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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빛과 그림자> 보며 김제동이 떠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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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빛과 그림자> 보며 김제동이 떠오른 이유

[기자의 눈] "빨갱이 만드는 거 일도 아냐"…드라마인가, 현실인가

다시 김제동의 이름이 나왔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파장이 커지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경찰에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특정 연예인' 조사 지시 문건에 '좌파 연예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김제동 씨는 "사찰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국정원 직원이 두 번 찾아왔다. '꼭 당신이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사회를 봐야하나. 앞으로 방송도 해야 하지 않냐'더라"고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문제를 파헤치는 와중에 경찰이, 경찰 문제를 파헤치는 와중에 국정원이 튀어나온 것이다.

김제동 씨 문제를 보노라면 MBC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오버랩된다. 유신시절, 그 엄혹했던 시기에 연예인들이 권력에 치이는 모습이 똑 닯았다. "박정희 유신 독재부터 지금까지 사찰 정신이 아들 딸들에게 잘 전수되고 있다"는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의 말이 빈말이 아닌 듯 싶다.

"사람 하나 빨갱이 만드는 거 일도 아니다. 그런 게 제일 약발이 잘 받는다"

▲ '각하'를 모시는 청와대 실장 장철환은 사람 빨갱이 만드는데 있어 탁월한 능력자다ⓒMBC드라마 빛과 그림자
'빛과 그림자'에서 가상의 지방도시인 순양시의 극장 아들 강기태는 추석 대목에 쇼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공화당 지역구 의원 장철환으로부터 "선거운동에 쓰게 초대권 500매를 협찬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에 격분한 강기태는 오히려 신민당 후보에게 초대권을 갖다주면서 "꼭 장철환을 이겨달라"고 당부한다.

이후 장철환은 공화당 정권에서 승승장구하게 되고 청와대로 입성해 '어른'을 모시게 된다. 장철환 일당은 선거자금을 안 대는 강기태 아버지를 빨갱이로 몰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하다가 고문치사 시키고, 순양극장까지 갈취한다. 강기태 아버지를 중정으로 부르기 전 장철환의 대사가 흥미롭다. 장철환은 "사람 하나 빨갱이 만드는 거, 그거 일도 아니다. 근데 그게 제일 약발이 잘 받는 전략이다"며 "강기태 아버지 강만식, 이북 출신이잖아"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각하'의 심기 경호에 채홍사 노릇까지 도맡은 장철환은 어느 날 "각하가 요즘 유신에 반대하는 재야인사들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다"며 "데모하는 대학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봐라. 얼마나 불온하냐"고 대마초 파동을 기획한다. 장철환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아침이슬의 가사 일부) 얼마나 불온하고 선동적인 가사냐"며 "우리가 방송, 영화계를 장악해 불온한 작품을 쓸어버리고 각하 입맛에 맞는 작품으로 도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쇼비지니스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강기태를 덤으로 끼워넣는다.

이 전모를 알고 "도대체 왜 그랬냐"고 격분해 따져묻는 강기태에게 장철환은 대답한다. "나한텐 각하께 충성하지 않는 모든 인간은 다 빨갱이다. 네 아버지는 각하께 충성하고 애국할 수 있는 기회를 줬는데도 거절했다"… "니 놈들 청소하는 것도 각하에 대한 충성이고 대한민국에 애국하는 거라서 내가 결단을 내렸다"고.

이것은 데자뷰다

이 1970년 대 이야기가 작금의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나?

권력자의 눈에 거스르면 '좌파 연예인'이 되고 방송에서 퇴출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전 대통령 추모제 사회를 보겠다는 연예인에게 중정의 후신인 국정원 직원이 찾아가 "앞으로도 방송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정부 기구는 노래 가사에 '술', '담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19금' 딱지를 붙인다. 방송통신심의원회는 인터넷상에 대통령 욕설이라도 나오면 눈에 불을 켠다.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기업인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사찰 당하고, 회사와 직장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기업인을 향해 여당 국회의원들은 "좌파 성향의 단체에서 활동을 해온 사람"(김무성 발언), "서재가 공산주의·사회주의·북한 관련 서적으로 채워져 있다. 노사모 회원이며 일반 서민으로 볼 수 없다"(현경병 발언)고 붉은 칠을 해댄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지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몸통이다. 내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면서 "저 이영호는 현정부의 성공과 국가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어떤 어려움도 주저하지 않고 사명감을 갖고 국가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고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른다. '각하에 반대하면 빨갱이다'는 식이다.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정치학자 손호철(서강대 교수)은 <프레시안> 칼럼을 통해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통해 '고맙게도'(?) 진보운동을 부활시켜 주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분단 때문에 오랫동안 진보운동의 불모지로 남아왔다"고 지적했었다.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분단 이데올로기에 고착화된 반공과 친미 트라우마를 깨고 나설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지난 2008년 6월 정권 출범 100일을 맞아 대전의 시민단체는 이 대통령에게 "귀하는 국민들로 하여금, 헌법상 각종 권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도록 촉진한 공로가 지대하므로 이 상을 드린다"며 '민주시민의식 고취상'을 수여한 바 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1권에서, 지주의 아들로 일제 학병에서 탈출해 광복군 활동을 하다 해방 후 귀국한 중도적 민족주의자 김범우는 고향 벌교에 왜 그리 좌익세가 강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범우는 집안 머슴 문 서방에게 그 이유를 묻고 문 서방은 이렇게 대답한다.

"참말로 순사가 들었다 허먼 몽딩이찜질당헐 소리제만 서방님 앞이니께 허는디, 사람덜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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