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는 올 여름 폭염으로 산불과 가뭄, 그리고 온열병에 시달렸다. 폭염과 열대야의 기록 경신이 이어졌다. 기후변화는 만년빙이 유지되는 극지에서 더욱 명확히 나타났다. 1970년 관측 이래 한 번도 녹은 적이 없는 북극 일부 지역의 빙하가 녹기 시작했으며, 모기가 들끓어 방충복을 입어야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극지방 기온은 올라갔다.
수십 년간 인간의 활동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은 머리로는 동의하면서도, 체감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자연은 오만한 인간들에게 '너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마치 시위라도 하듯 역대 최고급 폭염이라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미래를 경험하게 했다. 체험보다 확실한 학습이 있을까? 인류는 비로소 급격한 기후변화가 가져올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됐다.
과학자들은 올여름 전 세계를 달군 폭염은 일회성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온실가스를 비롯한 각종 환경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온은 계속 상승해 폭염은 일상이 될 것이고, 사람이 여름에 야외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태풍이나 폭우도 더 강해지고, 겨울 한파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기후 조건은 점점 더 악화된다. 폭염과 혹한 등이 일상화되는 소위, 기후에 있어서의 '뉴노멀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기후가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되면 야외활동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활동에 필수적인 농작물의 생육에 있어서도 아주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온도, 습도, 햇빛은 농작물 생육에 있어서 필수적인 환경이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비정상적이 되면 생육은 악화되고 작황 부진으로 식량 가격은 급등한다. 지금까지는 전 세계적인 범위로 농작물 작황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기후변화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어느 한 지역의 작황이 부진해지면 풍족한 수확을 얻은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가지고 보충이 가능했다. 이상 기후가 오더라도 그것이 해소된 이후 이어진 작황 개선으로 부진했던 생산량은 보충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와 같은 폭염, 폭우, 그리고 (예상되는바) 혹한이 일상이 된다면, 그건 재앙 중의 재앙이다. 현재의 외부 환경에 농작물의 생육을 의지하는 농업으로는, 이상 기후가 일반화되는 뉴노멀 시대에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대적 기후에 대비한 새로운 농업의 필요성
식물공장은 최근 주목받는 농업의 형태 중 하나이다. 식물공장은 ICT 기술이 접목된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농업으로, 외부와 격리된 시설 내에서 온도, 빛, 습도, CO2, 양액(양분) 등 재배 환경을 인공적으로 제어하며,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농작물을 재배한다.
식물공장의 원조는 유럽이다.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 일조량이 부족한 기후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채소를 시설재배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열악한 외부의 기후 여건을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농작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업 형태가 바로 식물공장인 것이다. 식물공장은 태양광을 광원으로 활용하며 온도나 양분, 물 등의 생육조건을 인공적으로 제어하는 부분제어형과 광원조차도 인공적인 광원을 활용하는 완전제어형으로 나뉘는데, 보통 유럽에서는 부분제어형이 많고, 지진이나 태풍 등 가혹한 외부환경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완전제어형이 많다.
식물공장에서는 빛, 온도, CO2 등 식물의 생육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폭염·폭우 및 혹한과 같은 적대적인 기후환경 속에서도 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재배환경에 대한 철저한 통제 덕분에 농약을 쓰지 않고 병충해를 차단할 수 있으니, 안전한 식재료 공급이 가능하다.
기존 시설원예에 비해 에너지 소비는 3분의 1수준으로 절감하고, 사용된 농업용수를 정화시켜 90% 이상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농업이 가능하며, 층층이 쌓아올려(수직농업)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배면적도 10분의 1수준 또는 그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농사로 인한 수질 오염과 삼림 파괴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수익성 문제 및 기존 농업과 신농업 간 상충되는 이해관계 문제가 그것이다. 기술의 발전과 유통구조 개선으로 수익성 문제는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기존 농업 종사자들의 반발은 예상처럼 넘기 힘든 과제이다.
기본적으로, 식물공장은 자본집약적이자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다. 안전한 방식으로 작물을 생산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자동화 시스템이 필수고, 따라서 대규모 자본의 참여 역시 필수적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소상공인의 생존을 위해 대기업 마트 입점에 각종 규제를 받는 한국 실정에서 대자본의 참여가 필수적인 식물공장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재벌이 농업에까지 손을 댄다며, 당장 격렬한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선례도 있다. '동부한농'의 토마토 농장 사례가 그것이다.
2012년 동부한농은 자회사를 통해 태양광을 활용한 부분제어형 식물공장을 시작했다. 당시 동부한농이 만든 식물공장은 무토양 양액 재배시스템을 이용해 작물에 양분을 공급하고, 최첨단 제어 시스템을 통해 온도·빛·습도·CO2 등 생육 조건을 조절하며 수확에서부터 선별, 포장에 이르는 대부분의 공정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수행했다. 이로 인해 100여 명의 소수 인원으로 15헥타르에 달하는 대규모 농장 운영이 가능했다. 동부한농 측은 생산된 물량 전부를 수출하겠다며 농민들을 설득했지만,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 대기업의 시장 참여로 인한 경쟁력 상실 등을 우려한 농민들의 항의와 압박에 못 이겨 결국 폐쇄됐다.
대기업 식물공장, 그때는 반대했지만…지금은?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인구수는 75억 명을 돌파했다. 2050년이면 91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현재 대비 70%의 식량 증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향후 발생할 적대적 기후변화는 식량 증산은커녕 만성적인 농작물 부진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인류는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외부 환경에 노출된 현재의 농업 형태가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종자 개량, 획기적인 농기계와 비료의 개발이 폭염과 혹한, 가뭄과 폭우가 일상화되는 기후를 이겨낼 수 있을까? 기존의 농업은 어떤 형태로건 외부 기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금의 농업으로는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할 정도의 식량 증산은 꿈과 같은 일이다. 올해와 같은 적대적인 기후가 일상이 된다면 증산이 아니라 지속적인 식량 생산 감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적대적인 기후가 일상화된 시대를 대비해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안정적인 식량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농업이 필요하다. 대안은 존재한다. 바로 식물공장이다. 지금 대규모 자본 참여에 따른 부작용만 생각하며, 대안을 외면할 시간이 없다. 올여름 우리는 최악의 외부 환경을 체험했다. 어떻게 하면 악화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할지 대비해야 한다. 부작용이 걱정된다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으로 기존 농민들이 식물공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가혹한 기후에 대비한 새로운 농업을 준비하는 지혜를 찾아봐야 한다.
지금도 지구 환경 위기 시계는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다.
참고자료
- 인공광형 식물공장 경영모델 연구, 김연중 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3. 12.
- 식물공장의 전망과 정책 과제, KREI 농정포커스 제49호, 김연중, 한혜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3. 03. 07.
- 2016년 1월 1일 자 <중앙일보> '반도체처럼… 자동생산 시스템으로 키우는 '상추 공장' 매일 파종·수확, 연간 7기작'
- 2011년 3월 6일 자 <중앙선데이> '기상이변, 농촌 노령화 대응책…50여 년 전 덴마크서 싹 터'
- 2016년 3월 9일 자 <신동아> '[카메라 스케치] 실내에서 펼쳐지는 미래 농업 친환경 식물공장'
- 2013년 3월 20일 자 <영남일보> '"대기업이 왜 토마토 농사짓나?" 농민들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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