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다. 기억을 더듬어 겨우 생각해낼 때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빛과 얼굴, 목소리가 또렷이 뇌리에 박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런 내게 아찔할 만큼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7월 3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은 증오와 욕설, 폭언와 폭력이 난무한 공간이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의 서른 번째 희생자 고 김주중 조합원을 추모하고 더 이상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분향소였다. 9년간 그 깊이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고통을 우리가 멈추자고 차린 분향소였다.
그런 분향소가 보수단체 회원들의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동료를 잃은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단지 먼저 집회신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분향소를 지키려는 이들은 스무 시간 가까이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오롯이 받아 안아야만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경찰이 분향소를 둘러쌌다. 분향소 안에 있던 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분향소 밖에 있는 이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동료의 영정과 국화꽃을 들고 분향소를 지키던 이들은 김밥 한 줄도 편히 먹을 수 없었다. 꼬박 하루 가까이 화장실을 갈 수도 없었다. ‘중립’을 지킨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던 경찰은 분향소로 들어가려다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밀쳐져 넘어지는 피해자가 발생할 때만 이들을 제지했다.
세 명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 방송차로 ‘시체팔이 그만해라’, ‘분신해라’, ‘쌍용상조냐?’라며 그들이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가슴을 할퀸 자국 하나하나는 선명한 흉터로 남았다.
집회신고를 먼저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신고한 집회를 함부로 방해할 수는 없다. 집회방해는 현행법상 범죄 행위이다. 그리고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의무가 있고, 집회현장에 경찰이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다. 밥을 먹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누군가의 허락을 받거나 물리적 위협을 감수해야하는, 인간성을 상실한 그날의 대한문 앞은 이 모든 원칙이 무너진 아비규환이었다. 눈을 쳐다보며 욕설을 퍼붓고, 분향소로 조금만 가까이 가면 밀치고 때리던 이들의 눈빛과 목소리, 표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았다.
고 김주중 조합원은 2009년 8월, 경찰의 옥쇄파업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9년간 현재진행형인 그 고통 속에서 가족과 동료의 곁을 떠났다. 쌍용자동차의 야만적인 정리해고가 없었다면, 정부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적인 파업진압을 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도 많다.
국가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라도 있었다면, 쌍용자동차의 복직에 대한 정확한 약속과 이행만 있었다면, 고 김주중 조합원은 우리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 대한문 앞에서의 상처와 기억도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기억과 상처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우리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분노와 상처,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날을 함께 아파하고 분노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의 삶을 흔들고 무너뜨린 책임을 제대로 질 수 있도록 우리는 다시 모인다. 8월 18일 대한문 앞에, 청와대에 모여 함께 상처를 보듬고, 더 이상 고통의 시간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인다.
함께 모여 치유와 희망의 ‘그날’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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