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지역의 음식이 어떻게 사람을 부르고 어떤 위기를 마주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미식 도시의 미래는 무엇이 결정할까? 나는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음식을 만들고 이어 갈 '사람',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 그리고 오래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지속가능성'이다. 시리즈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이 세 축이 어떻게 맞물려 미식 도시의 내일을 만드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한다.
결국 사람이 남는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와 이야기가 있어도 그것을 음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사람이다. 미식 도시의 미래는 결국 그 음식을 이어 갈 사람에게 달려 있다.
여기서 세대의 문제가 등장한다. 오래된 노포의 주인은 나이 들어 가는데 그 손맛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역의 귀한 음식이 한 세대에서 끊기는 것이다. 반대로 지역의 자원과 이야기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청년들, 이른바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으로 들어오는 흐름도 있다. 이들은 지역의 식재료와 문화를 자기 감각으로 재해석해 카페와 식당, 가공식품을 만든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런 지역가치 창업을 지원 사업으로 뒷받침하기 시작했다.
미식 도시가 지속되려면 이 두 흐름을 이어 줘야 한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계승과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업이 따로 놀지 않고 만나게 하는 것이다. 노포의 조리법과 청년의 감각이 결합하고 지역 생산자와 젊은 요리사가 손을 잡으면 지역의 맛은 끊기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좋은 미식 도시는 좋은 식당이 많은 곳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계속 자라나는 곳이다. 그래서 지역의 조리 교육, 청년 창업 지원, 생산자와 요리사를 잇는 연결망을 갖추는 일이 미식 도시의 가장 근본적인 미래 전략이 된다.
오래된 것과 새것, 서로의 약점을 메우다
사람이 이어진다는 것은 조리법의 전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손님을 맞는 방식, 곧 '환대'도 함께 이어지고 다듬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노포와 신생 매장은 서로 다른 약점을 안고 있다.
노포의 흔한 약점은 위생과 낡음이다. 오래된 가게라 하면 정겨움을 떠올리는 이도 있지만 낡고 지저분해서 발길을 돌리는 손님도 분명 있다. 진정성은 '지저분함'과 동의어가 아니다. 세월의 멋은 지키되 주방과 화장실의 청결, 식재료의 위생 관리는 오늘의 기준에 맞춰 끌어올려야 한다. 앞선 글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 위생은 오래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문제다. 낡은 정취와 깨끗한 위생은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
반대로 감각적인 젊은 매장에는 다른 약점이 있다. 보기에는 근사하지만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의자, 그리고 키오스크나 QR코드로만 받는 주문 방식이다. 젊은 손님에게는 익숙해도 연세 지긋한 방문객에게는 주문 한 번 하기가 큰 벽이 된다. 미식 도시를 찾는 손님은 청년만이 아니다. 감각을 살리되 앉아서 편안히 먹을 수 있는 자리와 사람이 직접 주문을 받아 주는 최소한의 응대를 함께 갖추는 배려가 필요하다.
여기에 하나 더, 어느새 유행처럼 번진 브레이크 타임도 돌아볼 만하다. 높아진 인건비와 운영 효율을 생각하면 브레이크 타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먼 길을 찾아온 관광객이 애매한 시간에 도착해 문 닫힌 가게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이 잦다면 그것은 지역 전체의 손실이 된다. 브레이크 타임을 조금 여유 있게 운영하거나 한 골목 안의 가게들이 쉬는 시간을 엇갈리게 두어 언제 와도 열려 있는 곳이 있게 하는 정도의 조율만으로도 방문객의 불편은 크게 줄어든다. 오래된 가게든 새 가게든 결국 손님을 편하게 맞이하는 마음이 그 지역의 인상을 만든다.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두 번째 축은 기술이다. 요즘 먹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푸드테크가 빠지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발효 기술, 스마트팜과 자동화가 식품 산업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관광에서도 데이터와 앱이 방문객의 동선과 취향을 읽어 낸다. 이런 기술은 미식 도시에도 분명 쓸모가 있다.
기술은 지역 미식의 약점을 메워 줄 수 있다. 스마트팜은 기후에 흔들리기 쉬운 지역 농산물의 생산을 안정시키고 발효와 가공 기술은 저장이 어려운 지역 특산물을 오래 두고 널리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꾼다. 데이터는 방문객이 한곳에 몰리는 것을 분산하고 온라인 플랫폼은 작은 지역 생산자를 먼 곳의 소비자와 잇는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관광객 분산이나 특산물의 상품화도 이런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기술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을 들여와도 그 지역만의 맛과 이야기라는 알맹이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기술은 지역의 진짜를 더 잘 지키고 더 널리 전하는 데 쓰일 때 의미가 있다. 화려한 기술이 지역의 고유함을 덮어 버리면 그것은 미식 도시가 아니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마트한 상점이 될 뿐이다. 도구는 도구의 자리에 두고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과 음식을 놓아야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세 번째 축은 지속가능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되었다. 기후위기가 먹거리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가 변하면 그 지역에서 나던 식재료가 나지 않고 지역의 맛을 떠받치던 농산물과 수산물의 지도가 흔들린다. 지역 미식의 뿌리인 테루아 자체가 위협받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의 음식을 지키는 일은 곧 그 지역의 농업과 어업, 자연을 지키는 일과 떨어질 수 없다.
여기서 이 시리즈가 그리고 로컬푸드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다시 만난다. 가까운 곳에서 제철에 난 것을 먹는 로컬푸드는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 탄소를 덜 쓰고 지역의 생산 기반을 지킨다. 관광으로 늘어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포장재를 지역 안에서 순환시키고 관광의 수익을 지역 농업에 되돌리는 설계도 함께 가야 한다. 미식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그 지역이 자기 먹거리를 계속 길러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세 축은 하나로 만난다
사람과 기술과 지속가능성. 이 셋은 따로 있지 않고 하나로 맞물린다.
지역의 젊은 창업자가 스마트팜과 가공 기술로 기후에 강한 지역 농산물을 키우고 그것을 지역의 노포에서 이어받은 조리법과 결합해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며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다시 지역 안에서 순환시킨다. 이런 그림이 바로 사람과 기술과 지속가능성이 함께 짜는 미식 도시의 미래다. 사람이 없으면 기술도 지속가능성도 실현될 수 없고 기술이 없으면 사람의 노력이 한계에 부딪히며 지속가능성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의 바탕인 식재료가 사라진다.
결국 미식 도시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음식을 만들 사람을 키우고 그들에게 알맞은 도구를 쥐여 주며 그 모든 것을 떠받칠 자연과 먹거리 기반을 지키는 일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고 셋이 함께 갈 때 지역의 맛은 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 세 축을 어떻게 엮어 낼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일이 지금 미식 도시 앞에 놓인 과제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 '미식으로 지역을 차린다'는 것의 의미를 정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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