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는 3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조세 피난처(회피처) 프로젝트' 취재 결과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연 매출 400억 원 이상 규모의 도서 전문 회사 시공사를 비롯해 수백 억 원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전재국 씨는 2004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코퍼레이션(이하 블루아도니스)이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씨는 등기이사, 주주로 명단을 올렸다. 자본금 5만 달러지만 발행 주식은 1달러 주식 한 주가 전부다.
▲ <뉴스타파>가 공개한 PTN 내부 자료 중 전재국 씨가 설립한 유령 회사 관련 자료. |
전재국, 유령 회사 명의로 비밀 계좌까지…전두환의 '판도라의 상자'?
당초 <뉴스타파>는 한국인 명단 총 245명 가운데 한국을 주소지로 기록해두지 않은 86명의 명단을 확보했었다. 이 가운데 영문으로 Chun Jae Kook(전재국)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전재국이라는 이름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뉴스타파>는 조세 회피처 페이퍼 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의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정밀 분석했다.
2004년 8월 13일 블루아도니스 이사회 결의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전재국 씨는 단독 등기이사로 선임됐고, 자신의 주소로 서초동 1628-1번지를 기재했다. 이 주소지는 시공사 본사 주소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블루아도니스 주식 청약서와 이사 동의서, 주식 인증서에서 전재국 씨의 자필 서명이 발견됐다. 현재까지 ICIJ에 입수된 PTN 문건이 지난 2010년까지 자료임을 감안할 경우, 이 유령 회사는 최소한 2010년까지 유효하게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재국 씨는 블루아도니스를 설립한 후 이 회사 이름으로 법인 계좌를 만들었다. 이 법인 계좌를 만든 곳은 아랍은행 싱가포르지점이다. 아랍은행은 일반인을 상대로 소매 금융을 하지 않는 곳이다. 또한 이 은행에서 한국인 두 명이 간부로 일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2차 명단 공개 때 포함됐던 SK 전 임원 조민호 씨도 이 은행을 통해 비밀 계좌를 관리한 적이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전재국 씨가 페이퍼 컴퍼니 설립 한 달 뒤인 2004년 8월 말, 싱가포르 현지 변호사를 통해 블루아도니스 관련 공증 서류를 발급받았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이와 관련해 전재국 씨의 싱가포르 현지 법률 회사와 페이퍼 컴퍼니 등록 대행업체인 PTN 본사 및 버진아일랜드 지사 직원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보면 특이한 정황이 포착된다. 이메일에는 당시 전 씨가 계좌 개설과 관련된 공증 서류를 분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고객인 전재국 씨의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이 모두 잠겨 있다. 이 때문에 전재국 씨가 몹시 화가 나 있다"라는 언급도 들어 있다.
<뉴스타파>는 "이메일 내용을 정리해보면 당시 전 씨는 어떤 계좌에 예치된 돈을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 회사 명의의 아랍은행 계좌로 급하게 이체하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전재국 씨를 직접 만나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전 씨는 현재 <뉴스타파>와 접촉을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 전두환 장남은 '비밀 계좌' 이용 못해 "몹시 화가 난" 상태였을까?
전재국 씨가 이 회사를 설립한 시기는 2004년 7월 8일이다. 전두환 비자금 사건이 터져 검찰이 수사에 한창 열을 올리던 때다. 이 때문에 비자금 회피처를 만들기 위해 장남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이 페이퍼 컴퍼니의 '비밀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전재용 씨는 국민채권 형태로 관리해 온 자금 73억5000만 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확인돼 2004년 2월 구속됐었다. 당시 검찰은 이 비자금이 불법 증여됐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문제의 73억5000만 원의 채권을 추징하지 않은 사실이 최근 뒤늦게 드러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불법 자금이 속속 드러나던 시기에 왜 하필 전재국 씨가 2004년 7월 '유령 회사'를 설립했고, 공증 서류 분실에 "몹시 화가 날" 정도로 급하게 '비밀 계좌'를 이용하려 했는지 등의 정황은 그래서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전두환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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