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9일 각의를 열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 신각수 주일한국 대사와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협정문에 사인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경 "국민 사이에 반대하는 정서가 있는데다, 절차상 급하게 서둘러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채 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협정 체결 보류를 요구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김성환 외교부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류를 요청했다. 정부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협정문 서명을 한 시간 가량 앞두고 협정 체결을 연기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 등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일본 자위대 ⓒAP=연합 |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한일정보보호협정 필요성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있지만, 절차는 물론 시기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당내 우려가 상당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일본 극우 세력의 테러 등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는 등 국내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협정 체결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정몽준 전 대표나 김을동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협정 자체는 필요하다"는 인식이 당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박계 황진하 의원의 경우 "이번 협정은 실익이 많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정부가 협정 체결을 연기하는 과정을 보면 당청 관계가 엉망이라는 지적이 과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지난 5월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했지만 새누리당은 해방 이후 첫 군사 교류 협정이 체결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정부와 제대로 된 당정 협의를 열지 않았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원내대표가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협정을 보류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정부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정부가 꼬리를 내리면서 "당청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번 협정 추진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접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한 이유에 대해 "일본이 자국에서 처리를 마친 뒤 같이 공개하자며 보안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일본 측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자국에 유리한 이 협정을 추진하는 도중인데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전날 독도 방문에 공식 항의하기도 했다.
민주당 "왜 우리가 군사 정보를 일본 자위대에 바쳐야 하나"
야당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대여 공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열린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 규탄대회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이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 대표는 "이 나라의 군사 기밀을 일본 자위대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겠다는 것이다. 일본 자위대를 과연 우리가 군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왜 우리의 군사정보를 일본 자위대에 바쳐야 한다는 말인가. 국무회의에서 왜 몰래 통과시켜야 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 대표는 "청와대는 몰랐다고 한다. 국무총리와 외교통상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 몰래 추진했단 말인가. 당치도 않는 소리이다. 국민의 안보를 어떻게 청와대가 모르는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결단코 한일간 군사 협정을 막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국회에서, 거리에서 모든 당력을 다 동원해서 막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추미애 최고위원 등은 이날 국무총리실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추 최고위원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협정이라고 제목을 달아서 조약이 아니게끔 만들어 국회 비준 동의를 회피하고 국민 몰래 추진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라고 이번 사태를 규정한 후 "김성환 외교부장관과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이 사안에 책임지도 사퇴해야 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걸 최고위원은 "해방 후 첫 군사 협정을 정부가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정부는 이 협정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그렇지 않으면 100년 전 나라를 팔아먹었던 비밀 협상의 이완용과 이명박 대통령은 크게 다를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