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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하는 일본 "ICJ 제소" 엄포,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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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하는 일본 "ICJ 제소" 엄포, 가능할까?

강제징용 판결에 격앙된 반응…한일 관계 긴장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은 것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당분간 양국 간 냉각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면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 역시 이날 담화를 통해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이번 판결은 한일 우호 관계의 법적 기반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고노 외무상은 "국제 재판을 포함, 여러 선택지를 두고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혀 향후 이 사안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이날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일본 정부의 의사를 전했다.

이번 소송의 피고였던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 역시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일철주금은 입장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이 지난 1965년 맺어진 한일 청구권 협정, 그리고 지난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자신들이 승소했던 판결과 반하는 것이라며 "판결 내용을 정밀히 조사하고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판결과 관련 '강제 징용 소송 관련 대국민 정부입장 발표문'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에 관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대법원의 오늘 판결과 관련된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국무총리가 관계부처 및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제반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며 정부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피해자들의 상처가 조속히 그리고 최대한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한일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혀 과거사 문제와 기타 한일 간 현안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이른바 '투 트랙' 노선을 강조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의 ICJ제소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부로서는 여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며 "아울러 이번 판결이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할 필요성을 일 측에 전달해 오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2005년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마무리됐다고 밝힌 것과 관련, 입장 변화가 있냐는 질문에 노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정부 입장에 대한 여러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당장 뾰족한 수단 없어…한일 냉각기 불가피

한일 관계는 최근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 치유 재단'의 존속 문제,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의 욱일기 사용 문제, 한국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 등으로 인해 다소 껄끄러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판결이 나오면서 향후 양국 관계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당분간 한일 관계의 냉각기가 불가피한 가운데 화해 치유재단이 연내 해산될 경우 그 충격파가 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장 일본이 특정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 교수는 "일본이 이 문제를 ICJ로 가져가려고 해도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 사안은 쟁점화 시키기는 쉽지만 극적인 변화나 사태의 진전이 있기는 어려운 문제"라며 "일단 한일 양국 간 원칙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응수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외교부도 이 사안이 이른바 '사법거래'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당장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1965년 청구권 협정의 제3조를 보면 분쟁이 생겼을 경우 우선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이게 안될 경우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돼 있는데, 양국 정부가 합의하지 않으면 중재위 구성이 불가능하다"며 "이게 불가능해지면 일본이 ICJ에 제소할 수도 있는데, 한국이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일본으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결국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이 문제를 여론전으로 끌고 가고 이를 외교적인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판결의 근본적인 문제는 35년 동안의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라며 "일본은 강제 동원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징용공'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국가 총동원령이 합법적이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런데 이번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총동원령이 한국의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일본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2005년 당시 정부가 밝힌 입장과 이번 대법원 판결이 배치된다는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당시 결정은 강제 동원 문제의 경우 도의적, 정치적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고 법적인 차원은 아니었다"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법적으로 강제 동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거사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경우 향후 한반도 평화 구축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북한이 미국에 이어 일본과 관계 개선을 통한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면 한반도 평화 국면에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되면 북일 관계나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 구축 사안이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기호 교수는 이와 관련 "확실히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본 측에서는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일 간 정보 공유나 고위급 경제 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과거사 문제로 인해 대북관계에서 한일 또는 한미일 간에 공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 역시 "한반도 평화 구축 문제와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그 부분은 외교적으로 관리하고, 대법원 판결에 따른 원칙은 원칙대로 지켜가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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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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