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12년간 참혹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지만 무죄로 끝난 '형제복지원 사건'이 30여년 만에 사법부의 판단을 다시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는 13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에 따라 재수사가 진행 중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라고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권고했다.
검찰개혁위는 "위헌·위법인 내무부 훈령 410호를 적용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등 원생들에 대한 특수감금 행위를 형법상 정당행위로 보고 무죄로 판단한 당시 판결은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의 대상으로 규정한 '법령위반의 심판'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권고 사유를 밝혔다.
문 검찰총장은 개혁위 권고안을 검토한 후 이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살핀 뒤 대법원에 비상상고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비상상고란 형사사건 확정판결에 법령위반이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비상절차다.
개혁위는 또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결과 검찰권 남용과 그로 인한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총장이 직접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해야한다"고도 권고했다.
문 검찰총장은 지난 3월 20일 개혁위의 권고에 따라 고(故)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 직접 사과를 한 바 있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일종의 수용시설처럼 운영된 형제복지원은 시민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행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복지원 자체 기록만 봐도 폐쇄될 때까지 12년간 운영되는 동안 513명이 사망했고, 그들의 주검 일부는 암매장되거나 시신조차 찾지 못해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다.
검찰은 1987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 대한 수사를 벌여 불법감금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지만, 대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문 총장이 비상상고를 청구하면 앞서 형제복지원 재판이 열렸던 1987년 이후로는 31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이 나온 때로부터는 29년 만에 대법원의 사건 심리가 다시 이뤄지는 셈이다.
지난 4월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위헌인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재조사를 권고했다. 검찰은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대검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당시 수사과정에서 '윗선'의 수사방해 등이 있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개혁위 관계자는 "무죄판결의 유일한 근거인 내무부훈령 제410호가 위헌·위법성이 명백하므로 형사소송법이 비상상고의 대상으로 규정한 '법령 위반의 심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비상상고를 권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개혁위는 이외에도 장애인·다문화가족·북한이탈주민·외국인 등 사회적 소수자와 여성·아동을 비롯한 범죄 피해자의 특성에 따라 강화된 인권보호 방안을 수립·시행하라는 권고도 검찰총장에게 했다.
또 대검찰청의 정책기능을 강화하고 개별 사건에 대한 일선 검찰청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조직개선안을 마련하고 개혁위는 권고했다.
아울러 중복된 업무를 해소해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송무수행 기능을 실질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검찰의 정책·연구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도 권고안에 담겼다.
지난해 9월 19일 발족한 검찰개혁위는 이번 권고안을 끝으로 1년여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공식해산할 예정이다.
그해 10월 검찰권을 행사하는 의사결정 단계마다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라는 권고안을 시작으로 총 14개 권고안을 문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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