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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와 에바 페론을 한 몸으로 연기한 박근혜의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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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와 에바 페론을 한 몸으로 연기한 박근혜의 5년?"

[시민정치시평] 비밀주의 신고식이 보여주는 권위주의의 흔적

박근혜 시대가 드디어 개막전을 시작했다. 보수의 시대가 5년 더 연장되는 것이지만, 희한하게도 뭔가 대단한, 전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흔히들 기존의 가치질서를 옹호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식의 보수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민주정부 10년, 이명박 정부 5년을 뭉뚱그려 배울 것 하나 없는 실패한 과거로 돌려버리고, 과감한 변화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무한도전의 보수를 연출해 낸 것이다. 전통적인 진보의 아젠다를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끌어안아 변화와 새시대의 희망을 하나로 엮어내는 능력도 탁월했고, 강인한 여성 리더쉽을 전면에 내세워 과거 권력자들의 무능하고 천박한 정치력를 단 칼에 베어버리는 전투기술도 뛰어났다. 진보진영이 억지춘향격으로 만들어낸 양자대결 구도는 역설적이게도 박근혜식 보수가 더욱 빛을 발하는 무대가 되었고 TV토론에서 드러난 박근혜 후보 개인의 부족함은 그 속에서 조용히 묻혔다.

마치 모자라는 주인공의 연기력을 탄탄한 각본과 연출력으로 커버하는 한편의 드라마 같기도 했고, 광고로 치자면 성공적인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보는 듯 했다. 스토리텔링 광고에서는 선전되는 제품이 무엇이 좋고 새로운지를 구구절절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제품과 아무런 관련 없이 꾸며낸 이야기의 힘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제품을 사도록 만들어 낸다. 박근혜 후보는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 중심의 선거전을 펼쳤고 반대편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광고주 중심의 선거전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치러진 두 번의 선거에서 박근혜식 보수가 깨끗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필자의 관전평이다. 물론 진보가 갖지 못한 보수의 특권이 큰 몫을 했다. 보수는 필요하면 진보의 아젠다도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먹히도록 열렬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중언론을 자기편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후보의 패인을 한국사회의 보수가 누리는 엄청난 특권 때문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는 어디까지나 선거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박근혜 후보는 청와대 재입성으로 이미 '내 꿈'을 이루었고 '선거의 여왕'의 역할은 끝이 났다. 이제 박근혜 당선인에게 남은 숙제는 나머지 국민들도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한국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부와 지위, 명예까지도 세습이 가능한 신분사회, 세대를 막론하고 국민 대다수가 불안에 떠는 불안사회를 바꾸어 내야 한다. 5년이라는 한시적인 권력이 해결할 수 없는 버거운 숙제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얻은 전체 유권자 지지율 39.1%은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역대 최고치였지만,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박근혜 시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그리 높지 않다. 선거 직후 대선의 승패요인을 묻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후보가 잘해서' 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5.4%로 그리 많지 않았다. "문재인후보가 잘못해서" 졌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낮은 4.7%에 불과했고 박근혜 당선인이 앞으로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답변은 72.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한 "100% 국민행복시대"는 완벽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으로 포장할 수 없고 강력한 통치자가 국민에게 선물 주듯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시대는 별 기대감 없이 냉랭하고 조용한 신고식을 치렀다. 5년 전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던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박근혜 시대는 별 기대감 없이 냉랭하고 조용한 신고식을 치렀다. 5년 전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던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뉴시스


멋있는 슬로건과 약속들이 난무하던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박근혜 당선인은 산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는 것인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마냥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극한의 충돌과 갈등을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과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제도가 제 기능을 하기보다는 통치자의 뜻이 법제도의 작동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법치보다 인치가 앞선다는 점에서 아직은 후진국이다. 통치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현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저항을 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래도 통치자의 의중을 알아야 앞으로 5년의 기상도가 어느 정도 나온다. 그런데 박근혜 시대는 오리무중이다. 선거과정에서도 그렇고 막 출범함 인수위의 활동을 봐도 그렇다. 지난해 선거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5년 전 17대 대선을 준비하던 박근혜 후보가 아니었다. 5년 전에는 영국의 대처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이 연상된다. 전혀 교집합이 없는 두 인물을 한 몸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신기할 따름이다. 보수언론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정치인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에 근접하다고 주장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전혀 닮지 않았다. 그래서 박근혜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전전긍긍해하는 국민들에게 이제는 답을 줄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통보수이면서도 전혀 보수답지 않게 선거를 치른 탓에 박근혜 후보의 이런 저런 약속 가운데 어디까지가 선거전술이고 어디까지가 후보의 의지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원체 말이 없는데다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박근혜 후보의 '신비주의 스타' 같은 소통 스타일로 인해 의중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선거캠프와 새누리당 사이의 엇박자 때문에 어디를 쳐다봐야 하는지 늘 헷갈렸다.

필자의 생각에 인수위의 역할은 이런 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보수정권이건 진보정권이건 정치가 예측가능해야 경제와 사회가 중심을 잡을 수 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시대적 전환기에는 예측가능한 정치에 대한 갈증이 더 깊다. 그런데 정보를 주는데는 참으로 인색하다. 작고 소박하게 출발한 인수위가 생산성이 높을 것이라는 추측기사만 나돌고 언론 접촉이 대변인 한사람으로 창구단일화되고 정작 인수위원들에게는 함구령이 떨어져 다들 대변인 입만 쳐다볼 뿐이다. 선거전 당시 박근혜 후보의 소통 스타일을 쏙 빼닮았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언론보도를 성가시게 여기고 외부의 관심을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인수위 막바지에나 손에 잡히는 뭔가가 나올 모양이다. 잠자코 기다리면 우리가 결정해서 나중에 다 알려주마 하는 식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인수위 철통보안 인사는 통치자의 고유권한이니 그렇다고 칠 수 있다. 그러나 인수위 활동의 철통보안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식이면 혹시 역사가 40년 거꾸로 가는 건 아닌가하는 48%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설마 민생현장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밑바닥의 소리를 직접 귀로 듣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리라 믿는다. 불통의 상징인 이명박 대통령도 민생탐방은 게을리 하지 않았고 매주 라디오 방송으로 일방통행식 소통은 열심히 했다. 정치과정의 투명성은 소통의 출발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라면 다양한 의견들이 맞부딪히는 논쟁과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시대 리더쉽의 최고 덕목으로 꼽히는 소통의 가능성이 비로소 열리고 타협의 지점을 가늠할 수도 있다. 통치자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겠지만 통치자를 귀찮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속성이다. 민주주의와 같이 갈 수 없는 박근혜 시대의 비밀스런 신고식은 권력의 작동과정과 국정운영을 음지에 가두고 싶어 하는 구시대적인 권위주의의 흔적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아무리 허약하다 하더라도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로 무장한 인치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만큼은 아니다. 스스로 양지로 걸어 나올 자신감이 없거나 그럴 의사가 없는 권력을 다시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야당, 언론, 시민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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