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당겨 받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업무 보고야 언제 받든 자기들 판단 문제다. 다만 예산이 백업돼야 하는 사업의 경우라면 그것은 보고하나 마나다. 아무 의미 없다. 예산이 통과 된다는 전제 하에서만 의미있는 것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 얘기하기보다 다른 여러 가지를 추진하는 방식을 보면 국회를 굉장히 우습게 여긴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행정부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국회가 오죽 시원찮았으면 그러겠는가? 국회부터 반성해야 한다."
시작부터 거침없이 '쓴소리'다. 당청관계와 국회 역할 실종에 대한 고민이 첫 답변에서부터 드러났다.
▲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 ⓒ프레시안 최형락 |
"행정부 하는 일 따라가는 것은 벗어날 때 됐다"
내년도 사업 계획인 '새해업무보고'는 예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새해예산은 보통 5월에 준비하고, 8월에 부처 간 협의를 시작해 10월에 국회에 제출된다. 국회에서 증액, 삭감 논의를 거쳐 통과되면 이번에는 확정된 예산에 입각해 5월에 제출했던 애초의 내년도 계획을 수정보완 한다. 이것이 국정운영을 하는 통상적 과정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예산안의 국회 심의도 끝나기 전에 업무보고를 당겨서 받고 있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게 아닌 건 분명하다. 문제는 각 부처의 보고가 구두선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업무보고는 정부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예산통과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문제될 수 있다."
"밀어붙이는 정부, 견제 못하는 국회 둘 다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그런데 나 혼자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당청이 진지하게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정부가 하겠다는 것을 법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으니까…."
"예산에 대한 이런 접근방식이야말로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국정운영에 대한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그렇다. 옛날 같으면 국민들도 정부가 발표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국회에서 백업 안 해주면 안 된다는 것은 국민들도 알고 있다. 이것이 자꾸 되풀이되면 행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예결위 문제가 신문에 크게 보도됐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부가 추진하겠다던 사업에) 예산도 없더라'고 한다든지, 법령이 백업이 안 된다든지 하는 문제가 공론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예산과 법률에서 국회의 지원이 없으면 국정운영이 정상적으로 안된다. 그러면 편법이 동원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꾸 불신이 생기게 되고…
"이럴 경우 예결위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나?"
▲ "청와대와 정부가 계속 고집을 피우면 여당 지도부가 결심을 해야 한다." ⓒ프레시안 최형락 |
"대통령이 영산강 낙동강 기공식에 참석해서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시작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지도부의 재량권을 기대할 수 있나?"
"옛날 같으면 기대를 못한다. 그러나 국회내지는 정당이 제 역할을 하려면 행정부가 하는 일을 그냥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 미국은 그렇게 한다."
"농수산위 이낙연 위원장이 4대강 포함된 예산안을 처리해서 민주당 안에서 아주 곤란한 처지가 된 것 같은데?"
"이낙연 위원장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농수산위는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예산편성을 해야 하겠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양당의 강경한 태도를 조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낙연 위원장을 존경한다면서 극찬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전에 안 원내대표는 이종걸 교과위원장, 추미애 환노위원장을 비난하면서 상임위를 다수당이 독점하는 법안을 냈다. 어떻게 봐야 하나?"
"그건 안상수 원내대표한테 물어봐라.(웃음)"
"여러 언론으로부터 높게 평가받는 지식경제위 정장선 위원장도 야당 위원장이다. 반면 파행이 발생하는 위원회의 경우 여당 위원장일 경우도 많다."
"더러 있다."
"위원회의 운영이라는 면에서는 여야를 나눌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국토해양위 예산 담합, 이제는 예사로 넘기면 안된다"
얼마 전 국토해양위는 여야 위원 전원이 모인 가운데 이병석 위원장은 일방 통과 시키고 야당은 저지하는 흉내만 내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때 수정통과 된 예비심사 내역을 보면 위원회 소속 위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3조 5000억원 가량 순증액했다. 그 말 많은 4대강 사업 예산 규모다. 여야의 대표적 '예산 담합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짚었다.
"국토해양위 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도 그렇다. 국토해양위가 좀 심하지만 역대 국회를 보면 제가 재정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있어서 예결위원회에 거의 매년 들어갔다. 정책위의장으로서 관여도 많이 하고. 국회는 납세자를 대신해서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해야 하는데 국회가 오히려 납세자의 세금을 더 쓰고 빚을 더 늘리도록 하는 일에 앞장 서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비례대표 때는 굉장히 신랄하게 비판도 하고 야당이었지만 나름대로 콘트롤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역구 의원이 돼보니 유권자들의 요구가 원체 강하더라. 지역구 의원으로서 노력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권자가 달라져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린다는 생각이다.
선진국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견제한다. 예를 들어 기업들이 굉장히 크게 저항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을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있다.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못 낸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이 자기주장을 못하는 환경이다. 그래서 제대로 제약이 안 되고 있다. 관료들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제가 관료주의를 최소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도 이 문제와 관계 있다. 관료들이 국민 세금을 갖고 인심을 쓰는 체제에다가 국회의원이 거기에 플러스를 얹는 이런 시스템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시스템을 확 뜯어 고쳐야 한다. 이번 국토해양위 사건은 그런 문제를 이제 예사로 넘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어떤 계기를 제공했다고 본다. 이번 일을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보는 시각과 태도를 고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그 위에 관료주의가 있더라" ⓒ프레시안 최형락 |
"관료주의가 문제…당이 몇차례 싸워야 뭐가 돼도 된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철저한 자유시장경제론자인 이 의원은 한나라당이 이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친서민정책'도 하려면 시장 논리에 맞게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 친화적이라고 하는 정책들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작은 정부, 큰 시장론'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큰 정부로 가고 있다?"
"그렇다. 지난 대선에 우리가 '줄푸세'(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공약) 얘기를 했다. 정권 잡고 나서 규제는 줄이고 감세는 했다. 그러나 다른 국민 부담금은 자꾸 증가하고 있다. 복지도 그렇다. 복지 전달 체계를 정확하게 책임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제대로 안 고치고 자꾸 대상자만 늘리고 있다. 진짜 어려운 사람에게는 지금보다 더 주겠다는 것이 우리 약속이었다. 그 대신 중산층은 복지 대상자가 아니다. 거기는 충분한 경쟁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죄 늘려 놨다. 지금은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공짜가 있으니까. 그런데 오래 못 간다.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곤혹스럽다."
"관료주의가 어떻게 문제인가?"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우파 정부는 자본주의 하자고 하고, 좌파 정부는 사민주의를 하자고 하는데, 그 위에 뭐가 있느냐면 관료주의가 있다.'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관료가 주인이다. 소통 문제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기본 인식이 안돼 있으면 계속 소통 문제가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은?"
"우파다. 시장경제를 중시한다."
"그런데 그게 잘 구현이 안된다고 느끼는 것인가?"
"그렇다. 현실정치는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방향은 제대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책을 구현하는 방식은 현실적이고 유연해야 하지만 방향과 철학은 분명해야 한다?"
"그렇다. 그렇게 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가지 못하고 있다."
"중심은 흔들리고 수단은 유연하지 못하다?"
"그렇다."
"좀 나아질까? 아직 2년밖에 안됐다."
"글쎄...(웃음)"
▲ "좀 나아질까? 글쎄…" ⓒ프레시안 최형락 |
"야당이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게 된 측면도 있나?"
"그 얘긴 할 수 없고(웃음) 답답하다. 여당도 답답하고, 야당도 답답하다. 국회의원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나는 헌법기관이다', 이런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
"막상 상임위에서 토론하다보면 대개는 합리적으로 접근도 되고 그렇지 않나?"
"그렇다. 그래서 당에다 얘기하는 것이다. '자꾸 당론을 정하지 마라. 뭘 알고 정하든지, 꼭 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정협의 단계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도록 해라. 다 결정된 후에 통보하는 형식은 안된다. 의원들이 충분히 이해한 단계에서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부와 여당 관계가 그렇게 안 돼 있으니까 자꾸 이런 문제점이 노출되는 것이다."
"당정 협의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당이 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다가 강한 당을 보여주는 제일 쉬운 방법은 대통령이 당을 존중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만 하면 아무 문제없다. 그런데 권력이라는 것은 일단 잡고나면 100%, 120% 쓰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기대하기 어렵다. 상호 견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밀어붙여도 당에서 '이것은 안돼' 하고 몇 차례 싸워야 그 다음에 뭐가 돼도 된다."
"정권 초기, 이상한 사람들만 잔뜩 등장해"
국정운영전반에 대한 집권당 중진의원의 지적이니만큼 정부입장에서는 야당의 공격보다 더 아플 것이다. 이렇게 자꾸 쓴소리만 하는 이 의원의 심정은 어떨까?
이 의원은 "나도 그렇고 (이 의원은 3선이다) 한나라당의 3선, 4선 의원들의 경우는 다들 10년간 고생해서 정권을 되찾아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의원의 말마따나 10년 야당 생활이 고생스러웠던 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 소리를 들으면서 급전직하했다. '정권 재창출'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고 있는 이 의원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봤을까?
"그 때 굉장히 분노했다. 국정이 잘 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제대로 된 사람이 들어가야 하고, 또 하나는 정책 방향이 올바르게 가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매치가 돼야 한다. 야당 시절에 우리를 도와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외부에서 음성적으로. 그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중용 안되고 우리들 눈에 국민들 눈에 이상한 사람들만 잔뜩 등장하니까 이게 뭐냐.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정책은 어땠나?"
"정책도 우리가 그 동안 얘기한 것과 반대되는 것도 나오고 그랬다. 또 국정 운영하는 행태가, 똑같더라. 계속 관료 편의주의로 가더라. 얘기한 것과 실제 하는 것이 다르더라. 국민들 눈에는 당장 잘 안보일지 몰라도 전문가 눈에는 다 보인다. 우리가 야당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야당 생활이라는 것은 국민과 같이 하는 생활이다. 현장을 누비면서 '공무원들이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굴러가니까 비판할 수밖에 없다."
▲ "정권 초기에 능력있는 사람은 중용 안되고, 이상한 사람들만 잔뜩 등장했다." ⓒ프레시안 최형락 |
이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친서민 정책'의 지향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발표한 여러 정책들이 포퓰리즘이냐, 아니면 진짜로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은 지속 가능하냐, 아니냐다. 실제로 작동하느냐 안하느냐 이런 문제가 있다. 두 가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미소금융, 재벌이 들어갈 영역 아니다"
"청와대가 중도 실용주의, 친서민 정책의 대표적인 정책 사례로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3가지다. 미소금융,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그리고 보금자리주택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와 의견이 다른 점이 그런 부분이다. 그래서 보완을 요구하고 있고 상임위에서 본격적으로 얘기했다. 이 정책들은 모두 서민의 어려움에 포커스를 맞추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 같다. 그런데 방법 면에서 지속가능할까? 이것이 문제다."
"미소금융은 어떤가?"
"미소금융은 금융기관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사회의 여유 있는 분야에서 돈을 대서 금융을 해주는 컨셉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활동은 정말 어려운 계층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그 사람들 상황을 자기 집 상황처럼 아주 자세히 잘 아는 그런 사람들이 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숟가락이 몇 개인 줄도 알고 돈 빌려간 사람이 낯이 뜨거워서라도 돈을 갚도록 하는, 그런 상황이 돼야 계속 돌아가는 사업이다. 그런데 은행에, 재벌들에게 돈을 내라고 해서 모아서 중앙에서 각 지역마다 생기는 미소금융 재단 사업소에 지원을 해주고 거기에서 관리를 하겠다는 건데 이런 식이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많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면 더 큰일 날 일이다."
▲ "자유를 주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 ⓒ프레시안 최형락 |
"마이크로 크레딧의 원래 취지에 맞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다. 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도 전혀 유형이 다르다. 재벌이든, 금융기관이든 좋다. 그런데 그동안 재벌에게 전문 분야 아니면 들어가지 말라고 우리 사회가 요구해왔던 것 아닌가? 이것은 재벌들이 들어갈 영역이 아니다. 금융기관이나 은행도 전문가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거기 보고 돈 거둬내라, 운영은 내가 대신해주겠다. 이게 무슨 개념이냐? 정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희망해서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고 한다면, 중앙에 집중시키지 말고 자기들이 직접 하도록 해야 조금이라도 돌아갈 것 아니냐. 그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눈먼 돈을 공급하는 체제가 된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중인데 이런 것들이 굉장히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 예사로 돈 빌리고 안 갚아도 된다는 분위기를 광범위하게 만들어 놓으면 자기 책임 하에서 벌어서 먹고사는 사람은 뭐가 되나? 자유를 주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그것이 허물어져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자발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해야지, 국가가 주도해서는 될 일도 안된다는 의미로 들린다. 이명박 정부는 '신나는 조합'같은, 기존의 '마이크로 크레딧'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끊고 뉴라이트 단체나, 은행에 '미소금융'을 맡겨버렸다.
"모럴 해저드를 집단적으로 양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것이 생활에 깊숙이 박히면 대책이 안 서게 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자유를 주되, 책임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도 똑같다. 한국장학재단이 채권을 발행해서 조성한 자금을 갖고 한다는 것 아니냐. 채권 발행은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해준다. 대학교에서 C 학점만 받으면 융자해 줘서 취업후에 갚아도 된다는 시스템인데, 지금 우리나라가 대학 졸업 후에 조금 지나면 그 학생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재간이 없는 나라다. 그것을 수사 기관도 아니고, 한국장학재단에서 다 확인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느냐. 취업 후라고 돼 있는데, 지금 취업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느냐. 그러면 어떻게 될까? 젊은 시절부터 이렇게 대충대충 공부해도 빌릴 수 있다. 요즘 대학교에서 웬만하면 C 학점은 다 받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조금 지나면 떼먹어도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청년들이 모두 죄의식까지 갖게 된다. 돈이 안 들어오면 정부가 지급 보증했기 때문에 3년, 5년이 되면 다 예산으로 몰려들어온다.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그렇다면 납세자는 뭐냐. 이런 눈 먼 돈을 본격적으로 공급해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보금자리 주택은?"
"보금자리 주택은 이름은 좀 달라 보이지만, (기존의 것과) 비슷하다.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은 찬성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 주변 지역보다 훨씬 싼 값에 주겠다고 하는 데 그런 발상이 문제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야지, 광범위하게 하면 안 된다."
▲ "열심히 변명하려고 하지만 뻔한 문제다. 토론하면 다 나온다." ⓒ프레시안 최형락 |
"국가 유공자나 저소득층에 해준다든지 그렇게 하면 백업(지원)이 된다. 그런데 무슨 신혼이라고 해주고, 애가 몇 명이라고 해주고, 중산층도 해주고, 이렇게 되면 주택시장, 공급 체계에 큰 혼란을 준다. 이게 주로 수도권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이 비대한데 그런 인센티브까지 주면 지역 균형발전은 어떻게 되는 거냐."
"우선 환영하는 사람은 많고, 몇 년 후에 결과적으로 자기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반대는 별로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런데 이게 조금만 지나면 불평의 소리가 나오고, 문제점이 크다는 애기가 나오게 된다. 그 때는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당정협의 등을 통해서 내용적으로 조언하고 조율할 수 있지 않나. 정부에서는 뭐라고 하나?"
"열심히 변명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뻔한 문제다. 토론하면 다 나온다."
"그럼 정부 쪽이 토론을 피하겠네?"
"여당에서 이런 구체적인 문제 제기를 하면 정부가 들어주고 고쳐줘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안되는 게 안타깝다. 보통 의원들은 다 결정된 뒤에 알게 된다. 그러다보니 여당 의원들이 정부에 대해 뭐라고 비판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종시, 다른 지방 재정 투자 여력을 깎아 먹게 돼 있다"
"세종시 해법은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가 내놓는 수정안이라는 것을 봐야 한다. 방향과 관련해서는 세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원안으로 가는 방법, 또 하나는 세종시를 아예 없던 일로하고 보상을 통해 처리하는 방법, 또 하나는 행정도시 말고 다른 성격의 신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게 수정안이다. 그런데 수정안만 갖고 되는 게 아니라 비 수도권, 즉 다른 지방 도시에 대한 대책도 같이 내놓아야 한다. 지방 도시가 공동화의 위험에 처하니까. 세종시 보완 대책이 아니고, 세종시를 신도시로 만들겠다면 다른 지방 도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타지방 보완대책을 같이 내놓아야 한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됐나?"
"그렇다. 결국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손익 계산을 해야 하는데, 우려하는 게 세 번째다. 중요한 것은 비수도권 지역에 행정도시가 아닌 신도시를 만들 정도의 수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세종시를 행정도시가 아닌 다른 기능을 가진 신도시로, 각종 인센티브를 줘서 성공을 시킨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수도권 도시일까? 비수도권 도시일까? 거기에 인센티브를 줘서 기업도 옮기고 연구기관도 옮긴다는데,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재정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지방 도시에 재정 투자를 할 여력을 깎아먹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가 있다."
"총리실에서는 다른 혁신 도시나 지방에는 영향이 없을 거라는데?"
"재정만 봐도 '영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총리실 산하 민관합동위는 행정 비효율의 대표적인 사례로 본과 베를린을 지목하고 그것을 시찰하러 갔다."
▲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대우하겠다는 정신을 매사에 보이면 계파 갈등은 해소된다. 그러면 갈등할 게 없다." ⓒ프레시안 최형락 |
"1월 중순에 대안이 나온다고 하는데, 대안이 나와도 결론을 내는데 까지는 정말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지까지는 아직 모르니까. (웃음)"
"친이-친박 갈등구조는 해소될 수 있을까?"
"해소는 쉽게 된다."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 동반자로 대우하겠다고 두 차례나 말했다. 매사에 그 정신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갈등할 것이 없다. 우리가 야당 생활하면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을 제대로 안 지키고 엉뚱하게 가는 것은 못 봐준다. 다선 의원 중에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계파'의 차원이 아니다. 중도 실용 노선도 그런 미묘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쓴소리'가 아니라 '바른 소리'다"
"3선 중진 의원인데 쓴소리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다. 이만섭 국회의장에서 시작된 계보 말이다"
"내가 하는 소리는 쓴 소리가 아니라 바른 소리다. 양심의 소리다. 언론에 이렇게 불러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안 불러준다. (웃음)"
"'쓴소리'라는 표현이 사람들에게 잘 와 닿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런 평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답답하다. 정상적으로 하자고 얘기하는데 왜 쓴소리라고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 그게 참 답답하다. 정치 생활을 야당에서 시작했다. 정권 교체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다. 다른 데 있으면 편하게 돈 잘 벌고 명성도 유지하고 잘 지낼 수 있었는데, 여기 와서 지난 10년 간 별 소리를 다 들어가면서 지냈다. 그렇지만 우파 정권을 만들자. 내가 생각하는 자유주의 시장 경제에다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법치 국가를 만드는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했다. 그런데 정권은 되찾아 왔는데 별 차이가 없지 않나? 이런 자괴감이 자꾸 든다. 제가 정책위의장을 몇 번 했기 때문에 국민들께 약속한 것이 많다. 그 약속이 제대로 안 지켜지는 일이 생기면 저는 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얘기를 한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자꾸 얘기를 해도 입만 아프고 뭐가 바뀌는 듯한 감은 별로 없고, 그런게 답답한 것이다."
"답답하다고 하는데 지난 두 번 재보선에서 져서 당이 쇄신하지 않았나?"
"쇄신도 하다가 그만 뒀다."
"내년 유월 지방선거에서 지면 조금 나아질까?"
"이길지 질지 아직은 모른다. 야당이 원체 잘해주니까. (한나라당을) 많이 도와주고 있으니까.(웃음) 국민들이 중요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겠나. 시그널을 보내면 제대로 받아야 할 텐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 지금은 단언하기 어렵다. 보통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당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지 않나. 당 지도부가 행정부에서 한 자리 하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겸직 가지고 재미 보겠다고 하면 그 정당은 참 힘든 정당이 될 것이다. 자세하게는 얘기 안하겠다.(웃음)"
"전체 상황을 관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관조하면서 가끔 한마디씩 하는데, 한마디 해 놓으면 또 시끄러워지고 그런다.(웃음)"
"1년 쯤 있다 인터뷰를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
"그 때가서 좋은 얘기 할 수 있도록 잘 도와 달라(웃음)"
▲ "양심의 소리라고 언론에 불러달라고 하는데 그렇게 안 불러준다(웃음)" ⓒ프레시안 최형락 |
정책위의장과 국회 예결위원장을 지낸, 이 정권의 텃밭인 대구에 지역구를 둔 3선 중진위원이 답답해하는 정국을 뉘라서 풀어갈 수 있을까.
이한구 의원이 제기한 문제를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은 그의 문제제기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철학과 통치 스타일, 더 나아가 한나라당의 당 정체성과 책임성의 문제에 걸쳐있는 매우 근본적이고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어디에서 해답을 찾을 것인가. 그가 해답을 찾아 어디까지 갈지 1년 후에 만나 확인하기로 약속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를 마친 이의원은 바쁘게 모임에 참석하러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야중진의원 12명이 모여 예산안 중재안을 마련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이 마련한 중재안은 여야지도부에 의해 간단히 묵살되었는데 그가 찾는 해법이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해법 찾기를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그의 문제의식에 다수의 국민이 함께 하고 있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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