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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파문'에 우리가 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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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파문'에 우리가 해야할 일

[시민정치시평] 쫄지 않고 욕하기, 닥치고 투표하기

선거는 보통 당선되려고 출마한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MB정부 들어 실시된 각종 선거를 겪으면서 후보가 아니라 도리어 유권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이 선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되었다.

처음 실시되었던 보궐 선거에서는 천안함 사건과 그에 뒤이은 5·24 대북 조치가 북풍을 기대하면서 국민들의 표심을 검증하였다. 결과는 집권보수층과 수구기득권층의 기대와는 정반대였지만.

그리고 작년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어거지로 실시되었던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쌍소리만 안 했다뿐이지 박원순 후보에 대한 거의 막말 수준의 저질 정보와 언설이 아직도 귀에 쌩쌩하다. 도시의 차도남, 차도녀들은 이런 정보세뇌마저 SNS-레지스탕스로 견뎌냈다. 박원순 당선을 방해하려는 수구기득권층의 집요한 시도들은 결국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라는 반국가 범죄행위를 후유증으로 남겼는데, 검찰이든 특검이든 그 수사 속도는 참으로 느리다.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는 김용민 막말 파동과 문대성 논문 표절 의혹이 선거에서 마땅히 쟁점화되어야 할 정책과 정당의 신뢰성 검증을 방해하고 있다. 정책 검증을 방해하는 이런 소란 속에서 결국 검증되는 것은 후보들의 자질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정치적 이성이고, 시민정치의 분별력이다.

이런저런 시비를 따로 가릴 것 없이 학위논문을 심사했던 5인의 심사위원들만 나서면 순식간에 논란이 가라앉을 새누리당 문대성 후보의 논문표절 사건은 일단 논외로 치자. 아직 공식적으로 표명되지 않았지만,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을 통해 문 후보의 논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교수가 "표절이 200% 확실하고, 거의 대필 수준으로 본다"고 말한 사실이 4월 8일 전해진 상황이다 보니 이 문제에 관해 시민의 정치적 이성까지 동원할 긴급 국면은 이미 지나갔다고 본다.

이와는 달리 "월계동, 공릉동 주민들"이 직접적 심판자가 되는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막말 파동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 막말 파동에는 우선 두 가지 문제가 엉켜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정치권에 만연해 있는 욕의 정치문화이고, 또 하나는 이와 같은 욕에 따르기 마련인 폭력성과 반인권성의 문제이다. 우선 이 칼럼에서는 욕의 정치문화를 먼저 다뤄보겠다.

문제가 된 막말이라는 것을 김 후보가 했다는 시점은 그가 스물 다섯살 때인 7년 전, 2005년의 일이다. 그 장소는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이 아닌 인터넷방송 라디오21에서 지금은 현역 유명연예인이지만 당시로서는 막 세상에 얼굴을 내민 김구라, 한이와 출연한 '플러스18'이라는 잡담 프로그램이다. 이번 총선에 김용민씨가 출마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찾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 이 프로그램에서 당시 젊디젊었던 김용민씨가 한 발언은 사실 그대로 듣기에는 낯뜨거운 쌍욕들 투성이다. 말 그대로 아직 성장 중인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절대 들려주고 싶지 않은 '19금' 감이다. 그런데 당시 이 쌍말 인터넷방송은 아무도 기억에 담아두지 않고 듣는 이들도 거의 없이 흘려보내졌다가 갑자기 19대 총선에서 전국적인 쟁점의 불씨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나라 제도정치권에서 오갔던 쌍말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던가. 더구나 그 막말성의 수위에 있어서는 결코 당시 김용민 발언에 뒤지지 않을 욕설의 성찬이 이미 그 일 년 전에 있었다.

2004년 8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세가 급격하게 위축되었던 한나라당은 전남 곡성에서 당연수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현역 의원 24명이 대거 참여하여 만든 '여의도 극단'은 당시 현직 국가원수를 '노가리'라고 대놓고 비하하면서 그야말로 공인으로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로 대본을 꾸민 '환생경제'라는 퍼포먼스성 연극을 공연하였다.

이 연극의 출연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일 있을 19대 총선에 출마하고 있는데, 그 연극을 관람하고 난 당시 박근혜 당대표가 눈쌀을 찌푸리기는커녕 "전문배우 못지않은 훌륭한 연기들이었다."고 극찬하면서 환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국 정치권에서 현역 의원들이 앞장서서 욕을 자기 집단의 카타르시스에 조직적으로 투입하여 정치담론의 예절성 경계와 금도를 파괴했던 것은 아마 이 한나라당 의원 연극이 본격적인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당시 그 소식과 장면을 접한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집권층도 불쾌함을 표하면서도 그냥 소비성 정치언어로 치부하고 흘려보냈다. 아무도 그것을 한나라당이나 그 의원들의 자질을 근본적으로 의심할 증좌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이제 고위 공직에 취임할 정치인 자질 검증의 단골 잣대로 등장한 논문 표절 시비와는 달리 정치적 의도를 표현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욕의 해악성 여부에 대한 검증 기준은 제도적으로나 규범적으로 확립된 것도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다. 사실 사람들이 욕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규범은 제도적인 차원이나 일상의 언어풍습에서도 명시적으로 규정된 바 없다. 그리고 욕을 쓰는 행태에 대한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확실한 것은 욕도 우리가 쓰는 말 중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언어문화 안에 완전히 말소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상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언어문화 안에는 고도의 존칭어 문화와 함께 적나라한 욕설문화가 거의 전통문화라고 할 정도도 언어문화의 일부로 정착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람의 말습관 속에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엮어진 경어법과 함께 외설적 쌍스러움의 극치를 이루는 욕설법이 공존하면서 발달해 왔다.

이것은 곧 어떤 사람이 존칭을 잘 쓴다는 사실 자체만 갖고 그 사람이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주위를 둘러 보라! 사기꾼 가운데 입이 달콤한 작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그 사람이 욕을 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녀가 저열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백악관을 거쳐 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무심코 내뱉다 가 취재진에 걸린 욕의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나아가 엄연히 언어 중의 하나인 욕은 어떤 경우에는 진솔한 인격의 표현으로 용인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되기도 하지만(가상 상황이지만 작년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TV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한석규 역)이 보여준 언행이 연상된다), 상당 경우 욕은 그것을 쓰는 이의 인격을 심하게 훼손한다. 다시 말해서 욕은 단지 그것이 욕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용인성 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인간의 담화행위이다. 문제는 욕이 오가는 인간들 사이의 문제쟁점과 사회적 맥락이다.

기본적으로 욕이 성립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그 중 첫째는 단연 욕설이다. 욕설은 욕하는 상대를 비하하기 위해 상대방의 약점이나 흠을 부각시키는 내용의 단어들로 이루어진다. 욕설의 상당 부분은 전통적으로 인간사에서 가장 천한 것으로 (부당하게) 홀대받아온 섹스나 성기에 관련된 것이다. 욕설, 그 가운데서도 쌍욕에 여성 또는 장애인 비하 발언이 많이 들어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욕하는 이'와 욕을 듣는 '욕먹는 이'가 있게 된다. 즉 욕은 욕설, 욕하는 이, 욕먹는 이 등의 세 요소로 성립하는 복합적 담화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욕의 적정성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기준이 상식적 직관으로 통한다.

우선 첫째, 욕하는 이가 '욕먹어도 싼 이'를 상대로 욕을 하면 그 욕은 용인되어 왔다. 즉 '욕먹을 짓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온 것이다. 특히 욕먹을 짓을 한 사람이 권력자나 기득권자일 경우에는 쌍욕조차도 일종의 "정당한 저항의 표출"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욕먹을 짓도 하지 않은 이에게 욕을 할 경우 오히려 욕을 한 이가 욕먹을 짓을 한 이로 역풍을 받게 된다. 이른바 최진실 악플이 문제된 것은 욕먹을 짓을 하지 않은 여성연예인에게 부당한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째, 아무리 욕을 해도 되는 경우에 욕을 썼다고 하더라도 욕만 일삼을 경우 그 사람은 그저 욕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욕은 아무리 쓸 만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자기 실존 전부를 걸어 욕쟁이가 될 것을 감수할 정도로 훌륭한 말습관은 아닌 것이다. 욕쟁이치고 훌륭한 이가 된 경우는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강자이든 아니면 민중의 대변자이든!

이제 우리는 이런 시민적 상식에 입각해서 김용민의 막말을 평가해야 한다.

우선, 김용민이 과거 해댄 막말은 '욕먹을 짓을 한 작자들'을 상대로 한 것인가 아닌가?
그리고 두 번째, 김용민은 '그저 욕쟁이'로 치부되어도 좋을 인생을 살아온 인간인가?

나로서는 더 판단해 볼 일이다. 장애인인 나로서는 장애인에 대한 비칭들이 많이 들어간 욕설을 듣기 거북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욕설이 향하는 상대가 정말 욕먹을 짓을 했기 때문에, 그런 상대에 대한 혐오와 비난을 공유하는 경우, 듣기에 몹시 불편하더라도 그런 욕설을 참거나 흘린다. 그런 욕의 진정한 의도가 욕먹을 짓을 한 상대에 대한 비난이지 어쩌다 쓰인 욕설에 묻어 들어간 장애인에 대한 비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7년 전의 인터넷 방송에서, 그리고 MB 정부에 대한 비판에 앞장 선 정봉주 전 의원의 대타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기 전까지, 사인(私人) 김용민은 참 많은 집단을 상대로 듣기 거북한 욕을 해댔다. 일방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부시 정부의 미국 신보수주의자들, 야속하도록 기득권자를 감싸고도는 노인네들을, 그리고 얄밉도록 자기 이익을 챙기는 대형교회들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장정치를 자행하는 한나라당, MB정부 등을 상대로 '여성비하적인 마초성 욕설들'을 퍼부어 댔다. 하지만 나는 그가 '여성들'이나 특정 여성 집단 또는 특정 여성을 정면 조준하여 여성비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욕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마초적 욕설'을 빈번하게 구사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욕쟁이 마초'는 아니었다. 그의 길지 않은 인생에는 아직, 그가 썼던 욕설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발랄한 발상과 성실성이 남아 있다.

그리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그와 함께 토론 프로에 참여하여 한국의 청년층 문제를 논하는 공적인 프로에서 서로 입장이 갈렸지만 욕설 한 마디 쓰지 않고 반박과 주장을 성실하게 이끌어갔던 좋은 경험이 있다. 오히려 나중 그가 욕설을 쓰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욕을 하는 그의 모습이 의아할 정도로 나의 기억에는 그가 성실한 토론자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욕의 정치문화가 시민정치의 주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욕은 그것이 튀어나올 경우 어떤 경우에도 인간관계의 금도를 깨기 때문에 욕을 하게 만든 본래의 쟁점을 가려버리는 작용을 하게 된다. 이번에도 결국 7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이른바 막말 파동으로 중요한 정치쟁점은 일단 시야에서 실종된 상황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점은 욕은 어디까지나 욕이기 때문에 폭력성과 반인권성을 동반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상대방이 있는 욕이라 하더라도 욕에 있는 폭력성과 반인권성은 욕과 상관없는 제3자의 인권이나 존엄성을 헤치는 결과를 적지 않게 동반한다. 앞으로 '사인(私人)' 김용민PD가 아니라 '공인(公人)' 김용민 의원이 된다면 필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가 계속 욕을 능사로 삼을지 예의주시할 것이다.

물론 자신이 과거 사인 신분으로 해댄 욕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그의 모습은 공인 신분으로 집단욕설을 퍼부어댔으면서도 한 마디 유감의 말도 표하지 않았던 이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그러나 그는 이 눈물로 욕설의 정치문화를 극복할 사명과 아울러 그의 욕설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자기 존엄성을 훼손당한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정치인이 흘리는 눈물의 진정성을 검증받아야 하는 부담도 스스로 걸머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시민은 쫄지 말고 욕을 해댈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사려 깊게 구분할 줄 아는 시민적 분별력을 발휘해야 할 시험대에 또 한 번 올라섰다. 욕설이 난무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상대로 우리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은 그 모든 정치적 혐오감을 누른 채 내일 당장 우리의 시민적 분별력에 입각하여 '닥치고 투표'부터 하는 것이다.

* 본 내용은 참여연대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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