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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가불기', 그 폭력적인 '위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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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가불기', 그 폭력적인 '위선'에 관하여

[박세열 칼럼] 청년 세대 '공정 담론'은 어떻게 오염됐고 '불공정'의 위장막이 됐나?

국민의힘 대변인 박민영이 극우 여성 유튜버와 함께 출연한 영상에서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김예지를 두고 한 발언들이 머리속에 참 오래 남았었다.

유튜버는 "김예지는 XX 자기가 장애인인 걸 천운으로 알아야 한다"며 "장애 없는 남자였으면 진짜 XXX. 오체분시됐을 것"이라고 말했고, 박민영은 "김예지 같은 사람이 눈 불편한 거 말고는 기득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요즘 젊은 세대의 '화두'라고 하는 '공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 이상한 것은 김예지 의원과 장애는 애초에 분리될 수 없는 '동일체'인데, 굳이 '김예지'와 '장애' 둘을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튜버는 '장애 없는 김예지'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하고 그런 존재가 있다면 '거열형'에 처해 마땅하다는 잔인한 말을 내뱉는다. 박민영은 "눈 불편한 거 말고"라고 맞장구치며 '눈 불편하지 않는 김예지'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고 허수아비를 때린다.

오롯한 한 존재를 '공정하지 못한 기회를 받은 얌체'로 만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정상(?)인 김예지'를 주조해 낸다. 그들에겐 '닥터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정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장애를 가진 여성 국회의원은 같은 출발점에 설 '공정한 기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느다. 장애인만 아니었으면 국회의원이 될 수 없었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저 '배려'의 대상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니 주제를 알고 분수를 알라는 저 폭력은 '시각장애인 여성 국회의원'을 영원한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어 버린다.

'공정'이란 건 환상이다. '가불기'(가드 불가 기술)처럼 사용되는 저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이란 건, 애초에 잘 설계된 불공정을 가리기 위한 위장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최근 성평등가족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낙마한 용혜인을 둘러싼 논란이다.

언더73이라는 '친한계 그룹'이 있다고 한다. 용혜인이 2026년 수능 문제를 푸는 유튜브 컨텐츠에서 '정치와 법' 문제 20개 중에 5개를 틀렸는데, 이는 수능 4등급에 해당한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대학때 시위하느라 공부를 안한 모양이라고 조롱한다. '언더 73'이라면 50살이 넘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용혜인과 수능풀이를 걸고 넘어진 건 '운동권은 공부를 안한다', '권력만 쫓아 고위직에 올라왔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시위 하나 조직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리가 없는, 시위나 데모 한번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란 건 일단 차치하자.

고작 수능 문제 풀이 몇개 틀린 것 가지고 자기들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그 심리. 이것은 한국식의 천박한 시험만능주의와 능력주의를 잘 드러내 준다. 하물며 용혜인은 36살인데, 수능을 봤어도 그게 벌써 16년 전이다.

기시감이다. 지난 2022년 민주당이 대선 패배 직후 당시 26세였던 박지현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탁했을 때도 사람들은 소위 '2030' 여론(이라고 주장되는)이라며 20대 청년이 '벼락 출세'했다는 프레임을 씌워 온갖 조롱과 혐오 대상으로 '조리돌림'을 했다. 그때도 그의 출신 대학 같은 걸 문제 삼는 그룹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2021년에는 당시 25세였던 박성민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청년비서관에 임명되면서 희한한 자격 논란이 벌어졌다.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1급 상당의 비서관이 될 수 있느냐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취업 경쟁을 벌이는 청년들과 비교하고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

지금 용혜인에게 쏟아지는 비판, 이를테면 "시험으로 공직을 갔다면 9급 공무원에 붙기라도 했겠느냐"는 류의 비판과 일맥상통하다.

쉽게 말해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 자리에 올라갔느냐"는 것이다. 정치에도 '승진 코스'가 있다는 걸까? 청와대 비서관을 공무원 시험 성적순으로 뽑는다면 그건 더 이상 대통령의 정치적 참모가 아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25살이 1급 비서관이 되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청년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말한다.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고, 2030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해야 하고, 여성을 더 많이 정치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그런데 실제로 20대나 30대가 중요한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태세 전환'이다. "무슨 경력이 있나?", "대학은 어디 나왔나?", "시험은 몇 개나 통과해봤나?" 여기에 여성이나 장애인 정치인에게는 또 하나의 질문이 추가된다. "실력이 아니라 '할당'이나 '배려'로 올라온 것 아니냐?"

이런 게 지금 대한민국을 배회하는 '공정'의 민낯이다. 그들의 '공정' 기준으로라면 20대의 경우 박사 학위나, 변호사, 의사 자격증 같은 전문 라이센스나, 서울대 같은 명문대 졸업장이 없다면 정치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

그런 20대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희귀한' 20대를 찾아내 국회의원 자리를 주거나 정부의 주요 자리에 임명한다고 해도 그들이 대다수의 평범한 20대를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그걸 대놓고 비판할 수 없다. 괜한 구설에 휘말리며 과거 행위나 발언이 '파묘'당할까봐. 이른바 '꼰대'로 찍힐까봐 "청년들이 용혜인 기용을 '공정함'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손사래친다. '찍히면 죽는' 정치판의 모습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공정'은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로 사용된다. 출발선이 같은 공정? 애초에 청년이, 장애인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가 있는가? 그들의 공정은 '서열 질서'의 토대에 서 있다. 대학 서열, 시험 서열, 무슨 서열이든 좋다. 그걸 깨는 걸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사지 멀쩡한 남녀 이성애자로서 대입 시험 성적을 보유하고, 취업 시험 성적을 보유한 자. 그들이 말하는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가상의 인간'이다. 이 인간 조건에 부합하는 자만이 '공정한 출발점'에 서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상상한다. 저런 '가상의 인간'을 평균으로 삼는 것이다. 이 평균을 벗어나면 '불쾌'해한다. 불공정을 정체 모를 불쾌함으로 치환시킨다.

하지만 평균이란 건 환상이다. 평균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평균이 실제로 존재하는 '전형적인 사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순간 환상이 된다. 어떤 사회에서 평균소득이 5000만 원이고, 평균자산이 4억 원이며, 평균 주택가격이 7억 원이라고 해도 소득 5000만 원, 자산 4억 원, 7억 원짜리 집을 가진 '평균 시민'이 실제로 흔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우리는 지금 "파이를 공정하게 나누었는가?"라는 질문과 "누가 파이를 나누는 회의에 들어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섞고 있다. 공정한 룰로 나눈 파이 차지하기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으로 파이를 더 많이 가져간 '승리자'만이 파이를 나누는 회의에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걸 '공정의 위선', 혹은 '공정의 민낯'이라 부르겠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국회의원직을 '능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청와대 비서관직도, 장관직도 능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뒤로 뺀다.

고시 출신인가, 좋은 대학에 붙었는가? 유망한 자격증을 땄는가? 이런 사람들이 정부에 많이 참여한 걸 본 적이 있다. 윤석열 정부 때다. 그 때는 정말 '공정한 시대'였나?

이제 솔직해지자, 청년 세대의 공정 담론? 우리는 지금 그 '공정'이 '폭력'으로 변질되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공정은 환상이다. 그것은 서열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공정의 기준선을 자기 멋대로 이동시키면서 태연한 척 하고 있다. 그 환상들이 이 사회에 폭력적 '파시즘'을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공정 담론'은 믿지 않기로 했다.

참고로 글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용혜인 방식의 정치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후보직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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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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