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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美 국무장관…미소에 가려진 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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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라이스 美 국무장관…미소에 가려진 철권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2〉

2005년 하반기 미국 신문이나 한국 외신면을 보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가 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실렸다. 라이스 미 국무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마치 대화에 바탕한 유연외교를 펴는 양 쓰고 있다. 기사 제목도 "외교가 작동하고 있다" 또는 "라이스는 외교를 즐긴다"는 투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의 이란 핵 협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다자주의적 외교의 물꼬를 열었고, 2005년 가을 유엔총회에서는 유엔 개혁을 부르짖던 목소리의 톤을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뜨렸다.

2005년 1월 의회 국무장관 인준을 위한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라이스는 다자주의적 국제관계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이제는 외교의 시간이 다가왔다(the time for diplomacy is now)"라는 말을 남겼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 같은 라이스의 발언이 제1기 부시행정부 때에 나타났던 오만한 일방주의를 청산하고, 아울러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에 미국이 적극 나서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처럼 들렸다. 사정은 미국의 절실한 사정에 따른 것이다. "이라크 수렁에 빠졌다"는 소릴 듣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으로선 말 그대로 '외교'를 필요로 한다. 이라크전쟁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부담으로 말미암아 다른 국가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였다.

***'변형외교'로 세계를 바꾼다?**

라이스의 외교방식을 두고 이미 몇 가지 새로운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변형외교'다. 말하자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외교다. 이 용어에는 슈퍼 파워 미국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1991년 옛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막을 내린 뒤 유일 초강국으로 떠오른 슈퍼 파워 미국이 옛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자비로운 패권'(benevolent hegemony)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이념을 퍼뜨리고자 하는 사명감을 지녔다고 선언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라이스는 그녀 자신이 마치 '21세기의 잔 다르크'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길 바라는 것일까.

미 언론들이 라이스 국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결정적인 대목은 6자회담이다. 라이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보다 이란 핵문제를 더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면서, 북핵문제를 물리적 수단보다는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 왔다. 그 결과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에너지 지원과 안전보장 등을 약속하겠다"는 메시지로 나타났다. 이런 대북 협상자세는 "북한에겐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던 1기 부시행정부의 완고함에 견주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강성외교의 본질은 쉽게 변하기 어렵다.

***다자주의는 제스처, 체질적으론 강성**

라이스 국무장관은 복합적인 이미지를 지녔다. 미소를 띠고 북한과도 협상을 하려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이지만, 미국적인 가치(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을 지켜나가고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선 반미세력들을 공격적인 외교로 봉쇄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는커녕 동조해 온 게 사실이다. 미소 띤 얼굴 뒤 어깨 너머로 철권을 숨기고 있는 라이스다.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라이스 외교의 본질은 미 강경파, 매파들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라이스 국무의 여러 대외정책을 봐도 강경 일색이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무장해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무장해제 없이는 2006년1월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경방침을 거듭 밝혀 왔고(이 방침은 10월 들어 극적으로 철회됐다) △시리아를 압박하면서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은근히 흘리고 있으며 △이란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거듭 밝히고 있는데도 유엔안보리 경제제재를 위협하고 있고 △보다 결정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본질과 문제점을 솔직히 밝히기는커녕 이슬람권 민주화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 등이 라이스 외교의 본질과 한계를 말해준다.

***대안이 마땅찮은 북한정책**

미 국무부는 라이스 국무의 다자주의 성공사례로 6자회담에 미국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1기 부시행정부의 분위기는 북한과의 대화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김정일체제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여길 정도였다. 부시행정부가 북한과의 6자회담에 나선 배경에는 대화와 외교를 중시해서라기보다 북한을 이라크처럼 무력으로 제압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 탱크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선임 연구원 제임스 맨이 2004년에 출판돼 화제를 불러일으킨『불카누스의 성장: 부시 전쟁내각의 역사(Rise of the Vulcans: The History of Bush's War Cabinet)』에서도 드러난다. '불(火)과 대장장이의 신'을 뜻하는 '불카누스'는 강공책으로 미국의 대외적 이익을 지키려는 부시행정부의 강공파들을 일컫는다. 그 관련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 2002년 후반 북한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연료봉에서 봉인을 떼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들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무기확산방지조약(NTP)에서도 탈퇴를 선언했다. 문제는 불카누스의 새로운 독트린(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을 선제공격 한다는 부시독트린)이 이라크에겐 먹혀들 수 있지만, 북한에겐 먹혀들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라크가 주변국들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혼돈스런 이슬람권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주변국가들로부터 고립돼 있다. 불카누스의 눈에 비친 북한은 이라크처럼 군사적 해결수단을 쓰기엔 마땅치 않다.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것이고 서울에 큰 피해를 입힐 수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도 영변 핵시설물들을 겨냥한 족집게식 제한공습을 검토했으나, 실행에 옮겨지진 않았다.(…)

부시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 가운데 하나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었다. 문제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한 한 북한이 이라크보다 훨씬 더 공개적이었다는 점이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전인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 당국자들부터 "북한이 곧 핵무기들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entitled to have nuclear weapons)"라는 말을 들었다. 켈리 방북 뒤 북한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연료봉에서 봉인을 떼어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들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무기확산방지조약(NTP)에서도 탈퇴를 선언했다. 이같은 조치들은 부시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북한 공습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이라크 침공 뒤인 2003년 8월부터 미국은 6자회담에 참여한 것은 그런 딜레마를 겪으면서 대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뒤였다. 그렇지만 북한과 어떤 협정을 맺으려고 서두르진 않았다. 미국은 북한경제 사정이 아주 어려워져 김정일이 미국에 손을 벌리면서 핵개발을 포기하게 되길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앞서 살펴본 북한관련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오늘의 라이스 국무도 북한이 백기를 들길 은근히 바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2005년 들어 북한 핵을 둘러싼 6자회담에 미 국무부가 적극 뛰어든 것도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다른 대안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고, 부시 1기행정부 4년을 으르렁대면서 북한과의 대화 기회를 놓친 뒤 빗발치는 비판을 받고난 뒤의 일이다. 다시 말해 라이스 국무의 외교는 부시 대통령 집권 1기의 밀어붙이기 강공 외교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된 대안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대북 강성외교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알렉산더 브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부르는 등 잇달아 대북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대북 강경노선의 본질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kimsphoto@yahoo.com

(사진설명)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 미소 뒤에 가려진 그녀의 대북 강성외교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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