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에 앞서 북한이 핵시설을 신고하고 국제사회의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을 두고 북한의 고위층 인사가 북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고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9 KPF 저널리즘 콘퍼런스'에 참석, '평화 저널리즘과 한반도'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문 특보는 "최근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 '핵신고를 하고 핵사찰을 받아들인 다음 종전선언 후 신뢰구축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문 특보는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분명했다"면서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지금 우리는 미국과 적대적 관계인데 핵시설, 핵물질의 양과 위치, 규모를 어떻게 신고하는가'라고 되물었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경직되고 일방적인 접근 방식보다 유연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일괄타결 원칙을 앞세운 미국의 방식은 경직적이고 어떻게 보면 이상주의적"이라면서 "1년 이내에 비핵화를 완료하겠다고 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생각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동의하고 그것이 우리 목표임은 틀림없지만, 이렇게 비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견지하면 그 결과가 비극적이므로 그런 상황을 처음부터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미 정보당국은 북한에 60~65개의 핵탄두가 있다고 하는데 만약 실제 핵탄두가 20개여서 북한이 그렇게 신고하면 미국이 '이것은 불충분하다'고 할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협상이 깨진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이렇게 북미 협상이 깨질 수 있어 미국이 말하는 '선(先) 신고 후(後) 사찰'은 비합리적"이라면서 "종전선언에 이어 신뢰를 구축하고 불가침 협정을 한 다음 핵신고·핵사찰을 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이 일리 있다"고 부연했다.
문 특보는 '일방적인 핵사찰과 검증은 없다'고 한 북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한의 협력 없이는 제대로 된 핵사찰과 핵신고, 비핵화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문 특보는 "핵무기를 직접 설계한 만큼 해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북한 과학자들의 협력을 얻으려면 북한에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허용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좀 더 유연하게 북한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북한을 유연하게 대하려면 북한을 정형화된 이미지로 보거나 '사악하게' 봐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문 특보는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 등 나쁜 일을 했지만 북한을 사악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북한을 나쁘게 보면 나쁜 면만 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특보는 "세계의 특파원들은 제네바 합의를 망친 것이 부시 행정부임을 잘 안다"면서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서명한 다음 날 미국이 북한에 제재를 가해 협상 전체가 파기됐고 2006년 10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두고 문 특보는 "핵, 미사일, 해상무기, 사이버안보 등 북한 관련 이슈가 많다"면서 "가장 중요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해 신뢰를 구축하고 나면 북한의 인권문제도 언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미가 평화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워싱턴으로 초대할 수 있고 김 위원장이 의회 연설에서 인권문제를 개선하겠다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문 특보는 "인권문제를 메가폰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풀려 하면 북한이 이를 적대적 행위로 간주해 인권 상황도 개선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와 신중함, 객관성"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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