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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실 비우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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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실 비우던 날

고인 유지 이을 기념사업 준비, 49재 계기로 발표할 듯

휑했던 고(故) 노회찬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이 모처럼 사람들로 가득했다.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썼던 조위록과 고인의 영정이 도착했다. 방송 카메라도 방 안의 모습을 담았다.

16일 오전, 노 의원의 사무실이 비워졌다. 지난달 23일 그의 사망 후 3주일여가 지난 시점이다. 통상 의원직 상실 등의 유고로 퇴실이 이뤄질 때는 '7일 이내'에 방을 비워야 하는 게 국회 사무처 규정이지만, 돌연한 별세로 황망함에 빠진 노 의원 측을 배려해 기한이 비교적 넉넉히 주어졌다.

사무실 안 곳곳에는 치열했던 고인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노 의원이 썼던 제일 안쪽 방의 한 면 전체는 하늘색 파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의정활동 자료였다. 제출한 법안 관련 자료, 질의 자료, 각종 검토자료 등이었다. "워낙 관심사가 넓으셨던 만큼 자료가 엄청 많다"고 노 의원실 박창규 선임보좌관은 창밖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썻던 사무실의 마지막 모습. 한쪽 벽면 전체가 의정활동 자료들료 가득했다. ⓒ프레시안

▲책상 위에도 자료가 가득했다. ⓒ프레시안

반대쪽 벽에는 사진과 지지자들이 보내 준 초상화, 의원 당선 선서문이 주인 없는 방을 지키고 있었다. 고인이 썼던 책상과 마주보는 다른 쪽 벽은 휑하게 비어 있었고 초상화 두세 점만 걸려 있었다.

▲노 의원의 지지자들이 보낸 초상화 등의 액자와, 국회의원 당선 선서문. ⓒ프레시안

ⓒ프레시안

의원실에 원래 있던 짐들에 더해, 이날 오전 정의당에서 보관하고 있던 조위록과 영정이 도착했다. 조위록을 운반해온 당직자는 의원실 보좌진들에게 물건들을 전하며 말했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름만 쓴 게 아니네요. 여기 보면, 편지를 한 페이지 가득 적은 분도 계세요." 보좌진들은 조위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고인이 남긴 짐들과, 조문객들이 남긴 조위록 등은 이날 오전 중에 옮겨져 경기 김포의 한 이삿짐 보관 업체에 잠시 맡겨질 예정이다. "5평쯤 되는 컨테이너"를 빌렸다고 한다. 자료들은 분류 작업을 거쳐 국회 자료관이나 노 의원 기념관에 보관·전시된다. 노 의원실 식구들은 짐 정리를 마치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이날 점심을 함께 들었다.

'노회찬 기념관'은 사실 아직 확정된 계획이 아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노회찬을 위한 공간은 남겨질 전망이다. 고인의 유지를 이을 사업이 준비 중이다. '노회찬 재단'이 될지 '추모사업회'나 '기념사업회'가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고인의 유족과 측근 인사들이 중심이 돼서 사업체가 만들어질 것이고 물리적 공간도 마련되리라는 정도가 현재까지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 13일 저녁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와 김종철 비서실장, 박창규 보좌관 등 고인과 가까웠던 10여 명이 모여 사업체 마련과 묘비명(銘) 등을 초벌 논의했다. 지난해 돌연 작고한 노회찬의 동지 고 오재영 전 보좌관을 기리는 추모사업회와 합쳐 하나의 조직체로 통합하는 방안, 재단 형식으로 할 경우 발기인 규모를 어떻게 정할지 하는 논의, 묘비명을 크게 3가지 안으로 준비하되 유족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하자는 제안 등 여러 이야기가 폭넓게 오고간 자리였다.

조 전 대표와 김종철 실장 등은 유족 및 당과 상의해 고인의 유지를 이을 사업체 형식, 사업 내용 등을 정해 다음달 9일 고인의 49잿날 발표한다. 49재를 이틀 앞둔 9월 7일께(잠정) 정의당은 추모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8일에는 유족들이 절에서 재(齋)를 올리고, 9일에는 마석 묘지에서 49재가 있다. 추모·기념사업 계획은 49재를 계기로 발표할 계획이다.

고인의 상주 격인 이들은 저마다 외롭고 힘든 와중에서도 '노회찬의 정치'라는 숙제를 받아안았다.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표, 오재영 전 보좌관에 이어 이제 노회찬까지 떠나보낸 김종철 비서실장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면서도 "(고인이) '포기하라'고 했으면 포기했을까만, '당당히 나아가라'고 했다.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박창규 보좌관은 SNS에 쓴 글에서 "매일밤 꿈에 노 의원과 오재영이 나타난다"며 "노 의원은 내가 진보정치를 하는 이유였고, 내 진보정치 활동 전망을 고민하게 하는 바로미터였다"고 했다.

박 보좌관은 "노 의원님이 했던 진보정치는 진공상태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이상이나 꿈을 구체적으로 펼치는 것"이었다고 '노회찬 정치'를 정의하며 "'불꽃이 튀어야 점화가 된다'는 말씀과 함께 언제나 '이슈 파이팅'을 강조하셨다. (또한) 강조했던 것은 '제대로 된 비판'과 '설득력'이었다"고 했다.

"현실을 바꿔야 우리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기에 현실의 기득권 세력을 제대로 비판해야 했고, 기득권 세력에게 한 치의 반론 여지를 주지 않아야 했다.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어야 성과를 낼 수 있기에 통계 인용과 재구성, 사례 비교 등으로 설득력을 더 높이고자 했다"며 그는 "이 과정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의원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고 적었다. 박 보좌관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질문하게 된다. 나는 이런 '노회찬 정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제쯤 지금의 이 슬픔을 털어낼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앞으로 계속 '노회찬 정치'가 그리울 것 같다."

▲'510'은 노 의원실의 호실 번호 '510호'다. 지지자들이 보내 준 사진, 초상화 등이 책장 위에 놓여 있다. 호빵맨 인형이 눈길을 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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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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