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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법'이 살아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국가보안법 70년, 다른 세상을 꿈꿀 자유를 잃어버린 시간

올해로 국가보안법 70년이 된다. 제정된 이래 내내 개정‧폐지 논의가 제기됐던 국가보안법이지만, 70년을 앞둔 지금 정부와 국회 어디도 말이 없고 조용하기만 하다. 남북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지만, 북과 관련되기만 하면 어김없이 '국가보안법'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에 위반이냐 아니냐는 논란만 있을 뿐,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2004년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자"던 노무현 정권 시절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권은 침묵만 지킬 뿐이다. 논쟁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그 자체가 국가보안법이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한국사회에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

1948년 12월 1일 일제 치하의 치안유지법을 모델로 삼으며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치안유지법은 일본이 천황제를 부정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그 틀을 고스란히 가져온 국가보안법으로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처벌하는 흐름을 반공으로 전환시켰다. "좌익세력의 구체적 폭동이나 범행 처벌이 아닌 존재 그 자체를 말살하기 위해서"라는 당시 검사가 쓴 국가보안법 해설은 국가보안법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정될 때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왔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공론장이 열렸지만, 당시 노태우 정권 하에서 여당은 단독으로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의결했고, 김영삼 정권은 국가보안법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권, 2004년 노무현 정권 하에서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가 제기되지만 폐지는커녕 가장 문제적인 조항으로 꼽혀온 제7조(찬양‧고무등) 개정도 하지 못했다. 흔들림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국가보안법은 힘을 불려왔다. 부패한 정권을 탄핵하며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지만, 정작 민주주의의 요구와 언제나 맞닿았던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다.

국가보안법과 종북 광풍

지난 10년, 국가보안법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신공안정국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며 종북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다시 늘어났고, 그 수가 가장 많았던 2013년에는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터지며 정당 강제 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정권에 비판적인 모든 목소리에는 '종북'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매년 국가보안법 사건이 쏟아졌다. 집회에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선전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다른 시선으로 역사를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부당함에 맞설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배움에 도움이 될 자료를 모아 전자책방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전쟁 선동에 반대하며 평화와 통일을 외쳤다는 이유로, 북한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북을 비꼬고자 북한의 트위터 계정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처벌됐다. 공안기구의 기획 속에 만들어진 '간첩'도 등장했다.

종북 광풍은 인터넷 상에서 더 빠르고 손쉽게 영향을 미쳤다. 이미 언론에서 다룬 북의 신년사설 등 특별할 것 없는 게시물들이 단지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온문건'으로 지목되고 수만 건의 게시물들이 통으로 삭제처리됐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이같은 부당한 행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오랫동안 운영되어온 홈페이지가 '이적단체'의 홈페이지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폐쇄되기도 했다.

인권을 무너뜨리는 국가보안법

이후 조작사건이었다는 게 밝혀졌어도 '간첩'이라는 낙인은 선명하게 남았다. 국가보안법 위반이 덧씌워진 순간부터 수년간을 법정에서,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을 무너뜨린 국가보안법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안기구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보안법 사건들 다수가 법원에서 무죄로 드러났지만, 공안기구는 건재했다. 지난 10년간 국가보안법 위반 검거로 공안기구에 지급된 국가보안유공자 상금은 26억3천여 만 원에 이른다. 무고한 피해가 드러나도 공안기구로서는 손해 볼 게 없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만들어질 때 공안기구의 존재 이유도 다시금 강조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공안기구의 '사냥감'은 더 약한 고리인 탈북민으로 옮겨지는 양상을 보인다.

문재인 정권이 공안기구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칼날이 남아있는 이상 개혁은 요원하다. 국가보안법의 존재 자체가 인권침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의 침묵은 국가보안법의 존속에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며 인권침해를 방기하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된다

국가보안법이 마구 적용되는 게 문제지만, 보수정치세력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 "매년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40명 이상 검거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한 감시와 단속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공안기구를 독려한다. 보수정치세력과 공안기구에게 국가보안법은 존립의 근거이며 스스로를 이 체제의 '수호자'로 위치 지을 수 있는 뿌리다.

지난 달 북한을 방문하며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국가보안법 등 법률적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여당 대표의 말이 논란이 됐다. 보수정치세력의 공격에 "국가보안법의 폐지나 개정을 말한 게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해명이라고 내놓고, 정책과 제도에 대해 입장을 갖는 것이 제 역할인 국회의원들 그 누구도 국가보안법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한심한 상황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떠나 북한과 관련되기만 하면 국가보안법이 들먹여진다.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이 '내전의 제도화'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보안법으로 우리 안에서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70년 전 서로가 서로에게 좌익이냐 아니냐 끊임없이 묻고 증명하게 했던 국가보안법은 종북이 낙인이 된 지금, 우리 스스로 끊임없는 자기 검열을 하게 한다. 종북이 아님을, 불온한 게 아님을, 위험하지 않음을 강조하고 증명하는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이 체제에 길들여지고 포획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상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국제사회가 요구해왔고,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에 오랜 적폐인 국가보안법은 회피의 대상이다. 100대 국정과제에도 국가보안법을 누락했다. 올초 정부는 "분단국가로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 하에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라며 유엔 인권이사회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남북 관계가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존속되는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과의 관계 진전은 불가능하다.

국가보안법 70년은 다른 세상을 꿈꿀 자유를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었을까. 올해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 권리를 약속했던 세계인권선언 70년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조건에서 인권은 늘 제한될 수밖에 없다. 국가권력의 '안보'와 '안전'을 위해 탄압당하고 희생된 수많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면서 국가보안법 70년, 침묵하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자. 국가보안법 폐지가 곧 민주주의이고 인권이다. 다른 세상을 꿈꿀 자유를 되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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