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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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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남긴 숙제

[기자의 눈]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미국 최대의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은 2001년 분식회계가 적발되자 파산했다. 최고경영자였던 제프 스킬링은 24년형을 선고 받았었다. 이후 투자자들에게 4000만 달러를 배상하는 조건으로 감형돼 지난 9월 석방됐다. 그래도 제프 스킬링은 14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엔론과 삼성


한국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 고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4조5000억 원대 회계 조작이 이뤄졌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최종 확정한 결론이다.

회계 조작 책임자, 그로 인해 이익을 얻은 이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수 기득권층 가운데서 이 부회장에게 호의적인 이들이 많았던 건, 삼성이 착해서가 아니었다. 삼성이 그들에게 이익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회사의 장부가 조작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손해를 보거나, 이익이 줄어든 이들이 많다. 이 부회장 재판은 이제 새 국면이다. 이 부회장을 보며, 14년 동안 복역한 엔론 최고경영자를 떠올리는 이들이 흔하다.

국민연금이 재벌 방패 하던 관행, 제동 걸렸다

2016~2017년 촛불 정국을 떠올려보자. 몇 가지 변곡점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국민연금공단이 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했는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당시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했다. 그런데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왜 합병에 찬성했나.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 노후 자금이 손해를 무릅쓴 건가. 이런 의문이 번지면서, 촛불 열기가 더 고조됐었다. 이 부회장 역시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의 공범이란 인식이 퍼졌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과 삼성의 성공, 다수 국민의 이익. 이런 세 가지를 한데 묶어서 생각하는 이들은 이제 소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당시엔 이런 세 가지를 구별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였다. 지난 11년 역사가 낳은 변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낙수 효과는 별 근거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강화가 다수 국민의 이익과 상충하는 사례도 자주 봤다. 국민연금공단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벌 총수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발상은 이제 지지받을 수 없다. 과거처럼 법원이 총수에게 턱없이 관대한 판결을 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공단 역시 대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해 손해를 무릅쓸 수 없다. 그랬다간, 거센 역풍을 맞는다.

삼성을 누가 어떻게 지배해야 하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삼성을 누가 어떻게 지배해야 하는가. 둘째, 국내 대기업들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여야 하나.

첫째는, 결국 삼성전자 문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를 포함한 총수 비리 대부분은 결국 삼성전자 지배와 맞물려 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과 지금, 삼성전자의 위상은 완전히 다르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반도체, 휴대폰 기업이 됐다. 1987년엔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다. 당연히 주식 가치 역시 1987년과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늘었다는 뜻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돈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순환출자부터 분식회계 사태까지, 그간 있었던 온갖 지배구조 논란은 결국 이 문제였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결국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삼성 밖에서도 모범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등이 삼성 총수 일가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다른 양보를 받자는 주장을 했었다. 당시 논쟁이 일었지만,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다.

'제왕' 아닌 '조정자' 총수

그리고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건희 회장 일가가 삼성전자를 장악하기 위해 동원한 방법들은 모두 불법 판정이 났다. 애초 안 되는 일이었는데, 권력을 등에 없고 하려 했던 것이므로, 당연히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대신, 정부와 시민사회, 학계, 정치권은 삼성 지배구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용 처벌과 지배구조 대안 마련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옳다. 이 가운데 하나를 빠뜨린 논의는 비겁하다.

실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문제다. 현 정부에 참여한 경제, 경영학자들은 대체로 일관된 입장이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은 주주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한 편이다. 그 논리에 충실한 답은 있다. 총수가 무슨 짓을 해도, 주주들이 쫓아낼 수 없는 구조는 만들 수 없다. 다만 그걸 인정한 범위 안에서 총수가 중요한 의사 결정을하는 건 가능하다.

김상조 위원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방어에 대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무리하게 경영에 나서기보다, 대주주로 남되 '조정자' 역할에 머무르는 게 옳다. 그리고 그걸 약속해야 한다."

국민연금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는 앞서 거론한 둘째, 즉 국민연금공단의 역할과 맞물려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 대부분의 대주주다. 그간 국민연금공단은 주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재벌 총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총알받이'라는 비난은 그래서 나왔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했던 것도, 그동안의 관성과 관련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을 묵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의 불법 행위를 시장이 용납하지 않듯, 국민연금공단의 관성 역시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곳인데, 왜 손해를 봐야 하느냐. 이런 질문에 대해 국민연금공단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았다.

앞으로는 국민연금공단의 이익과 재벌 총수의 경영권이 상충할 때, 2015년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없다. 지분 적은 총수의 방패 하나가 사라졌다.

국민연금이 수익률 높이면 생길 변화, 순기능과 역기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개혁안에 포함된 '보험료 인상'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공개한 날이다.

보험료를 크게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지급률)을 높이면서, 미래 세대에게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을 방법은 없다.

다만 그에 가까운 방법을 찾자면, 국민연금공단의 수익률을 지금보다 높이는 길이 있다. 대통령의 입장을 따르자면, 국민연금공단은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순기능과 역기능, 그리고 숙제가 다 있다. 총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연금이 동원되는 일은 생기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주주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번 회계 부정 사건은 일어나기 어려웠다. 이게 순기능이다.


역기능은 모험적인 투자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주주로서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건, 결국 배당 성향을 높인다는 뜻이다. 이익이 한정돼 있는데, 주주 배당도 늘리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확대할 길은 없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 어렵다. 그래서 숙제가 있다.

제왕적 총수와 정경유착


국민연금공단이 주주 역할에 충실하면, 재벌 총수는 스스로 경영권을 방어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분이 적은 재벌 총수들은 김상조 위원장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주주로 남되 '조정자' 역할에 머무르는 게 옳다."

재벌 총수 입장에서 꼭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정부 및 정치권 눈치를 봐야 할 필요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이다. 총수가 기업 안에서 제왕처럼 군림하고, 기업 밖에선 정치권과 유착하는 게 한국 재계 문화였다. 이런 문화를 벗어나는 게 숙제다. 몹시 낯선 길이다. 그러나 그 길뿐이다.

장하성, 김상조, 김연명의 공통점다른 길은 막혔다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은 논쟁을 불렀다. 진보적인 전문가 가운데서도 격렬한 반발이 나왔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통령의 공약대로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 인상이 더욱 필요한데도 보험료 인상을 회피한다면 연금개혁 논의 출구가 막힌다"라고 말한다.

개혁 진영 안에서 오 위원장 맞은편에 섰던 전문가가 김연명 전 중앙대학교 교수였다. 문 대통령은 최근 김 전 교수를 청와대 사회수석으로 발탁했다.

현 정부 입장은 선명해졌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미루면서, 소득 대체율은 높여야 한다. 결국 국민연금공단이 더 많은 수익을 내야 한다. 요컨대 대기업에게 적극적으로 배당을 요구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주주로서의 권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은, 장하성, 김상조, 김연명 등이 한결같았다. 교수 시절, 이들은 모두 국민연금이 재벌 경영권 방어에 동원되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리고 우연과 필연이 겹친 끝에, 이들의 주장대로 판이 짜였다. 다른 길은 막혔다.

숙제 못 하면, 미래 세대에게 부담

숙제를 미룰 수 없다. 삼성을 포함한 대기업은 제왕적 총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을 익혀야 한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국민연금공단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높은 배당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보험료 인상을 거부했으므로, 국민연금공단의 수익률 압박은 높아졌다. 기업과 국민연금공단이 숙제를 하지 못하면, 부담은 미래 세대가 짊어진다.

이런 숙제를 다 해도, 공백은 있다. 새로운 숙제다. 주주의 권리가 강화됐을 때, 혜택을 보는 계층 범위는 비좁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배당 소득은 약 14조 원이다. 상위 0.1% 집단이 이 가운데 51%를 차지한다. 상위 10% 집단이 94%를 가져간다. 요컨대 주식 배당 소득은 상위 10%의 전유물이다.

주주자본주의 수혜 집단은 상위 10%

소득 및 자산 불평등 구조에서, 미국과 다른 한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상위 10%와 나머지 90%의 격차 확대다. 미국은 상위 1%와 나머지 99%의 격차가 벌어진 속도가 빨랐다. 한국은 1%와 99% 사이의 간극과 함께 상위 10%와 나머지 90%의 격차도 함께 벌어졌다. 10% 대 90%의 문제, 혹은 20% 대 80%의 문제는, 한국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여론을 이끄는 86세대 정규직, 고학력 전문직과 공공 부문 종사자들이 이들 10~20%에 속한 탓도 있다. 재벌 총수를 포함한 최상위 0.1% 집단의 부패가 워낙 심했던 탓에, 이들 10~20%의 기득권이 가리워지기도 했다.


대기업이 주주 배당을 늘렸을 때, 혜택을 보는 상위 10%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물을 때가 됐다. 김연명 수석은 국민연금이 재벌의 방패로 쓰이는데도 반대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금융 투자에 치우치는데도 비판적이었다. 국공립어린이집·공공임대주택 확충 등에도 투자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이는 국민연금 재정에도 이롭다는 입장이었다.

연금에 대한 관심과 감시, 강화해야

이처럼 국민연금이 복지 확대에도 쓰인다면, 주주자본주의에서 소외된 하위 90%에게도 이롭다. 다만 낮은 보험료와 높은 소득 대체율, 높은 수익성과 공공성 확대라는 목표를 함께 좇는 게 어려울 따름이다. 이들 목표는 서로 부딪힌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으므로 성공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감시 역시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는 언론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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