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이후 국회에서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법부가 현행 법체계를 지적하며 입법부로 공을 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협소하게 해석한 재판부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위력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진 않았다?)
17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비동의 간음죄) 관련 여야 여성의원 긴급간담회'를 열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은 법원이 '위력'의 범위를 지극히 경직되게 해석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의원은 "성관계 이후에 통상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이 진행됐단 이유로 위력이 아니라고 했는데 일종의 상하 지위라든지, 일상적인 관계 조차도 위력의 범위로 볼 순 없는지 깊이 고찰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김지은 씨 사이의 업무상 위력이 존재하지만, 성폭력 행사 시에는 위력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판사 출신인 나 의원의 발언은 재판부가 형법 303조에서 규정하고있는 '위력'의 범위를 업무상의 관계 뿐 아니라 일상적인 관계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나 의원은 "제가 법원에 있었을 때는 부부 사이에 강간이 있을 수 있느냐 그게 치열한 논쟁이었다"며 "그게 부부 사이니까 성립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저는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를 처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도 "법원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검토를 했다기 보다는 가해자, 피고인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를 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며 "재판부가 갑자기 입법론을 들고 나오긴 했는데, 입법론 이전에 관련 법안이 이미 발의가 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게 핵심일텐데, 그 위력에 반해 적극적인 저항이 있었어냐 했느냐는 의문이 든다"며 "위력이라는 것이 권력관계에 있을 경우에, 상대가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거부 의사를) 어떻게 하는 것이 표현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은 항소심에서 판단을 해봐야겠다"고 재판부를 에둘러 비판했다.
민주당 권미혁 의원도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 기존 판례가 있음에도 재판부는 최종 판단을 입법부에 전가했다"며 "대법원에서는 '위력'은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이고, 이는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해당된다고 이미 판단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리적으로 때리고, 맞아야만 '위력'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재판부는 비서 직위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는 도지사의 권한과 이에 항거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위치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며 꼬집었다.
권 의원의 발언은 '위력'을 인정했던 유사 판례가 있었던 것처럼 안 전 지사의 사건도 현행법체계에서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법원이 비동의 간음죄를 시사하며 입법부에 공을 돌린 것은 '논점이탈'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비동의 간음죄 입법으로 논점을 이탈하면 안된다"며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는 재판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판부도 인정했듯이 위력은 있다고 보았지만 재판부는 위력을 쪼개서 어떤 상황에 적용되는지 나눴다"며 "이론상으로 위력을 쪼갤 수 있을지 몰라도 '위력'은 상황에 따라 쪼갤 수 있는게 아니다. 위력이 존재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제안한 것 자체가 '위력'의 행사"라고 말했다.
그는 "안 전 지사가 무죄인 것이 마치 비동의 간음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입법부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려는 노력은 별개로 계속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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