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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폐, 이젠 전 인류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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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폐, 이젠 전 인류적 문제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미세먼지가 망치는 우리 몸

지난 주말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책 읽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볕은 쨍쨍했지만, 마치 도심 속 작은 섬과 같은 숲에 자리 잡은 카페는 가끔 불어오는 바람과 나무들이 뱉어 낸 숨으로 인해 시원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온 저를 보고 먼저 오신 분들이 오늘도 공기가 좋지 않은지 묻습니다. 미세먼지 앱을 켜니 붉은색 화면에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숲속 공기는 청량했지만 전체 대기의 질은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공기와 건강, 그리고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신체 기능이 미성숙한 아이들과 쇠퇴해 가는 노인들의 건강이 특히 걱정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 시각. 남북의 정상은 2차 회담을 진행 중이었고, 하늘은 높고 맑았고, 모임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주말 오후였지만 공기만이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조만간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숨 쉬는 공기에도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념에 빠져 걸어 내려오는데 건너편에서 낡은 트럭 한 대가 매연을 뿜으며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숨을 잠시 멈추는 찰나, 트럭기사의 땀이 밴 검게 탄 얼굴과 굵은 주름살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 이 문제, 결코 간단치 않겠구나!'

매일 대기 상태를 확인하고 환기 여부와 아이 마스크를 챙기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좀 유난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미세먼지는 간접흡연이나 자동차 배기가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특히 아이는 주의하고 있지요. 물론 과거에도 공기가 안 좋았던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로 단순히 먼지의 농도와 크기뿐만 아니라 그 질이 나빠졌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공단 밀집 지역에서 업그레이드된 격이랄까요. 여기에 각종 화학 물질과 방사선 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최근의 사태를 보면, 맘 놓고 숨 쉬며 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시대가 된 듯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고 힘든 장부가 바로 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은 잠시도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폐를 포함한 호흡기관은 아직 이러한 급격한 대기의 변화에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삼국시대 사람의 폐나 현대인의 폐나 다를 바 없지요. 그러니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에 노출이 되는 것에 비례해서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감기나 비염, 그리고 폐와 기관지에 생기는 염증이 자주 발생하겠지요. 알레르기와 같은 과민한 면역반응 또한 증가할 것입니다. 조금 더 중해지면 폐 자체의 기능이 저하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이나 만성적 염증에 의한 폐암의 발생 또한 증가할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기능은 모든 영역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선 충분히 호흡을 못하게 되고 호흡기계의 문제로 인한 염증반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피곤해 집니다. 아이들에게는 성장의 문제도 발생하지요. 기운의 생성도 저하되고 그나마 있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인삼을 베이스로 한 보조식품이 여러 문제와 효능의 한계, 그리고 오남용에 따른 폐단이 분명함에도 유행하는 것은, 현대인의 운동부족과 부실한 식이와 더불어 이러한 문제 해결에 일정정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폐 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전신 순환의 동력 또한 떨어집니다. 공기가 충분히 들어오지 못하니 엔진의 출력이 저하되는 셈이지요. 그렇게 되면 혈액의 순환 또한 저하되고, 세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의 공급과 대사산물의 처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몸속에는 산화적 스트레스가 증가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대사의 효율이 떨어지고 노화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상증후군과 이와 연관된 질환들, 그리고 암의 발생 또한 증가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기대여명의 증가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심리적인 문제 또한 발생합니다. 시원하게 호흡도 안 되고 그 들어오는 공기 또한 질이 떨어져, 그 공기가 통과하는 길에 염증까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발생하는 답답함은 마스크를 썼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몸도 피곤합니다. 이럴 때 생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짜증'입니다.

결국 호흡기 문제를 안은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인내심이 떨어집니다. 알레르기 또한 지치고 예민해진 면역계의 짜증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여유가 없어지고 자신을 조절하거나 심사숙고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말 그대로 긴 호흡이 필요한 마음의 작용이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여기에 정말 열 받을 일이 생기면 짜증은 분노가 되어 폭발합니다. 감정적 열뿐만 아니라 외부 온도의 상승도 분노의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여름철 불쾌지수를 산출할 때 대기의 질 또한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폐를 힘들게 하는 것이 공기의 질 만은 아닙니다. 의서는 폐를 상하게 하는 요인으로 형한음냉(形寒飮冷)을 지적합니다. 몸을 차게 하는 것과 냉한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냉방, 그리고 차가운 음료와 과일의 과다 섭취가 대표적이지요. 여름감기가 유행하는 것 또한 이러한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낮은 온도 자체가 주는 영향과 함께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들을 긴장시키기 때문에 충만한 호흡을 방해합니다.

여기에 심리적 스트레스와 커피나 흡연과 같이 신경계를 긴장시키는 요인들이 더해지면 폐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또한 과도한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사용은 구부정한 자세를 만들어 폐가 위치한 흉곽을 압박합니다. 더운 여름날 냉방이 잘 된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고, 나와서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면 폐를 상하게 하는 완벽한 조합이 완성됩니다.

한의학은 폐를 '상부지관 치절출언(相傅之官 治節出焉)'이라고 표현합니다. 심장을 군주에 비유하면서 폐는 마치 정승처럼 왕을 가르치고 도와 올바른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폐는 호흡에서 얻은 힘을 통해 몸과 감정의 상태를 조율해서 각 부분이 원활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조절합니다. 이러한 폐의 기능이 손상된다는 것은 우리 몸과 마음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혹은 혼군이나 폭군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는 우리 모두 익히 경험했지요.

단순히 좋은 것만 밝혀서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없습니다. 적절한 치절(治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도하는 폐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과거에는 폐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운동이나 식이와 같은 개인의 노력이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의 폐를 되살리는 작업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세먼지 문제는 단순히 공기청정기나 마스크의 착용 문제가 아니라, 지구온난화처럼 전 인류적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 혹은 국가적 단위의 공조가 필요한 과제일 수 있습니다. 폐와 폐가 의미하는 기능을 회복하는 것은 개인은 물론 인류의 지속가능성과도 유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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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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