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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미소로 여름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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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미소로 여름 나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어금니 살짝 물고 웃어봅시다

연일 이어지는 더위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표정도 좋지가 않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데 몸까지 불편하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치료를 받으면서 평소와 똑같은데도 불만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덥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냉방을 줄여 달라 합니다. 팩은 왜 이렇게 뜨거운 지 모르겠고, 늘 맞던 침도 오늘은 더 아픕니다. "제가 미우세요?"라고 왠지 진심을 담은 듯한 말투로 묻는 환자도 있지요. 올 여름의 유난한 더위는 북극곰에게도 땅속의 지렁이에게도, 그리고 이러한 기후변화에 상당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대한민국의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영 달갑지 않습니다.

진료실 분위기를 다독이면서 문득 철불(鐵佛)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몇 해 전 가족들과 함께 처음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그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받았었지요. 크기는 물론, 철의 차갑고 무거운 질감과 기존 사찰에서 보았던 불상과는 다른 그 무엇에 매료되어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붓다의 모습이랄까, 화택과 같은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철의 옷을 입었다고 해야 할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황금으로 장식된 사찰의 세련된 불상들보다 거칠고 차가운 철불의 굳셈과 질박함, 어눌함이 주는 감동이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 후에 본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정밀하게 다듬고 다듬어 만들어진 어떤 극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품은 듯 세간을 초월한 듯한 자세와 미소는 이미 현실너머의 이상향에 가 있었습니다. 뭐 하나 덜고 더할 것이 없는 출세간적 아름다움이었지요.

잃지 말았어야 할 한 사람을 잃은 황망한 이 더운 여름날에 웬 불상이야기일까요? 박물관이 시원해서는 아니고, 바로 불상의 얼굴표정 때문입니다. 불상의 미소는 인간의 오욕칠정을 벗어난 깨달음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 표정을 지었을 때 생기는 이완의 효과입니다.

어금니를 살짝 물고 혀를 입천장에 댄 후 가볍게 미소 지어 봅니다. 안면근육에 불필요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많이 어색하거나 유지하기 어렵다면 평소 긴장도가 높거나, 잘 안 웃거나, 억지웃음을 많이 지으며 살았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미소를 머금은 얼굴표정은 우리가 즐거울 때 느끼는 신호를 뇌에 전달해 줍니다. 감정-뇌-얼굴표정이라는 전달시스템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죠. 그럼 상황에 대처할 때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화날 때와 기분 좋을 때 반응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덥고 습한 날씨에 필요이상으로 과민해지는 것에서도 잠시 피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궁금하다면 한낮에 나가 하늘을 보면서 찡그릴 때와 살짝 웃을 때의 몸의 느낌을 비교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상의 미소는 현실과 부딪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반응에 쉼표를 찍고 잠시간의 여유를 갖게 해줍니다. 그 찰나 같은 순간에 우리는 생각하고 다르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속이는 것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길들이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얼굴근육의 이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완된 상태에 있어야 긴장함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잘 안다는 것은 삶을 잘 다루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이것은 인생의 행복이나 건강과도 직결됩니다. 감정의 캐치는 꽤 섬세한 과정이어서 인지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완이라는 글러브를 잘 쓰면 보다 쉽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격하게 만드는 동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 동인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렵긴 하겠지만 우리가 감정적이 되었을 때의 대응행동을 변화시켜 우리의 감정적인 행동이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해답은 일종의 자각능력을 키우는 것인데, 이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경과하기 전에 스스로 깨닫는 능력으로, 나는 이것을 '세심함'이라고 부른다. 내가 각각의 감정을 느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신체 반응을 자각하는 능력을 높이기 위해 제안한 연습이 세심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 밖에 내가 언급한 다른 방법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얼굴의 심리학>(폴 에크먼 지음, 이민아 옮김, 바다출판사)

이 외에도 코로 숨을 쉬는 습관을 기를 수 있고, 말을 적게 해서 오해 살 일이 줄어들며(물론 웃는 얼굴을 트집 잡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미소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장점 또한 있습니다. 내 감정을 길들일 수 있어 좋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부드럽게 하는데 돈 한 푼 안 드니 시도해 볼 만 하지요.

물론 그렇다고 매사에 미소 지으며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살아서는 안 되겠지요. 때론 이를 악물어야 할 때도 있고, 분명한 감정의 표현은 나와 사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그 감정이 정말 내 것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정신은 물론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날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된다고 합니다. 차가운 음료와 냉방기는 배탈과 냉방병을 가져오고, 짜증은 분란을 일으킬 뿐이니 이 더위에 대한 효과적인 전략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보다는 좋은 책 한권으로 생각을 환기하고 불상의 미소로 감정의 압력을 풀어내는 게 낫습니다. 뱃속도 편하고 전기료도 아끼고 마음의 양식을 쌓고 나와 타인의 기분까지 좋아질 수 있으니, 이만한 해결책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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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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