산이 이뤄질 경우 친박계 의원 일부가 탈당해 TK를 기반으로 한 신당을 만들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잔류파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지난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 이미 그(친박) 신당의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언급해 친박 신당설에 불을 지폈다. 뚜렷한 당권·대권 주자가 없는 것이 친박 그룹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가운데,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역 방문 등의 행보를 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점도 주목됐다.
다만 나 의원의 승리로 인해 친박·잔류 그룹이 원내에 교두보를 확보하면서 '친박 신당설'은 잦아들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이른바 '개혁보수' 그룹과의 통합은 더 멀어졌다는 평이 나온다. 개혁보수 그룹을 대표하는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달 28일 "한국당은 아직도 과거를 갖고 싸우고 있으니 보수 재건을 어떻게 하겠느냐"며 구 친박계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바 있다.
일격을 당한 비박계·복당파는 '2차전'이 될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의원은 차기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비박계 당권주자로는 최근 당에 돌아온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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