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날 안희정에게 물리적 폭력과 성적 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저는 그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거절을 분명히 표시했습니다.
저는 그날 직장에서 잘릴 것 같아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일을 망치지 않으려고 티 내지 않고 업무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의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의 범죄들을 잊기 위해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전 충남도지사 정무비서 김지은 씨)
18일 오후 5시 분노한 시민들이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 수사기관 등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35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경복궁 인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5차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를 열었다. 당초 집회는 25일로 예정됐지만 안 전 지사가 지난 14일 무죄를 선고받자 한 주 앞당겨 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었다.
안 전 지사 사건의 피해자인 김지은 씨는 자신의 변호를 맡았던 정혜선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여러분과 함께여서 오늘도 힘을낸다"는 말로 포문을 연 김 씨는 발언문을 통해 재판부를 비판했다.
"세분의 판사님. 제 목소리 들으셨습니까? 당신들이 물은 질문에 답한 제 답변 들으셨습니까? 검찰이 재차, 3차 검증하고 확인한 증거들 읽어보셨습니까? 듣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실거면서 제게 왜 물으셨습니까?
세분의 판사님. 안희정에게 물으셨습니까?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그렇게 여러차례 농락하였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검찰 출두 직후 자신의 휴대폰을 파기했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셨나요? 가해자의 증인들이 하는 말과 그들이 낸 증거는 왜 다 들으면서, 왜 저의 이야기나 어렵게 진실을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셨나요?
왜 제게는 물으시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십니까?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으십니까? 그동안 정말 성실히, 악착 같이 마음을 다잡고, 수사 받고 재판 받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그 질문 앞에 다 답했습니다. 이제 제게 또 무슨 질문을 하실 건가요? 이제 제가 또 무슨 답변을 해야할까요"
이어 김 씨는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 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다"며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제가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다"고 좌절감을 나타냈다.
김 씨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해줄 수 있는 판사님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없다"며 "강한 저들의 힘 앞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여러분들의 관심 밖에 없다. 제발 관심 갖고 진실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해 시 '괴물'을 발표한 최영미 시인도 "김지은 씨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술을 번복한 적이 없다"며 "안 전 지사는 처음에 보좌관을 시켜 합의였다고 발표해놓고 자신의 SNS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고 번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법정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억지로 진술 만들어냈다"며 "두 번이나 진술을 번복한 안희정을 어떻게 믿느냐"고 강조했다.
이후 집회 참가자들은 "안희정은 유죄다", "고은도 유죄다", "김기덕도 유죄다", "이윤택도 유죄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다음은 이날 집회 현장에서 낭독된 김 씨의 글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김지은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여서 오늘도 힘을 냅니다.
살아 내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온전치 못합니다. 지난 3월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습니다. 8월14일 이후에는 여러차례 슬픔과 분노에 휩쓸렸습니다. 살아 내겠다고 했지만 살아내기가 너무나 힘겹습니다.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 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습니다.
큰 모자, 뿔테 안경, 마스크 뒤에 숨어 얼마나 더 사람들을 피해다녀야할까…이 악몽이 언제쯤 끝날까…일상은 언제 찾아올까…늘 생각합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에게 물리적 폭력과 성적 폭력을 당한 것입니다.
저는 그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거절을 분명히 표시했습니다.
저는 그날 직장에서 잘릴것 같아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일을 망치지 않으려고 티내지 않고 업무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의 미안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날 안희정의 범죄들을 잊기 위해 일에만 매진했습니다.
검찰의 집요한 수사와 법원의 이상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습니다. 일관되게 답했고, 많은 증거들을 제출했습니다.
세분의 판사님.
제 목소리 들으셨습니까?
당신들이 물은 질문에 답한 제 답변 들으셨습니까?
검찰이 재차, 3차 검증하고 확인한 증거들 읽어보셨습니까?
듣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실거면서 제게 왜 물으셨습니까?
세분의 판사님.
안희정에게 물으셨습니까?
왜 김지은에게 미안하다 말하며 그렇게 여러차례 농락하였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검찰 출두 직후 자신의 휴대폰을 파기했느냐 물으셨습니까?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셨나요?
가해자의 증인들이 하는 말과 그들이 낸 증거는 왜 다 들으면서, 왜 저의 이야기나 어렵게 진실을 말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셨나요?
왜 제게는 물으시고,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십니까?
왜 제 답변은 듣지 않으시고, 답하지 않은 가해자의 말은 귀담아 들으십니까?
그동안 정말 성실히, 악착 같이 마음을 다잡고, 수사 받고 재판 받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그 질문 앞에 다 답했습니다.
이제 제게 또 무슨 질문을 하실 건가요? 이제 제가 또 무슨 답변을 해야할까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해줄 수 있는 판사님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제가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게 지금 제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 함께 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언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치적인 압박을 받으면서도 의견 표명해주신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는 전관 법조인도 없고,
저는 아는 유력 정치인도 없습니다.
저는 아는 높은 언론인도 없고,
저는 아는 고위 경찰도 없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노동자이자, 평범한 시민일 뿐입니다.
지금 듣고 계신 수많은 평범한 시민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권력자와 상사에게 받는 그 위력과 폭력, 제가 당한 것과 같습니다.
판사님들은 ‘성폭력만은 다르다.’고 하십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그 폭력과 무엇이 다릅니까?
제발 함께해주십시오.
관심 가져주십시오.
자극적인 제목과 거짓 이야기들만 보지 마시고, 한번만 더 진실에 관심 가져 주십시오.
여전히 만연한 2차 피해에도 수사는 더디기만 합니다. 저들은 지난 5개월간 그랬듯, 앞으로도 저열하게 온갖 거짓들을 유포할 것입니다. 그 유포에 앞장서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인의 보좌진도 있고, 여론전문가도 있습니다.
강한 저들의 힘 앞에 대적할 수 있는 건 여러분들의 관심 밖에 없습니다. 제발 관심 갖고 진실을 지켜주십시오.
위력은 있지만 위력은 아니다.
거절은 했지만 유죄는 아니다.
합의하지 않은 관계이나 강간은 아니다.
원치 않는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력은 아니다.
그때는 미안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뭐가 아니라는 것인가요?
바로 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 내겠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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