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국 '유령 회사', 아랍은행에 위탁돼 특별 관리 받아"

<뉴스타파> "평양을 주소지로 둔 페이퍼 컴퍼니도 확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의 페이퍼 컴퍼니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위탁돼 특별 관리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전재국 씨는 '전두환 비자금' 수사가 진행됐던 지난 2004년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라는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들통이 났다.

6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조세 피난처(회피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뉴스타파>(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에 따르면 전재국 씨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본인의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계좌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은행에 자신의 페이퍼 컴퍼니(블루 아도니스) 회계 관리와 행정 업무 등을 위탁해 특별 서비스를 받아 왔다.

2004년 8월 13일 블루아도니스 이사회 결의서 내부 자료에 따르면 "회계 장부, 회의록, 주주 원부, 등기이사 원부 등 페이퍼 컴퍼니 관련 내부 자료를 모두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특히 이 자료에서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을 가리켜 C/O(Care of의 약자)라는 영어 약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용어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이 전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의 각종 서류를 보관할 뿐 아니라 회계, 행정 등 전반적인 업무까지 대행해서 관리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타파>는 "역외 금융 전문가들은 은행이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페이퍼 컴퍼니 관련 서류 자체를 은행에 위탁 보관한다는 것은 회사 관련 서류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더 은밀하게 페이퍼 컴퍼니와 비밀 계좌를 운영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고 지적한다"고 주장했다.

아랍은행에 한국인 임원 2명이 근무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전재국 씨 페이퍼 컴퍼니 관련 보도가 나가자 "이들 중 한 명이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고 <뉴스타파>는 전했다.

전재국 씨가 설립 대행 회사인 PTN에 블루아도니스 등록 비용으로 850달러를 지급한 기록도 발견됐다. 약 6개월 후인 2005년 2월에도 PTN 명의의 은행 계좌에 블루아도니스 이름으로 미화 1210달러가 입금된 기록도 나왔다. 850달러로 등록한 회사를 통해 전재국 씨가 얼마나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했는지는 현재 알 수 없다.

다만 전 씨가 추징금 1672억 원을 내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라는 점, 200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차남 전재용 씨를 통해 비자금을 관리하다 들통이 났던 점 등에 비춰봤을 때, 전재국 씨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이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만큼, 전재국 씨가 이 회사를 왜 세웠고 이를 통해 어떤 자금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등 자금 출처와 성격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검에 꾸려진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추적 전담팀은 전재국 씨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과 관련된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이 전 씨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이 사실임을 확인할 경우, 전 씨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북한 평양을 주소지로 둔 페이퍼 컴퍼니도 확인"

<뉴스타파>는 지난 3차 발표에서 다뤘던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그의 배우자인 연극인 윤석화 씨 관련 추가 내용도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해외에 도피 중인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사실상 국내에 진출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석기 씨가 2001년에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멀티럭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국내에서 외국인 기업으로 등록해 사업을 하고 있는 게임 관련 업체 알엔티에스미디어(RNTS MEDIA)에 대한 지배 구조를 완성해 놓았다는 것이다.

알엔티에스미디어의 대주주는 시스크(SYSK)인데 이 회사의 유일한 주주는 멀티럭인베스트먼트다. 멀티럭인베스트먼트의 실질 소유주 겸 등기이사는 윤석화 씨와 10세 된 아들 김 모 군, 그리고 김 씨의 대리인으로 추정되는 테레사 창으로 기록돼 있다. 시스크는 김석기 씨가 홍콩에 설립한 법인 킴바코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이기도 하다.

<뉴스타파>는 "김석기 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페이퍼 컴퍼니 2개를 거치는 방식으로 사실상 국내 업체를 운영하면서 룩셈부르크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김 씨가 사실상 운영하는 RNTS MEDIA는 국내의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와 35억 원 규모의 앱스토어 구축 계약을 체결한 뒤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 2013년 3월 고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뉴스타파>는 "김석기 씨는 2012년 런던의 고급 저택에 거주했으며 주간업무보고회의를 주재하면서 RNTS MEDIA를 사실상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북한 평양을 등기이사 주소지로 둔 페이퍼 컴퍼니도 포착됐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데 따르면 북한 평양 모란봉 지구를 주소로 둔 문광남(서류상 영문명 Mun Kwang Nam)은 2004년 11월 19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 래리바더솔루션의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뉴스타파>는 "래리바더솔루션 관련 서류 검토 결과 이 회사는 최소한 2009년 10월까지는 존속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페이퍼 컴퍼니 3곳도 추가로 발견됐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천리마(2000년 설립), 조선(2001년 설립), 고려텔레콤(2001년 설립) 등 세 곳의 회사 등기이사에는 임종주(서류상 영문명:Lim Jong Ju)와 'WONG Yuk Kwan'이라는 이름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뉴스타파>는 "(이들은) 북한의 이동통신 사업에 참여한 사업가들로 추정된다. 임종주는 북한 국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페이퍼 컴퍼니 이름이 북한식이고, 이사진들이 북한 관련 사업에 참여한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이 페이퍼 컴퍼니들이 북한과 연계됐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