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홈플러스, 앞에선 웃고 뒤에선 가맹점 일방 통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홈플러스, 앞에선 웃고 뒤에선 가맹점 일방 통보"

[현장] 밤샘농성에 단식까지…중소상인의 힘겨운 겨울나기

28일 저녁 인천 부평구 갈산동, 10명의 상인이 밤을 지새우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집결지는 부평공고 맞은 편 상가 1층에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그들은 지난 23일부터 이곳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 반대 농성을 이어왔다.

평소에는 두세 명이 조를 이뤄 교대로 자리를 지켰지만 이날 10명이 함께 모인 데는 이유가 있다. 홈플러스가 새롭게 들고나온 SSM 가맹점 1호를 29일 갈산에서 개장한다고 통보했기 때문. 그동안의 '전적'을 볼 때 새벽에라도 간판을 가린 천을 걷어내고 '도둑 개장'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하지만 29일 아침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홈플러스 측은 "상인들의 반발이 아직 거세 29일 개장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전국의 자사 SSM 중 어느 지점을 가맹점으로 할지 모색하는 단계이고 갈산점 역시 가맹점주가 확정된 게 아니"라고도 했다. 상인들은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지난 22일 홈플러스와 이들이 대면한 이후 1주일 동안 불신의 골이 단단히 패인 탓이다.

▲ 인천 갈산 SSM 입점저지 대책위원회 소속 상인들은 지난 23일부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서 밤샘 농성을 시작했다. ⓒ프레시안

'상생'하자고 모인 자리에서 가맹 사업 추진 통보

인천 갈산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7월이다. 이미 5월경부터 내부공사가 진행된 탓에 SSM이 들어올 기미를 눈치챈 인근 상인들은 곧바로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7월 28일 홈플러스에 일시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계속되는 상인들의 항의 속에 홈플러스 측은 8월 20일경 진열된 제품을 모두 수거한 채 문을 닫았다.

이후 인천시의 중재로 10월부터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쳐 자율조정 협의회가 열렸다. 하지만 서로의 요구조건을 확인하기도 전에 결렬 위기를 맞았다. 인천시는 갈산 이외에도 홈플러스 6곳과 킴스클럽 1곳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인 상태다. 홈플러스 측이 부개1동에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부개2호점의 입점을 반대하는 상인들을 경찰에 고발하는 등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중소상인 측 협의 위원들이 이들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하면서 구체적인 안건이 등장하기 어려웠다.

▲ 인천 갈산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내부 전경. 사업 일시정지 조치 이후 홈플러스는 진열 제품을 모두 수거했지만 최근 반입을 다시 시도했다. ⓒ프레시안
3차 협의회를 앞두고 인천시의 중재 하에 홈플러스와 중소상인들이 직접 대면한 게 지난 22일이었다. 서로 상생하자는 취지에서 각자의 의견을 솔직하게 들어보자며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정작 상인들이 들은 말은 갈산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가맹점으로 전환한다는 통보였다. 홈플러스 측은 그 자리에서 가맹점주로 선정된 이를 소개하기도 했다. 자리를 주선한 인천시의 담당 공무원도 사전에 알지 못한 이야기였다.

상인들은 대면 다음날부터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가맹 사업은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홈플러스 측이 언제라도 개장을 시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매장 안에서 계산대를 설치하던 직원들을 발견했다. "일시정지 취소 신청 절차를 밟고 공사를 진행하라"는 상인들과 "가맹점이기 때문에 절차가 필요 없다"는 직원들 사이에 언쟁이 번졌고 공사는 중단됐다.

다음날인 성탄절에는 홈플러스 측에서 두 차례에 걸쳐 물품 반입을 시도했다. 첫 시도는 오전 2시에 시작됐다. 한밤중에 비상 연락을 받고 깨어난 상인들은 매장 앞으로 달려가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 12시간 후 홈플러스가 가맹점주라고 소개한 남자가 나타나 직원들과 함께 상인들이 걸어놓은 현수막 끈을 자르고 2차 반입을 시도했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이 출동해 말린 후에야 사태가 진정됐다. 이틀 후인 27일부터 상인들은 매장 앞에서 릴레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 릴레이 단신 3일째를 맞은 인천 갈산 대책위 상인들은 홈플러스가 진정성 있는 자세로 자율협의에 나서길 촉구했다. ⓒ프레시안

"일방적인 가맹점 통보에 담당 공무원도 '황당'"

▲ 매장 앞 유리창에 SSM 가맹 사업을 비판하는 구호가 적힌 골판지가 붙어 있다. ⓒ프레시안
29일 찾은 인천 갈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간판을 흰 천으로 가려놓았다. 출입문과 유리창은 내부를 가진 검은 비닐과 입점 반대 구호를 적어 넣은 골판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매장 주위를 아파트 9단지가 둘러싸고 있고, 이곳에서 양 방향으로 500~600미터 떨어진 이마트와 롯데마트 사이에 위치한 말 그대로 '목 좋은' 자리다. 입점 저지 운동을 벌이는 중소상인들 역시 아파트 단지 입구마다 자리를 잡고 슈퍼 등의 소매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다.

대동아파트 2단지 입구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홍기욱(47) 씨는 단식 농성의 3번째 주자다. 홍 씨는 가게를 부인에게 맡기고 아침부터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앞에 설치한 비닐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 설치한 가스난로에 얹은 캔 커피가 따듯하게 데워지고 있지만 단식 중인 홍 씨의 몫은 없다.

인천 갈산 SSM 입점저지 대책위원회의 총무이기도 한 홍 씨는 홈플러스 측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앞에선 웃는 낯으로 상생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자며 불러놓고선 점주까지 데려와 가맹점으로 운영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가 하면, "일시정지 조치로 풀리지 않았는데 '바지사장'을 앞세워 개점을 강행"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홍 씨는 하루 전인 28일 대전에 있는 중소기업청을 찾아가 SSM 가맹점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중소상인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법률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천시 역시 일시정지 조치를 풀어달라는 홈플러스의 요청을 받고 중기청에 질의서를 보낸 상태다.

홍 씨는 "일반 편의점도 가맹점주가 60~70%의 비용을 부담하는 게 일반적인데 홈플러스는 총 사업자금의 20%만 부담해도 가맹점주로 인정하고 있다"며 "이런 가맹점주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사업조정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성토했다.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김응호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부평구위원장이 거들었다. 김 위원장은 "판매품목 제한 등의 협의사항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조정을 거쳐 SSM의 갑작스러운 진입에 대한 유예기간을 두자는 것"이라며 "홈플러스의 일방적인 가맹 사업 통보에 인천시 담당 공무원조차 '황당하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홍 씨를 비롯한 대책위가 홈플러스에 바라는 요구는 명확하다. "가맹점이라는 '꼼수'를 철회하고 자율조정 협의에 참여해 진정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는 것"이다. 홈플러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상인들은 SSM 앞 비닐 천막에서 새해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가스난로에 데운 캔 커피로 손을 녹이는 기자에게 한 상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저들은 가장 더울 때 시작해서 가장 추울 때까지 힘들게 하네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