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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공약 버리기 전에 이것부터…

[창비주간논평] 복지국가를 위한 바람직한 공약의 실현 방안

최근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자의 공약 중 핵심이던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의 내용에 직접적인 치료비만 포함되고 선택진료비(특진료), 상급 병실료, 간병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넘어 국민적인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0년 진료비 실태 조사에 따르면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선택진료비(26.1%)와 병실 차액(11.7%)이며 간병비도 연간 4조 원(2012년)에 달한다. 이들 세 가지 항목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박 당선인의 공약집을 보면, 비급여 부분을 포함한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을 현재 75% 수준에서 2016년까지 100%로 높이겠다고 명시돼 있다. 세 가지 비급여 항목이 제외된다면 다수의 국민에게는 공약이 시행되어도 '앙꼬 없는 찐빵'으로 느껴질 것이다.

잘못된 공약이기에 폐기해야 하는가

물론 공약의 실행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내용이 수정된 데는 상대 후보와 경쟁하기 위해 시행 방안을 생각지 않고 정치적으로 공약을 정리한 잘못이 있을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제기된 '심장질환은 되고 간질환은 안 된다는 것이냐?'라는 반문은 단순히 질병별로 선별해서 보장성을 강화한다는 박근혜 후보 공약의 단계성과 급여 확대 대상에서 빠진 환자들이 제기할 형평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 질환의 어디까지 급여화할 것인가에 대한 의학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질병별로 선별해서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기술적인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러한 문제들이 제대로 지적되지 않았다.

공약 중에는 수정해야 하거나 현실을 고려해 축소할 필요가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더 진전된 공약을 제시한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이 반이나 되는 상황에서 '기술적으로 잘못 만들어진 공약'이라고 하여 없었던 일로 치는 것은 자신에게 투표한 유권자에 대해 올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며, 나머지 절반 국민의 마음까지 포용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아닐 것이다.

▲ 노년유니온 등 노인 및 복지단체 회원들이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에서 최근 줄줄이 수정된 박근혜 당선인의 기초연금 및 4대 중증질환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국가를 위한 바람직한 공약의 실현 방안

아버지의 꿈이었던 복지국가를 달성하기 위해 박근혜 당선인이 할 일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진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우선 4대 중증질환의 의학적 치료비부터 단계적으로 급여 확대를 시작하는 것은 지금도 시행 가능하다. 기본 입원병실을 4인실로 높이고 1인실이나 2인실이 아니어도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외래 진료의 선택진료비는 당분간 그대로 두더라도 입원 진료나 수술 등에서는 선택진료비를 내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고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급여의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비용 부담을 적게 하면서 공약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간병은 간호 관리에 포함시켜 병원들이 간호 인력을 확충하도록 하면 도덕적 해이 없이 단계별로 간병비 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러한 정책들을 이미 공약으로 발표했던 야당의 협조를 요구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여야가 합의한다면 관련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할 수 있다. 또한 국민에게 진료비 부담 경감과 의료의 질 향상에만 확실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점차 보험료를 인상하도록 설득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복지국가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복지국가를 진정으로 건설하고자 한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공약을 축소하거나 변경하는 것에 우선하여,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일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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