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로 투병하다 지하철에 투신 사망한 기관사 노동자가 사고발생 19일 만인 지난 3월 30일 장례를 치렀다. 2003년 기관사 노동자의 공황장애 산재인정 이후에도 무대책으로 일관하던 정부와 자본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공황장애,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등 노동자의 정신질환 문제는 수년전부터 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주요한 이슈였다. 2001년 국제 노동기구인 ILO 에서는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이 1990년대 급격히 증가, 성인의 20%가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이 심각한 노동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정신 질환을 심장질환 다음으로 가장 큰 직업성 질환으로 예측하고 있다.
직업성 정신질환은 노동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주요한 원인은 업무상 스트레스와 야간 교대제 노동이다. 업무상 스트레스는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가 주요한 유발요인으로, 노동자를 자살로 몰고 가기도 한다. 2005년 전남대 병원에서 간호사 등 4명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치료 중 자살했다. 조사결과 해당 병원은 국립대 병원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았고, 직무요구와 조직문화로 인한 스트레스 강도도 높았다. 직업성 정신질환의 또 다른 원인인 야간 교대제 노동은 수면장애 뿐 아니라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가족이나 사회와의 단절을 초래한다. 이에 교대제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주간 근무만을 하는 노동자에 비해 높은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난다. 기관사 노동자의 경우에도 2007년 조사에서 일반인보다 우울증은 2배, 공황장애는 7배였는데, '1인 승무제, 불규칙한 교대제, 지하철 사고'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직업성 정신질환 중에서 최근 주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공황장애'와 '감정노동'이다. 공황장애는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공황발작을 동반하는 극도의 불안 증상을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공황장애는 최근 5년간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여 2011년에는 진료 받은 사람이 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의 상당수는 자신의 노동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점장 승진이후 영업실적과 명예퇴직에 대한 불안이 심해진 화장품 영업 지점장, 본연의 업무 외에 직원들의 온갖 고충을 처리하며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던 지하창고 경리직 노동자, 영업실적 향상을 강요하는 관리직과의 마찰로 쓰러진 학습지 교사노동자, 터널 공사 중에 정전사고가 발생한 경험 이후 공황발작을 일으킨 덤보 드릴 기사 노동자, 채권 추심원 노동자, 건설 노동자, 간호사 노동자, 안전 관리직 노동자등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 공황장애 산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유명연예인의 공황장애는 자세히 소개되고 회자되지만, 대다수 노동자의 공황장애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고, 거의 대책도 없다. 그러나 공황장애는 결코 유명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동료의 문제, 가족의 문제이다. 또한 공황장애는 직업성 정신질환의 하나로 혼자 모든 비용과 고통을 감내할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문제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노동"의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백화점과 대형할인점등 유통서비스업에서 일해 온 김 씨는 고객만족센터에서 일하면서 폭언을 매일 듣는다. 자주 불안과 가슴이 답답해지는 통증을 느꼈고, 상태가 심각해져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대인기피증으로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은 우울증, 화병, 대인 공포증, 공황장애, 사회 불안증, 소화불량 등 광범위하다. 한국도 이미 산업구조의 변화로 서비스 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비중도 높아졌고,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대면 노동이 확대되었다. 사업주는 전쟁 같은 경쟁체계에서 무한 서비스를 노동자에게 요구하고, 서비스 질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하고 있으며, 이를 인사고과와 연계시킨다. 이로 인해 사무직,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 되고, 경제발전이 진행되면 산재는 사고성 재해보다 업무상 질병인 근 골격계 질환이나 정신질환의 분포가 높아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아직도 사망재해나 사고성 재해만이 산재로 인식되고 있다. 직업병은 산재로 신청하는 것도, 승인받는 비율도 턱없이 낮다. 직업성 정신질환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서 1년에 직업성 정신질환의 산재승인은 20여건 내외에 그친다.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는 산재신청 및 승인이 확대되어야 높아지는 선 순환구조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원천적으로 막혀있다. 이로 인해 직장에서 일하다 얻은 질병이지만 직업병인지도 모르거나, 직업병인지 알지만 신청을 못하거나, 산재 신청은 하지만 불승인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가 모든 고통과 비용을 감내하게 구조화 되어 있고, 집단적 구조적인 예방 대책 마련에도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공황장애를 비롯한 직업성 정신질환 노동자를 반복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사슬에 엮이게 된다.
선진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문제가 이미 제도화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1999년 정신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이 제정되었고, 2010년 산재로 인정된 정신질환 건수는 308건으로 1년에 22건인 한국의 15배에 달한다. 그 중 사무직과 서비스직 비중은 64%였으며, 이중 79건은 감정노동에 의한 산재로 추정된다. 또한 정신장애로 인한 자살을 산재로 인정한 건수는 65건으로, 신청자의 38%가 산재로 인정되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해서 별도의 인정기준이 없어, 노동자들은 몇 년 동안 소송에 매달려야 한다. 또한, 정신질환에 대한 예방대책에 있어서도 일부 대기업에만 한정되어 있고, 99.9%의 노동자는 방치되어 있다.
자살을 비롯한 정신질환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 된 것이 수년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집단적이고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해결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원인이 노동과정에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엉뚱하게 명상학원이나 심리치료만 전전하고, 각종 민간 보험 시장만 배불려 주면서, 결국에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는 굴레를 벗어 날수가 없다.
우선적으로는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법 제도적인 정책 수립이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의 안전보건 정책과 제도는 정신질환 등 보건 분야에 대한 정책이 지극히 부실하여 극단적인 절름발이 형태가 되고 있다. 사무직, 서비스직 노동 증가와 그 업무 특성에 따르는 직업병 발생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예방대책이 직장 내에서 시행되도록 법 제도적으로 강제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직업병에 대한 산재신청과 승인체계가 개혁되어야 한다.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으로 인식되는 주요한 계기는 집단적인 산재신청과 인정, 사업장내에서의 예방대책 제도화 등이었다.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산재인정 기준을 수립하고 산재 신청과 승인에 대한 노동자 접근성을 강화하여, "직업성 정신질환도 산재" 라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직업성 질환에 대한 의사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직업병, 직업성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하는 데 진료 의사의 인식과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외국에서는 당연히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되는 질병도 개인 질병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노동자의 업무와 질병의 문제가 균형 있게 진단되는 종합적인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스스로나 동료, 가족이 아플 때 그것이 직업병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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